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이탈로 칼비노>

<힘겨운 사랑> 받아들이기 힘든 실제보다 더 강하게 다가오는 이탈로 칼비노의 세계를 만나다.

묭롶 2018. 9. 13. 15:47

   2018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의 수상작은 손홍규의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이다.  이 작품 속에서 참혹한 현실은 과거의 경험이 환상처럼 펼쳐지는 서사 속에 한 편의 동화처럼 다가온다.  견딜 수 없는

리얼리티는 과거라는 경계가 불분명한 비현실적 세계의 환상 속에서

실제보다 더 큰 현실의 위안을 안겨주는 것이다.  보기 힘든 광경을

고개를 돌리고 애써 보지 않았던 것으로 믿으려 애쓸 때 사람들이

택하는 것은 바로 망각과 환상이다. 


  그림형제의 동화가 실제 사건의 참혹함을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동화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사실관계를 동화로 각색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거부감없이 다가간다.  현실의 뉴스를 통해 수없이 접하게

되는 의붓부모에 의한 학대가 사람들에게 크게 다가오지 못하는 반면,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의 계모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과 같은 분노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실제의 사실보다 사실관계가 모호한

동화의 내용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가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커가는 과정내내 지속적으로 차별을 받아온 딸들이 있지만 실제의 뉴스나 다큐멘터리가 담아내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82년생 김지영』이 소설 속에 담아낸 것처럼, 소설은 직접화법으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총체적 정서를 작품 속 인물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해낸다. 


  2차 세계대전 말미 발생한 드레스덴 공습을 직접 겪은 커트 보니것이 그 사건을 언급하는데 삼십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입에 담기 힘든 참혹한 현실을 직접화법으로 담는다는 건 작가로서 쓰는 것도 힘들지만 독자로서 읽기도 힘든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탈로 칼비노는 '우리의 선조들'로 분류되는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통해 전쟁과 인간의 본성을 실제와는 한 발자욱 떨어진 환상적 세계속에서 그려내었다.  그림으로 치자면 그의 작품은

정물화가 아닌 추상화에 가까운데, 그는 정물화가 지닌 사실관계보다는 추상화가 지닌 해석의 다양성을 통해 작품을 읽는

독자에 의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보인다.  즉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해 메타포로 이어지는 사건의 입구로 독자를

인도하며 그 출구는 그 책을 읽는 독자가 스스로 찾아나가는 가능성의 열쇠를 독자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다.


「그녀의 모든 동작은 아주 단순했고 단 1센티미터도 너미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몸에 딱 들어맞았는데 그년는 당황하거나 애를 쓰는 기색도 없었고

어떻게 해서든 그 동작을 하려고 필요 이상으로 고집을 부리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동작을 했다.

~이게 하늘색 스키복의 아가씨가 스키를 타는 법이었다.


~그러자 버스를 타고 온 청년들이 차례로 우스꽝스럽고 무거운

동작으로 무리하게 '제동회전'을 하고 강제로 '급회전'과 '전제동활강'을 하며

그녀 뒤로 몸을 던졌다.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하며 그녀 뒤를 따르고 추월을 하려 했지만 그들의 행동은 모두

폴을 움켜쥔 두 팔을 앞으로 내민 채 어깨를 어색하게 움직이고 스키 플레이트가

뒤얽히고 바인딩은 부츠에서 떨어져 나가 버려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어느 스키어의 모험> p155~156


  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저마다 이탈로 칼비노가 쥐어준 알레고리의 열쇠를 손에 쥐어든 채 그가 펼쳐

놓은 독서의 미로에 뛰어들게 된다.  출구는 읽는 독자가 스스로 찾아나가야 한다.


「그가 보기에는 삶이 무형으로 뒤범벅된 그런 흔적들 속에서

하늘색 스키복의 아가씨만이 찾아낼 수 있는 비밀스러운 선, 조화가 숨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보여 주는 기적은 매순간 보이는 수천의 혼란스러운 동작들 속에서

적절하고 투명하고 가볍고 꼭 필요한 동작만,

사라져 가는 수천의 몸짓 가운데 중요한 단 하나의 동작만

포착할 수 있는 데에 있는 듯했다.  」 

<어느 스키어의 모험> p160


「물론 치러야 할 대가가 아주 많지만 우리는 그걸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리는 이 길을 지나는 수많은 표식 하나하나를 다 구별할 수 없다.

이곳을 벗어나면 그 어떤 의미도 수용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기에

숨겨져 있고 해석할 수 없는 의미를 각자 가지고 있는 표식들을. 」

<어느 운전자의 모험> p170


  어쩌면   알레고리의 세계 속에 자신의 작품을 퍼즐처럼 펼쳐보인 알비노 칼비노의 작품세계에 비춰볼 때 『힘겨운 사랑』은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을 읽어나가며 나는 이 작품도

가면 속에 가려진 삶의 이면에 시점이 맞춰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이 뒤집어 쓴 불투명한

보호막에 가려진 인간의 본래 모습을 이탈노 칼비노는 끈질기게 뒤쫓는다.  사회화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동안 나 스스로도

잃어버린 나의 본 모습을 나보다 더 자세하게 꿰뚫어보는 듯한 이탈로 칼비노의 시선 앞에서 나는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보다는 인간이 과연 어떠한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해수욕을 하다 자신의 수용복 하의가 사라져버렸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수영을 하면서 미묘한 질투와 시샘이 느껴지는

동성의 여성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고, 사회적인 수치심에 이성인 남성들에게도 구조를 요청하지 못한 채 익사의

위험에 처한 이조타부인(「어느 해수욕객의 모험」)을 보면서 나는 타인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개인의 민낯을 드러내는 듯한 그의 소설 속 문장을 읽으며 그러한 민낯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러한 외피를 실제라고 믿으며 아니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외피를 구축하기 위해 자아를 소진시키는 현대인의 자아상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ps:  제발 민음사 이탈로 칼비노 작품 다음 인쇄판에서는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와 『힘겨운 사랑』 오타 수정 꼭 좀

해주세요.  이탈로 칼비노 작품 독점 계약 맺은 밀크우드 에이전시는 이 출판물에 오타가 몇 개인지 아실지 모르겠네요.

지난번 읽을때도 깜짝 놀랬는데, 『힘겨운 사랑』은 여덟개 까지 오타를 세다가 화가 나서 그만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