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밀란 쿤데라

밀란 쿤데라, <자크와 그의 주인>을 통해 인간의 반복된 삶을 거부한 삶의 변주가능성을 실험하다.

묭롶 2017. 12. 16. 17:10

  『자크와 그의 주인』은 디드로의 소설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을 밀란 쿤데라가 희곡으로

재창조한 작품이다.  그는 이 책의 서두에 이 작품이 디드로에게 바치는 오마주라고 말하며 이 작품이

자신의 작품들 중 최고라고 손꼽는다.


디드로는 그 이전에는 소설 역사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간인

배경 없는 무대를 창조해 낸다.
~디드로는 우리에게 그의 인물들이 실제로 정해진

어느 순간에 존재한다고 믿게 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세계 소설의 역사 속에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
사실주의적 허상과 이른바 심리 소설의 미학에 대한 가장 철저한 거부다. p23


  밀란 쿤데라가 왜 이 작품을 최고로 꼽는지 책을 읽고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도 저마다 제각각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인류의 전체 역사에 비교해볼때 그건 엄청나게
오랜 시간동안 반복되어진 역사다. 역사에 길이 남을 아우라를 지닌 극소수의 인물을 제외할때,
인간의 삶은 반복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지긋지긋하게 되풀이 되는 멜로디인 인간의
삶속에서 길어올린 창작은 어떠할까? 


「아이와 의자와 그 모든 것이 계속 반복된다는 생각을 하면

이따금 불안해진단 말이다......

어제 저녁에도 포므레 부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속으로 생각했다.
늘 똑같이 변함없는 얘기가 아닌가? 

결국 포므레 부인도 생투앙의 모사품에 지나지 않느냐.
그리고 나는 네 가련한 친구 비그르의 다른 버전에 불과하고,

비그르는 잘 속아 넘어가는
후작과 비슷한 인간일 뿐이지.
~자크가 대답한다.  "그렇군요, 나리. 꼭 돌고 도는 회전목마 같습니다.
제 입에 입마개를 물렸던 제 할아버지는 저녁마다 성경을 읽었지만
늘 마뜩잖아 하셨죠.  그래서 성경이 줄곧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고 말하여, 반복을 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을 바보로 여기는 거라고 말씀하셨죠.」p143~144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창작은 불가능하며, 창작마저도 반복되는 삶의 재현이란 점에서 그 결과물인 작품을 통해

얻어지는 감수성마저도 예측 가능하다면 이제 창작을 위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밀란 쿤데라는 『자크와 그의 주인』을 통해 출생과 신분에는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는 인물들을 하나의 무대,

하나의 선율 위에 배치한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반복된 희로애락이라는 지겨운 멜로디는 변주의 음률을 연주하는 것이다.


「변주에서 베토벤은 탐험할 다른 공간을 발견했던 것이다. 

변주는 새로운 여행에의 초대였다. 

~외부 세계의 무한이 우리를 벗어났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러운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다른 무한을 놓쳤을 경우에는 죽도록 자책한다. 

~우리가 사랑한 존재를 놓치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일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던 베토벤이 원숙기에 이르러 가장 좋아한 형식이   변주였다는 것,

그 16박자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내면 세계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웃음과 망각의 책』p308~308


  베토벤이 교향곡의 닫힌 형식에서 벗어나 변주를 통한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고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려 했던 것처럼, 밀란 쿤데라는 별도의 무대장치가 없는 하나의 공간에 인물들을 배치함으로써
그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얻게 되는 관객의 다양한 정서의 획득 가능성을 실험한다.

  어쩌면 이러한 실험을 통해 나온 작품이 그의 최근 출판작인 『무의미의 축제』란 사실은 그가
아직도 그러한 삶의 변주를 통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으로 쿤데라의 소설은 일반적 서사의 틀을 벗어난다.  기승전결의 정해진 등산로가 아닌
작중인물 스스로의 행동에 의해 다음 장이 적어지는 구성처럼, 그의 작품은 정해진 길이 아닌
다른 길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미레크는 공산당이 그러듯, 모든 당이 그러듯, 모든 민족이, 인간이 그러듯 역사를

다시 썼다. 사람들은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다고 외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미래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무심한 공허에 불과할 뿐이지만 과거는 삶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얼굴이 우리를 약 올리고 화나게 하고 상처입혀, 우리는 그것을

파괴하거나 다시 그리고 싶어 한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바꾸기 위해 미래의 주인이 되려는 것이다.

『웃음과 망각의 책 』p49


  『자크와 그의 주인』를 읽고서 이 책의 출간 팔년 후에 출간된 『웃음과 망각의 책』이 밀란 쿤데라의
변주곡에 대한 해설서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의 작품을 읽고 나의 현재를 고민하게 된다.
작중인물 여인숙 주인의 대사처럼 우리의 삶이 누군가(과거)에 의해 이미 정해진 것이라면,
반복된 삶에서 탈출하는 변주의 방법을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과거를 바꾸기 위해
미래를 스스로 계획함으로써 과거를 극복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결국은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앞으로 내달릴수록 과거로 다시 회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인간의 반복된 삶이 나를 가둔 현실의 틀이라면 나는 주어진 현재의 틀에서
한발짝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내 가능성의 영역을 넓혀 나가야할까? 밀란 쿤데라가 내게 주는
숙제인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