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밀란 쿤데라

<만남> 밀란 쿤데라가 꿈꾸는 소설을 말하다.

묭롶 2016. 10. 19. 22:06

  너는 왜 책을 읽니?   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비밀통로를 찾기 위해서라고

답하겠다.  중학교 1학년 새학기 나른한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오후 책상에 엎드린 내 눈에

우연히 띈 학급문고에 꽂혀 있던 이상의 『날개』는 나에게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로의

문을 열어주었다.  『날개』를 만난 이후 나의 독서는 책에 담긴 내용보다는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 중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통로를 찾는데 집중되었다.  가령 우연히 읽게 된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을 통해 그 책에 서문을 썼던 '알베르 카뮈'를 알게 되고 그를 통해 '로맹가리'를

또 '앙드레 말로'로 이어지는 과정처럼 나는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또 다른 누군가를 또 다른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은 밤하늘에서 한 점 한 점 떨어져있는 제각각의 별을 이어모아

페가수스, 전갈 등의 별자리를 만드는 것과도 같은데, 내 독서여행이 그려내는 별자리가 바로

내가 블로그에 남기는 글이 되었다. 

 

  독서를 통한 비밀통로 찾기는 나에게 매번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만나게 되는 다른 세상처럼 밀란 쿤데라의 『만남』을 통해 나는 작가인 밀란 쿤데라를 만날 수

있었다. 

 

「실제로 태고 때부터 존재해 오던 모습 그대로인 서술은, 작가가 더 이상

단순한 '스토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주위에 펼쳐진 세계로 난 아주 큰 창들을

활짝 열어젖힐 때 비로소 소설이 되었다.  」-『커튼』p221

 

  그의 전작인 『커튼』이 밀란 쿤데라 작품 세계의 큰 줄기(소설문학의 확장성을 위한 시도)를 보여줬다면 『만남』은

그의 삶과 음악, 만났던 사람들과의 서신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단순히 보면 이번 에세이 집의 각각의 단락들은 서로 다른 음악(스메타나, 쇤베르크), 회화(프랜시스 베이컨),

문학(도스토옙스키, 셀린, 필립 로스, 베르그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개인적인 삶(프랑스 망명에 관한)을

싣고 있지만 마지막 장인 9부 『가죽』, 원(原)-소설:에 이르러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작가 밀란 쿤데라가 그리려고

하는 한 장의 커다란 그림의 일부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가 9부에서 언급하는 말라파르테의 『가죽』속 각각의 단락을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은 서로간의 연관성을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토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기존 소설과 대별성을 갖는다.  하지만 『가죽』의 에피소드들은

스토리의 인과성으로 연결되지 않지만 하나의 공통된 정서(죽음 앞에 느끼는 인간의 정서)속에 융화됨으로써 독자에게

인과관계에 의한 과거 소설의 이끌어가는 식의 귀결이 아닌 독자가 독서를 통해 스스로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소화해냄으로써 느끼는 자율적 결론의 가능성을 열어보인다.

 

「  다섯 단락이 각각 다른 시기, 다른 장소에 위치하는데도 단락들은 모두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다. 

 첫째 단락은 장 전체를 덮는 검은 바람의 은유를 전개한다. 

둘째 단락에서 이 바람은 우크라이나의 풍경을 지나간다.

셋째 단락, 즉 리파리에서도,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 주위를 늘 배회하는, 말 없고 경계를 풀지 않는"

죽음의 강박관념으로서 바람은 늘 존재한다. 

죽음과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 비겁하고 위선적이고

무지하고 무력하고 당황해하고 무장해제된 태도가 도처에 있다. 

~매우 이질적인 이 장 전체는 동일한 분위기에 의해, (죽음, 동물, 안락사의)

동일한 테마에 의해, 동일한 은유와 동일한 단어의 반복

(잦아들 줄 모르는 숨결로 우리를 사로잡는 멜로디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에 의해 훌륭하게 통합되어 있다.」 p223~224

 

  밀란 쿤데라가 밀라파르테의 『가죽』을 빌어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 『만남』이라는 에세이의 핵심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원형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지구의 한 부분을 사는 우리는 평면을 살 뿐 전체로서의

곡면이 아닌 단면을 살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실존은 단면이 아닌 연결된 곡면에 있다는 사실을 그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쉽게 말해 과거의 소설이 단면, 즉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원동력으로 나아가는

일방성의 에너지를 지니다면 밀란 쿤데라가 꿈꾸는 소설은 원형의 이미지를 띈다.   그  원형의 공간 속에서

전지적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존재는 사라진다.  대신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어떠한 정서를

느낀 독자의 다양한 감수성이 남을 뿐이다.  어쩌면 그는 소설 문학의 확장이 아닌 독서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의 한계를 확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처음부터 끝장까지 읽어나가는 식의 독서가 아닌

읽고 싶은 어느 장을 열어도 독자와의 소통의 문이 열려있는 열린 소설이 그가 꿈꾸는 소설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