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이탈로 칼비노>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을 통해 이탈로 칼비노에게 가는 오솔길을 발견하다.

묭롶 2018. 3. 24. 14:17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은 이탈로 칼비노가 쓴 첫 소설이다. 

독일군과 대치중인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부모 없이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소년 핀이 이 책의 화자로 등장한다. 

  나는 몇 년 전 그의 작품반쪼가리 자작』 리뷰를 쓰면서 그의 작품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의 존재와 소설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주변부에 관찰자로서 등장하는 화자로 인해 이야기가 동화적 색채를

띤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보잘것없고 초라해 보였다. 

나를 개입시키지 않고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객관적이고 익명이 되면 될수록 이야기는 나에게 만족을 주었다.  ]

 

  그의 첫 소설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의 서문에 쓰인 작가의 말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아우르는 커다란

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같은 시기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로맹가리가 참전 기간 동안 자신의 첫 소설

유럽의 교육』을 씀으로써 시작과 끝이 하나로 연결되는 자신만의 작품세계의 원을 그렸던 것처럼 이탈로

칼비노는 자신의 첫 소설을 통해 앞으로 전개될 작품활동의 전부를 예고하게 된 것이다.

 

[“, 그래요.  사회주의적 영웅을 원한다고요? 

혁명적 낭만주의를 원한다고요? 

러면 나는 영웅도, 계급 의식도 전혀 없는 유격대원들의 이야기를 쓸 겁니다 

소외된 사람의 세계,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를 당신들에게 보여 주지요! 

그 어느 작품보다 긍정적이고 혁명적인 소설이 될 겁니다! 

이미 영웅인 사람, 계급의식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는 게 뭐 중요합니까? 

표현해야 할 것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입니다.]p232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쟁의 경험을 글로써 표현해내는 것이 작가의 사명감으로 여겨지던 참여문학

(네오리얼리즘)의 시기에 이탈로 칼비노는 자신의 첫 소설을 통해 같은 주제(전쟁)를 다큐멘타리적 실사(實事)

표현해낸 다른 작가들과 다른 길(관찰자로서의 시선)을 걷게 된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읽기에 난해함을 느끼는 그의 이후 작품들은 동화적 색채 속에 실제 사실이 보여주는

단편성을 뛰어넘는 알레고리를 담아낸다. 

 

  이탈로 칼비노의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과 로맹가리의유럽의 교육』

작가의 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을 통해 쓰인 첫 소설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하지만 그 공통분모를 통해 쓰인 이 두 작품은 큰 차이를 지닌다.  같은 대상을

보고도 표현하는 방식은 모두 제 각각이지만, 그 다름이 문학적으로 표현된 작품

속에서 그 다름을 발견하는 건 큰 즐거움이다. 

 

                                    야네크,’

                 나 여기 있어요. 당신 곁을 떠나지 않았어요.’

                           책을 끝낼 시간이 없었어.’

끝내게 될 거예요.’

아니야.  부탁해, 나 대신 그걸 끝내줘.’

~’약속해줘…………’

약속해요.’

~’그들에게 그 얘기를 할게요.’  유럽의 교육 p338

 

  이탈로 칼비노가 이 작품을 통해 우화(동화)가 들려주는 상징성의 세계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면 로맹가리는

이야기 속에 자신의 작품세계의 큰 고리를 형성하는 주제(인간에 대한 존엄)를 담아내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인간들은 모두 투쟁하지. 

그들 속에는 똑 같은 분노가 자리 잡고 있어. 

각자는 모두 서로 다른 자신의 분노를 간직하고 있지만

지금은 모두 함께 싸우는 거야.

 ~여기엔 오른팔 같은 놈도 있을 수 있고 펠레 같은 놈도 있을 수 있지. 

~이게 바로 정치 작업이야…….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p153  작중인물 위원 킴의 생각

 

 적이 존재한다는 것은 핀에게 새롭고 낯선 의미였다. 

골목 안에서는 밤이고 낮이고 고함과 싸움과

여자 남자들의 욕설이 가득했지만

적을 만나게 될 거라는 초조하고 괴로운 기대나

잠을 이룰 수 없게 하는 바람 같은 것은 없었다. 

핀은 아직 적이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몰랐다. 

핀이 보기에 인간이란 존재 안에는 벌레처럼 구역질 나는

어떤 것과 친구를 끌어들이는 따뜻하고 친절한 어떤 것이 함께 들어 있었다.」

p102  작중인물 핀의 생각

 

  레지스탕스 활동을 바라보는 위원 킴의 생각과 핀의 생각이 쓰인 본문의 비교를 통해 우리는 이탈로 칼비노의

의도를 확인하게 된다.  위원 킴의 생각이 쓰인 대목은 네오리얼리즘 시기 쓰인 일반적인 소설이 주시하는 보통의

표현을 상징한다.  초기 출간된 이 작품의 9장에 쓰인 위원 킴에 관한 부분이 이 작품의 전체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독자들은 이 작품의 재 출간 시 이 대목의 삭제를 작가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탈노 칼비노는

이 대목이 의도하는 바가 바로 그러한 생경함에 있다고 말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모택동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위원 킴의 생각은 목적을 위해

언제든 적이든 아군이든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쟁 아니 우리 현실을 대변하는 장치이다.  그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어린 소년인 핀은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고 모호하기만 하다.  그저 막연히 인간의 내면에는 서로 대치되는

불합리한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짐작할 뿐이다.  모르기 때문에 아직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소년을 화자로

내세움으로써 작가는 많은 것을 알아버림으로써 또 많은 것을 잃어버린 어른들의 세계를 고발하는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이탈로 칼비노가 문학사에 지니는 변별성이다. 

  이 작품을 읽고 이탈로 칼비노 작품세계의 특징을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  이 책이 앞으로 읽을 그의 작품에

하나의 열쇠가 될 거라 생각하니 앞으로의 독서가 가슴 설레게 기대된다.  그의 작품을 빨리 또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