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묭롶 2015. 12. 2. 19:00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을  『보이지 않는 도시들』,『존재하지 않는 기사』,

『반쪼가리 자작』순으로 읽었다.  세 작품을 읽으며 칼비노 작품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쿠빌라이 칸에게 마르코가

들려주는 도시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전직 기사였던

브라다만테가 들려주는 아질울포 기사와 관련된 이야기이며, 『반쪼가리

자작』은 어린 소년이 들려주는 자신의 외삼촌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특이점은 칼비노가 자신의 육성이 아닌 대리인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이다.  소설문학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에는 직설화법과 간접화법이 있다.  직설화법이 작품의 의도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인 반면,

간접화법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물에 독자의 역할을 대입할 여백을 둠으로써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칼비노는 후자의 방식을 택한다.  극우파에게 극좌파의 사상을 아무리 설득력있게 전달하려고 해도 소귀에 경읽기이다.  하지만 이념과 관련이 없는 어린아이가 자기가 들은 동화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이야기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회성이나 강제성에서 벗어난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외삼촌(선과 악으로 나뉜 두 명의 메다르도 자작)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메세지가 독자 자신의 입장에 따라 자유롭게 받아들여지길 기대한다.

 

「"온전한 것들은 모두 이렇게 반쪽을 내 버릴 수 있지."

바위 위에 머리를 기대고 누운 외삼촌이 꿈틀거리는 반쪽짜리 낙지들을 쓰다음으면서 문득 말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둔감해서 모르고 있는 자신들의 완전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나는 완전해.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껍질에 지나지 않았어.」p60

  이렇듯 칼비노는 언제나 한 발 물러서는 입장을 취한다.  또한 그의 작품 속 세계는 명징성과 거리가 먼 분명히

존재하지만 마르코가 목격한 도시의 모습은 언제나 변하기 때문에 직접적 묘사가 불가능하며, 존재하지만

실존하지 않으며(아질울포 기사) 심지어는 선과 악으로 절반으로 나뉜 불완전한 형태를 띤다.  그는 절대성의

세계를 거부하는 듯 보인다.  특히 그의 작품은 발화(發話)의 수단으로 구전(口傳)을 택함으로써 말이 갖는

불확실성 (유동적이고 발화자의 기억과 고정관념에 영향을 받는)을 통해 자신의 작품에 유동성을 부여한다.

 

  그는 선과 악으로 나뉜 극단의 두 인물(메다르도 자작)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이분법적 세계의 문제점을

우리 앞에 돌출시킨다.  언제나 "네", 아니면 "아니오"로 밖에 의사표현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하기를

강요받는 세상에서 우리는 이제 네, 아니오가 아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