독서노트/<이탈로 칼비노>

<모든 우주만화> 크프우프크가 들려주는 지구별 이야기.

묭롶 2018. 10. 3. 18:01

  「오래전부터 예상했던 대변화가 일어난 것이지요.

이제 지구에는 공기와 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탄생한 그 파란 바다 위로 역시

색깔을 지닌 태양이 완전히 다른 색깔,

점점 더 선명해지는 색깔로 지고 있었지요.

~"태양이 얼마나 붉은지 좀 봐, 아일!  정말 빨개!"」p73


  만약 문학이라는 상상력의 스펙트럼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이 이 세계를 표현하는 모든 것이라고

상상해보자.  그건 이탈로 칼비노가 『모든 우주만화』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대기가 없는 달의 정취와 같을 것이다.

 

  태양의 자외선을 여과하는 지구의 대기(성층권)가 없는

달에 도달하는 태양의 자외선은 무채색이다.  대기라는

스펙트럼을 통과하는 순간 태양빛은 지구의 사물에 색채를

부여하는 것이다. 


  지구의 대기가 태양빛을 받아들여 아름다운 색채를 사물에 부여하는 것처럼, 어쩌면 문학은 과학적 사실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를 우리의 삶속에 펼쳐내는 스펙트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과학이 사실 그대로를 표기한 내용을

읽었다고 생각해 보자.

  물론, 과학이라는 첫 글자만으로도 두드러기를 일으켜 그대로 던져버릴 독자가 부지기수일 것이다.  음.......그럼 참고

읽는 사람들을 상상해보자.  그런 경우조차도 과학은 나의 현실에 몇천억 광년분의 일만큼도 도달하지 못한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과학적 사실, 예를 들어 지구가 태양의 활성화를 통해 그 영향력 하에 위성으로 돌다가 달의 일부를 흡수

(대륙)한 후, 달이 지구이 영향권 하의 위성이 되었으며 그 태양과 달과의 자전과 공전을 통해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을

지닌 행성이 되었다는 사실은 과학적 사실이지만 그러한 사실관계가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부여하는 건 2%의 밝혀진

과학적 진실이 아닌 98%의 상상력(허구)이란 사실을 이탈로 칼비노의 『모든 우주만화』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광고카피가 말해주는 것처럼 어쩌면 2%의 사실을 100%로 느껴지게 만드는 실제성은 98%의 허구에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인류의 기원을 설명해줄 수 있는 과학적 근거는 참으로 빈약하다.  인류가

양서류에서 진화해서 지금의 인류에 이른 것인지, 인류의 유전자가 지닌 결정적 목적이 무엇인지 감수분열과 복제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유전적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지금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이 무궁무진하며 어쩌면 인류는

그 마지막에 이를때까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종족의 생을 마무리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탈로 칼비로의 『모든 우주만화』를 읽으며 나는 한 편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것과 그 이유를 모른다고

한들 또 어쨌단 말인가!  인류의 시작부터 유전자에 기록된 패턴은 동일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 의미를 지금은

파악할 수 없지만.......... 어쩌면 우리의 삶은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마리처럼 동일한 내용이

기록된 유전자의 복제품일지도 모른다.  단 한번의 성공을 위해 계속되어 복제되는 유전자.....그게 바로 우리의

삶인지도 모른다. 


  시한폭탄처럼 수명이 정해진 텔로미어를 지닌 각인된 유전자의 명령에 의해 살아가는 우리의 삶.  그  반복된 삶 속에서

우리가 자의를 지닌 채 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이탈로 칼비노의 『모든 우주만화』에서 독백을 담당

하는 크프우프크가 하고 싶은 얘기는 지구의 최초에 '빛'이 있었다 가 아닌 '의지'가 있었다. 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석회질 물질을 분비하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부터였소. 

나는 내 존재를 뚜렷하게 표시해 줄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었소. 」p173


  신생기의 시간도 없고 구분도 없는 그 혼돈의 과정을 구분 짓는건 이 책의 내용처럼 바로 최초의 '의지'이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성격을 부여하겠다는 의지가 바로 나선의 '석회질'을 분무하게 만들었다.  그 최초의 의지인 '나선'의 생성과

동시에 시간의 개념이 생성된다.  바로 그 시간과 동시에 생성되는 개념이 <기억>과 <역사>이다.  나무가 나이테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신생의 연체동물이 석회질의 분무를 통해 안과 겉을 구분하기 시작하는 순간 기억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 기억의 기록을 인간이 인식함으로써 그순간 인간의 역사가 생성되었다. 


「여러분은 중단되는 우리의 나선에서 출발하여 여러분이 역사라고

부르는 지속적인 나선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당신들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와 반대입니다. 

움직여서 도달하지 못하는 것, 살아남기 위해서 사라져야 하는 것의

역사와 정반대인 것이지요.

항아리를 빚는 손, 알렉산드리아에서 불탔던 서가,

필사자의 발음법, 껍질을 분비하는 연체동물의 역사와.......」p427


  사실 우주를 기준으로 놓고 볼 때 인간이 기록하는 역사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인간은 그 역사를 연속이라는 수레에

올려놓음으로써 그 무한한 순환의 회전 속에서의 찰나의 개별성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일곱개의 공을

저글링하는 곡예사가 돌리는 공 일곱개는 회전하는 동작중에는 '도는 공'으로서의 한 개의 '사건'으로 존재하지만,

돌고 있는 공 한 개, 한 개를 정지된 상태에서 포착해볼때는 그 개별적 특징(공 한 개가 회전의 흐름에서 탈락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가능성, 공 일곱 개가 동시에 회전함으로써 이뤄지는 한 개의 사건 등)을 확인하게 된다.


「매 순간은 하나의 우주이며, 내가 사는 순간은 내가 살아가는 순간이다.  」p300


 이와같은 찰나의 순간에서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이탈로 칼비노는 그의 단편 「티 제로」(t0)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의 연속성에 이의를 제기한다.  칼비노 식으로 생각해볼때, 시간은 연속적이 아닌 개별적 독자성을

지닌 t1. t2. t3.......등등이 모인 합집합이며, 여러 상황의 교집합을 통해 전혀 다른 상황과 전혀 다른 사건으로 이행될

가능성을 지닌 모티브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칼비노의 인식을 과학적 사실 뿐만 아니라 우리네 현실에 접목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돛을 부풀린 범선이 될것이다.  삶이 있는 그대로의 것,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이탈로 칼비노는 그의 소설 『모든 우주만화』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말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현재라고..........


Ps: 이탈로 칼비노의 『모든 우주만화』를 읽으며, 어린시절 봤던 만화영화가 떠올랐다.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이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지구별의 생성과 지금까지를 이야기하고 있다면 과거 내가 본 만화영화는 과학적 사실에

역사적 사실(그리스 신화의 율리시스나 고대 아틀란티스 제국)을 우주를 배경으로 펼침으로써 있음직한 실제를

우리 앞에 보여줬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1988년도에 제작된 만화영화 <율리시스>와 2007년에 제작된 <나디아>를

통해 나는 인류가 역사라는 시간을 획득한 이후로 앞으로도 시대적 배경을 떠나 그 무엇인지를 찾기 위한 모험이 인류가

그 마지막을 끝내는 순간까지 계속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모험'과 '회귀'의 모티브는 인류의 유전자에 각인된

원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