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로맹 가리>

<마법사들> 로맹가리-> 에밀 아자르-> 작품을 통해 불멸에 이르는 마법사의 여정을 이야기하다.

묭롶 2017. 10. 18. 19:14

  마음산책에서 출간된 로맹가리의 열두번째 출판물이자 내가 이 출판사를 통해 읽게 된 열 한번째

로맹가리 작품인 『마법사들』을 읽었다.   나는 내 독서탐험의 골목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작가를

만나게 되면 그 작가의 전 작품을 다 읽는다.  물론, 그 독서의 과정에서 나는 골목탐험이라는 나만의

독서 기호에 맞춰 많은 출판사 중 그 작가의 작품을 가장 많이 출간한 출판사의 작품을 계속 읽는다.

  따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하나의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호흡이 어쩌면 그 작가의 작품을 계속해서

번역하는 번역자의 호흡과 닮아있지 않을까라는 내 추측 탓이다.


  마라톤의 긴 코스를 함께 뛰는 경쟁자에게 느끼는 미묘한 동질감처럼, 나는 오랜시간 한 사람의 작가를

아니 한 사람의 작품 전체를, 아니 한 사람의 인생을, 아니 한 사람의 꿈을 모국인에게 낯선 언어로 쓰인

그 작가의 많은 부분을 전해주길 원했던 번역가의 흔적이 담긴 작품 속에서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나는 김화영교수가 번역한 <책세상>의 <알베르 카뮈> 연작과 <민음사>의 <밀란 쿤데라>

연작, 그리고 <마음산책> 출판사의 <로맹가리>를 계속 기다리고 읽어왔나보다.

  째깍, 째깍 초시계의 시간이 흐른다.  그 사이 깊은 물속에 가라앉은 금고에 갇힌 마법사를 향한

사람들의 심경은 여러가지일 테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그중 하나는 마법사의 실패를 바라는

('그것봐, 뻔한 쇼하다 사고치네') 부류일 것이고, 나머지는 마법이 존재하길 바라며 마법사를 응원하는

부류일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無에 맞서 어머니에게 희망이 되기 위해 창 밖의 높은 곳을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을

자신의 어머니 앞에서 연출(『새벽의 약속』)했던 소년(로맹가리)은 그중 어느쪽이었을까? 


  로맹가리라는 이름으로는 마지막으로 쓰인 그의 『마법사들』을 읽으며 작년에 봤던 영화

<Now You See Me 2>가 떠올랐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어린시절 탈출불가 미션 마술을 펼치던 중,

실종됐지만 주인공은 아버지의 실패를 믿지 않는다.  눈으로 보여지는 실제는 언제나 만들어지는 가상에

의해 왜곡될 수 있는 현실일뿐 진실이 아니란 사실을 아는 주인공은 아버지의 마법이 실제한다고 믿는다. 


  나는 바로 이 실패하면 안되는 믿음의 실체인 '마법'에 마음이 쓰였다.  영화속 주인공은 아버지가 실패한

사기꾼이 아니라 위대한 마법사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믿음은 그가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을때도 그를 구하는 열쇠가 된다. 


  실제로 로맹가리는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마지막 책인 『마법사들』에 큰 애정을 갖고 이 작품을 출간

직전까지도 문장을 다듬고 수정했다고 한다.  왜일까?  중요한건 그가 이 작품의 작중인물인 '테레지나'의

죽음을 자신의 문장을 통해 문학적 부활로 이끄는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도 실제 연로한 작중인물인

아버지 주세페 자가의 이후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울어라.

가슴을 찢어놓을 정도로 다정하게 아버지가 말했다.

-너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울어라.  나 대신 울어다오.

불행히도 나는 이제 울 능력이 없어.  내게 더 이상 필요한 게 없어.

눈물은 현자의 돌보다 더 만들기가 어려워.

그것은 찾아오다가 어느 날부터 더는 찾아오지 않아.

언젠가 눈물은 우리를 떠난단다. 

우리 곁에서 자기 집처럼 펀치가 않은 거지.

온기도 없고 필요한 기후가 아닌 거야......

그는 웃기 시작했다.

-눈물은 오렌지 같은 거야.」p216


  작품 속에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실망을 느끼는 포스코의 심리를 표현할 때조차도 로맹가리는 머뭇거린다. 

왜였을까?  나는 작중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을 바라보는 주세페 자가의 눈길과 그가 들려주는 마법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시절을 보내는 포스코 자가를 다룬 부분을 읽으며, 어쩌면 로맹가리는 아들에게 

자신이 일반적 인간이 겪는 노쇠와 그로 인한 인간의 존엄과 동떨어진 마지막을 맞이하는 삶으로 기억되길  

원치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지막 소설의 마지막 말 속에서

 대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로맹가리의 유서 中>


「-난 절대 늙지 않을 거야.

아주 쉬워.  잉크와 종이, 펜과 광대의 심장만 있으면 돼.

~-베네치아야.  우리가 돌아왔어.」p443


『마법사들』에서 포스코에 의해 불멸의 사랑으로 부활한 '테레지나'는 포스코의 작품 속에서 영원한 젊음을

획득한다.  '테레지나'의 실제적 육체는 소멸되었지만 '포스코'의 작품을 읽는 독자에 의해 그녀는 언제나 실제를

획득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때부터였을까? 


「~그녀가 말했다.

-네가 나를 영원히 사랑하리라고 나는 확신해.  영원히.

나는 결코 너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나는 영원히 있을 거야.

네 기억 속에 따뜻하게.

~나는 심지어 점점 더 아름다워질 거야.

오래전에 죽었겠지만 네 덕에 나는 영원히 젊은 채 살아 있을 거야.

너는 나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을 거야.

~네 아버지는 네가 작가가 될 거라고 생각해.

네가 바라보는 모든 걸 지어낼 줄 아는 눈을 가졌다고 해.

포스코, 나를 잘 지어내줘」p223~224


  작가 '로맹가리'로서의 문학적 실제를 버리고 그가 그의 작품 『그로칼랭』에서 허물을 벗는 뱀처럼 

'로맹가리'를 벗고 '에밀 아자르'라는 나비로 프랑스 문단을 훨훨 비행한 후, 실제적 육체를 버리고 '작품'으로

남는 계획을 세운건.........

  그는 이러한 변신의 마법을 통해 더 이상 성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포스코 자가'가 아니라

자기 앞의 생』의  '꼬마 모모'일 수 있으며, 인생의 장미를 꺾으라고 외치는『솔로몬의 고뇌』의

 '솔로몬'이 되는 등, 자유롭게 그의 작중 인물들 속에서 불멸의 생을 누리게 되었다. 


  이제 그는 힘들게 당시 프랑스 문단의 비평가와 독자들이 그를 겉모습으로 평가한 뢰지옹 도뇌르 훈장을

주렁주렁 단 꼰대 늙은이에서 벗어나 나이도 인종도 시대도 아무 상관없는 그런 '작품'이 되었다.  그는

더이상 인간의 존엄을 설득하기 위해 『하늘의 뿌리』의 '모렐'처럼 전단지를 뿌릴 필요도 없다.  그저

독자가 그의 작품을 읽는 순간 '로맹가리'는 그 독자의 가슴 속에 불멸의 존재로 소환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의 최후의 마법의 실체이다.


  PS:  자신을 향한 최후의 마법을 걸었던 마지막 순간에도, 첫작품을 출간했던 그 처음에도 '로맹가리'는

         인간에 대한 유대감을 저버린 적이 없다.  그가 이 작품의 제목을 '마법사'가 아닌 '마법사들'이라고 복수로

         명칭한데서 나는 '로맹가리' 특유의 우애와 연대를 확인하게 된다.  또한 그런 문학적 '마법사들'이 많이

         생겨나길 바라마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나는 도전에 응하겠어.  자유, 존엄성, 인간으로서의 명예,

그 모두가 결국은 사람들로 하여금 목숨을 내놓게 하는

한 편의 동화일 뿐이라고 얼마든지 말해도 좋아.

~그런 때에는 인간이 절망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모든 것, 인간에게 믿음을 갖게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모든 것이 은신처를, 피난처를 필요로 하지. 

~나는 내 책이 그런 피난처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유럽의 교육』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