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밀란 쿤데라

<우스운 사랑들> 삶의 희비극성을 담은 밀란 쿤데라의 단편 모음집.

묭롶 2017. 9. 23. 16:09

  밀란 쿤데라의  최신작『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그의 작품이 상황극 같다는

글을 적었었다.  영화 <도그빌>에서 곤경에 처한 여성을 대하는 '도그빌'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어느날 갑자기 마을로 도망쳐 온 한 명의 여성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모음집처럼 '밀란 쿤데라'의 소설 속 작중 인물들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촉발된 각종 사건들에 휩쓸리게 된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모험이라는 말에

안장을 맸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스스로 방향을 잡아 말을 달린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환상일 뿐임을.

  그 모험들은 어쩌면 전혀 우리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외부로부터 부과된 것임을.

  그 모험들은 전혀 우리를 특징지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그 모험들의 기이한 흐름에 전혀 책임이 없음을.」<누구도 웃지 않으리> p56


  얄궂다고 표현해야 할까?  약속에 늦어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접어든 길이 오히려

더 밀려서 약속에 늦어버린데다가 교통사고까지 난다면 그건 누구의 탓일까?  피해자('나')는

있는데 가해자(물론 결정은 내가 했지만, 상황을 예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를 지명하는게

참 난처한 상황이다. 

 

  삶의 아이러니를 표현해내는 밀란 쿤데라의 예민한 촉수를 그의 초기 단편 모음집인 『우스운 사랑들』

속에서 느끼게 된다.  그의 작품속 인물들이 처하는 난처함이 매번 자의적인 (결론은 잘못된)판단에 의해

 닭짓을 자주 하는 내모습 같아서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한편으론 그가 프랑스로 망명하기 전

체코에서의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어 더 소중하게 다가온 작품이기도 하다.


  구소련으로 명명되는 공산주의 체제하의 체코에서 살아야 했던 그가 인식하는 삶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그런 체제 하에서 보는 삶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졌을지 사람에게 절대성이 미치는 영향력이 무언지 그만큼

여실히 보여줄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지 궁금하다.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상황이 작가의식을 더 날카롭게

빛날 수 있도록 날을 벼렸던 계기가 되었단 생각도 들었다.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한 일상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삶의 결이 역사의 물결에 부대껴 날카로워진

가의 시선에 포착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현실을 길어올리는 그의 예민한 감각은 이미 그의 에세이 『만남』을 통해 발견한 바 있다.   망명을

준비하는 작가를 주변인으로 둔 지인이 지배체제에 소환당해 취조를 당했던 일을 말했을때

작중인물(아마도 작가)이 느끼는 감정은 언제나 환경(운명)과 불가항력에 의해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

느끼는 반항감의 표출(물론 상징적인 의미다)로 받아들여졌다.


「화장실 저수조를 채우는 물소리가 거의 그치지 않는 와중에,

나는 돌연 그녀를 강간하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 모두에게든 이런 난폭한 몸짓, 타인의 내면과

배후에 숨겨진 무엇인가를 찾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타인의 얼굴을 마구 구기는 이런 손의 움직임이 있다."」『만남』 p14~15


「~오늘 저녁처럼 그 초상화가 다 만들어지면

나는 그것을 쳐들어 보이며 비탄이 가득한 목소리로

"자, 딱하게도 이게 바로 나라는 인간입니다!"

하고 말하지요.  논고가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내가 나의 동시대인들에게

내밀어 보이는 초상화는 거울로 변해버립니다.」『전락』p141


  이 지점에서 중요한건 마구 구겨버리고 싶은 '타인의 얼굴'이다.   나는 이 얼굴을 '타자화된 시선' 또는

'거울'이라고 명명한다.  이 '거울'의 중요성은 이미 밀란 쿤데라의 초기 단편에서 등장했고, 또 알베르 카뮈의

『전락』에서 '웃음소리'로 등장했으며 이미 다른 문학작품에서 여러가지 다른 명칭과 다른 메타포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늘 자신을 믿지 못했고 교류하는 사람들에 대해

노예와 같은 예속 상태에 있었다. 

그는 잔뜩 주눅이 든 채 자신이 무엇인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그들의 시선 속에서 확인하려 애썼다.」<이십 년 후의 하벨 박사> p250


  우선 밀란 쿤데라의 초기 작품인 『우스운 사랑들』에서 이 거울은 '타자화된 시선'을 유지한다. 

이 단편들에서 작중 인물들이 중시하는건 타인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다.  그런 이유로 그의

작중인물들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자신의 판단을 유보한다.  자의식은 언제나 불분명하고 불충분하다. 

현실을 인식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부연설명이 필수적이다.


「~형이 미친 사람을 하나 만났는데 그 사람이

자기가 물고기고 우리도 다 물고기라고 주장한다고 가정해봐.

~"형이 그 사람한테 진실만을, 정말로 그 사람에 대해

형이 생각하는 것만을 말한다면

그건 형이 미친 사람하고 진지한 토론을 하는 데 동의한다는 뜻이고

형 자신도 미쳤다는 뜻일 거야.

~그런데 그렇게 진지하지 않은 어떤 것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건 자기 자신이 진지함을 다 잃어버린다는 거야.

나는, 나는 미친 사람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나 자신이 미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만 해."」<에드바르트와 하느님> p346


  <콜로키움>에서 타인들이 부여한 '사랑'에 대한 암시를 그대로 받아들여 간호사 '엘리자배트'를

사랑하게 된(사랑해야 한다고 믿는)의사 플라이슈만과 <에드바르트의 하느님>에서 교직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교장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던 에드바르트가 종교적 명령에 따르는 자신의 여자친구

알리체에게 느끼는 감정은 <이십 년 후의 하벨 박사>의 기자에게 느끼는 우리의 감정과 같은 연결 선상에

있다.  


  『우스운 사랑들』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와 다른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사랑'이라는

주관적 감정마저도 제도와 타인들에 의해 온전히 표현되지 못하고 왜곡되고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어쩌면 그런 상태에 놓인 개인들은 공산주의라는 절대성 아래 놓인

체코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보여지는데 그러한 각각의 상황에서 느껴지는 감수성의 총합이 『우스운

사랑들』의 실체이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춰지는지 그로인해 자신이 올바른 판단을 했는지를 묻는

<이십 년 후의 하벨 박사>의 작중인물 기자나 그런 기자에게 그릇된 거울(암시)을 비춰줌으로써 자신의

주치의 '프란티스카'를 유혹하게 하는 하는 하벨박사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밀란 쿤데라가 그린

초상화(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전락』속 클라망스의 말처럼 어느순간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단편들이 거울이 되어 비추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자신이 '타자화된 시선'에 예속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