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로맹 가리>

<게리 쿠퍼여 안녕> 우리는 삶의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이다.

묭롶 2017. 2. 18. 12:22


    삶의 수준이 생존의 수준까지 떨어질 때 정신적 가치나 이상은 힘을

잃는다.  먹고살기 급급한 사람의 손을 잡고 희망을 얘기하고 내일을 얘기하는 건

참 밥 먹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이 죽었다고 공언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은

절대성을 잃었다.  자본주의의 성장으로 인해 획일화된 인간의 삶은 이미 반복된

생존 이상이 될 수가 없었기에 그러한 삶 속에서 우선시 되어야할 무언가는

사라져버렸고 인간은 단순히 삶을 소비하는 소비자로 전락했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실종된 경계가 있었다. 

 불을 피우고 자신의 말에 안장을 얹고, 사냥감을 쓰러뜨리고,

자신의 집을 짓는 것. 

이제는 그런 결정을 내릴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결정이 이미 내려져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집에 있었다. 

 자리를 잡는다는 건 순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제 당신의 삶은 하나의 토큰일 뿐이요,

당신 자신이 자판기에 주입되는 하나의 토큰이었다. 

토큰을 넣으시오. 

인서트 원insert one.」p195


  비록 현실은 진흙탕에 무릎까지 잠겨있을지라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고 말하던 로맹가리도 이러한 현실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나보다.  차라리 그런 현실이라면 시원하게 침 뱉고 독설을 날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유리할 것이다.

68년 5월 혁명 시기 발표된 이 책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어쩌면 애국심을 과도하게 부각하는 답답한 현실

속에서 이 책이 사이다 역할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플랑크톤이나 별이나 그게 그거다.  어딜 가나 과학 뿐이다. 

하늘도 과학이고 바다고 과학이다.

물질이고, 전기 충격이고, 우주 광선들을 동반하는 마그네슘 장이고,

진짜 똥이다.

달리 적당한 말이 없다. 

그 속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진짜 우주 비행사의 똥 벌레가 되어야 한다. 

그는 속도를 늦추고 멈춰 서서는 '적막'의 바다를 향해 코를 들었다.

저기 베텔게우스가 있군.  그는 그 별을 알았다. 

안녕, 늙은 창녀여.」p226


  이 작품은 기존의 로맹가리의 작품과는 반대의 위치에 놓인다. 이 책과 짝꿍을 맺는다면 미국의 인종주의를

다룬 『흰개』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작품 발표 불과 1년 전에 발표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실린

단편들에서도 그는  정말 아무것도 붙잡을 것이 없는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도 언제나 빛이 있다고 말해왔다. 

『하늘의 뿌리』의 모렐, 『유럽의 교육』의 도블란스키, 『솔로몬 왕의 고뇌』의 솔로몬, 『자기 앞의 생』의

꼬마 모모 등의 인물을 통해 로맹가리는 우리에게 인간이 지켜야할 최소한이 무언지를 알려줬으며, 그 안에서

인간을 믿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해왔다.


「정직?  우리는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정직할 수 없어. 

네가 말했지.  우린 다만 개자식들을 바꿀 뿐이라고,

인류사의 모든 혁명은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언제나 자신들의 개자식들을 찾아냈을 뿐,

더 많이 찾아보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이야.」p298


  그런 그였지만 자신이 그토록이나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외쳐왔던 이상, 존엄, 가치가 프랑스 국기의

자유. 평등. 박애 만큼이나 사람들에게 현실감 없는 공허한 메아리라고 여겨져서일까?  물론 나는 로맹가리식의

한쪽을 질근질근 씹는 듯한 문체를 좋아한다.  그냥 좋게 좋게 말하는 것보다 꼴보기 싫은 건 싫다고 직언을

날리는 것이 나의 성향이기 때문이다.


  "여보게 여기 자네가 추구해야할 존엄이 있네.  자네는 자신을 사랑할 필요가 있다네!"라고 작중인물

레니에게 『하늘의 뿌리』의 모렐처럼 얘기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레니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무슨 개똥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지?라고 희안하게 쳐다보거나 아니면 영화 '친절한 금자씨'처럼 "너나 잘 하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더이상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생산자가 될 수 없고 작중 표현처럼 인간의 삶이 자판기에 넣는 코인과 같은

현실 속에서 우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 책에 담겨있다.  여기에서 '게리 쿠퍼'는 절대성을

지닌 영웅을 상징한다.  그러한 영웅을 상실한 청춘들의 방황을 통해 그가 보여주는 건 역설적이게도 다시

희망이다.


「하지만 나는, 나는 도전에 응하겠어.  자유, 존엄성, 인간으로서의 명예,

그 모두가 결국은 사람들로 하여금 목숨을 내놓게 하는

한 편의 동화일 뿐이라고 얼마든지 말해도 좋아.

~그런 때에는 인간이 절망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모든 것, 인간에게 믿음을 갖게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모든 것이 은신처를, 피난처를 필요로 하지. 

~나는 내 책이 그런 피난처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p88 『유럽의 교육』


「"체르마트에 아는 녀석이 하나 있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지.

'모든게 다 엉망이야.  세상을 바꿔야 해.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하지만 모두가 일치단결할 수 있다면 더는 세상을 바꿀 필요가 없지. 

이미 완전히 달라질 테니까.

너 혼자서만 뭔가를 할 수 있어. 

자신의 세계를 바꿀 수 있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P194~195


  포기할 수 없는 희망에 대한 반어법적 표현이 바로 『게리 쿠퍼여 안녕』인 것이다.  호랑이에게 쫓긴

해님달님의 오누이가 하늘을 향해 동앗줄을 기도하자 하늘에서 동앗줄이 내려오는 동화 속 이야기와 같은

허무맹랑한 희망이 아니라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 있던 희망처럼 생의 가장 밑바닥을 디뎌야 획득할 수

있는 실체적 희망을 발견하길 바라는 로맹가리의 마음이 이 책에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