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로맹 가리>

<인간의 문제> 현대인에겐 상상력이 필요하다.

묭롶 2015. 3. 8. 23:30

 

   문학이 삶의 총체성을 표현한다면 과학은 구체성을 표기한다. 

예를 들어 문학이 '장미'를 표현할 때 장미의 색감, 모양, 향기 뿐만

아니라 장미에 얽힌 독자의 기억까지 환기(喚起)하는데 비해 과학은 '

장미'의 원소 기호와 그 입체적 모양과 구체성을 분석하여 표기한다. 

 

「그 말은 "예술 작품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드의 문장과  "예술 작품을 파괴하는 것은 열정이 아니라

증명하려는 의지다"라는 말로의 문장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에요.

 나는 나의 소설에서 '증명하려는 의지'를 제거했고 모든 증명을

거부했어요. 」 p315~316 

 

  산업혁명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한 과학은 인간의 삶에 보다

깊숙히 관여하여 필요이상으로 인간의 삶을 구체화 시켰다. 

  그 결과 '사랑'이라는 감정도 '보편성'이라는 통계상자 속에

포장함으로써 인간이 느끼는 '사랑'도 사회 통념이라는 범주에

머무르게 되었다.    인간은 '사랑'을 하게 될 때,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어떤 상황과 어떤 대화, 어떤 것들이 오가게 되는지를 먼저 떠올리게 됨으로써

범주에 속하지 못할 경우 혼란을 느끼기에 이른 것이다.

 

「내 책의 근본적 조건은 내가 '인간적 여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자세히 말해봅시다. 

우리 시대는 전체주의의 극단에 이르렀고 그것은 정치적 의미 뿐 아니라 노동과 가난, 공포와 혼돈,

우리를 짓누르는 위협, 그 총체적 위협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념적 체계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는 어려움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본질적 임무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를 오류와 진실로부터 동시에 지켜줄 어떤 인간적 최소치를 위해 언제나 충분한 여지를

보존하려는 관심을 갖고 우리가 행동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온 힘을 다해 외치는 것이 내게는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p20

 

『하늘의 뿌리』의 모렐이 주장하는 코끼리 보호와 『솔로몬 왕의 고뇌』에서 솔로몬과 마담 코라가

나이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지키려 했던 인간으로서의 존엄, 『레이디 L』에서의 속박당하지 않는

자유로움 등...... 로맹가리가 그의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바로 여성성으로의

회귀이다.  그는 과학을 남성적 세계로(파괴와 분석과 이성주의)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의 원형을

여성성으로 인식한다. 

 

  그가 말하는 여성성은 즉 꿈 꿀 수 있는 인간, 사회 제도의 틀 안에 갇힌 인간이 아닌 자신의 삶에

 가능성을 주체적으로 부여할 수 있는 삶을 뜻한다.  그런 면에서 로맹가리가 "나는 절대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반대합니다."라는  알베르 카뮈의 말에 절대적 공감을

표현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죽음마저도 굴복시키지 못할 인간의 절대적 자유를 꿈꾸며 이를

표현하는데 일생을 바친 카뮈와 과학문명에 박제되어버린 인간의 삶에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으로 얼어버린 심장에 온기를 전하려한 로맹가리는 사실 문학적 동지이다. 

             「그러나 모든 소설가는 삶과 경쟁 관계, 승부 관계에 놓여 있어요. 

               그런데 삶은 '문체'를 구사할 능력, 즉 '미리 생각'할 능력이 없어요. 

               이것이 예술이 삶보다 유리한 유일한 점이에요......」p263 

 

  로맹가리는 본능적으로 인간의 삶에 미치는 과학문명의 위험성을 감지한 것으로 여겨진다. 

자신의 첫 작품 『유럽의 교육』에서 전쟁이라는 참화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인간의 자유와 희망의

의지를 표현했던 그는 이후 『하늘의 뿌리』를 통해 지켜져야 할 존엄을 주장했다. 

  실상 『하늘의 뿌리』에서 보호대상은 코끼리였지만 코끼리는 과학 문명 앞에서 낱낱이 분석되고

설명되어지는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메타포였다.  그의 작품은 작중 인물의 시대와 배경을 달리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인간의 삶의 고유영역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이 심지어 아우슈비츠, 벨젠, 트레블링카에서도

               글을 썼다는 사실을 안다.  헝겊 조각, 종이 상자, '생리용'종이에도.  '

               문학'이 고통의 문자로 변했을 때 이토록 진정성과 깊이를 얻은 적도 드물다. 

               왜냐하면 대학살의 희생자들은 글을 썼기 때문이다. 

               ~ 1943년 유대인 거류지의 폭동이 일어난 후에 총살당한

               에마뉘엘 린젠블룸은 그의 연대기를 우유 깡통에 넣고 뚜껑을

               납땜한 후 땅에 묻었다.  ~그의 연대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글을 썼다.  심지어 아기들까지도." 」p328

 

  그가 인용한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과학문명의 위협 속에서 인간의 존엄(고유한 영역)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글쓰기에서 찾고 있다.  그가 평생동안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절망적인 상황과 위협 속에서도 코끼리 보호를 멈출 수 없었던 모렐처럼

로맹가리는 글쓰기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고 외치고 설득하고 주장하고 싸우는 것이다. 

 

            「내 소설 속 등장인물 가운데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것은 나의 '비명'이죠.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는 인간적 깃발에 대한 나의 개념이죠. 

               책에는 전혀 거리가 없었어요. 책이 바로 나죠. 그리고 한 줄 한 줄 쓸 때마다 글쓰기가

               절망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투입한 서정성이 아마도

               문명화된 인간의 마지막 언어라고 느꼈어요. 」p266

 

  로맹가리 그 자신도 살아있는 동안 깨닫지 못했을 그의 다작(多作)의 이유를 그의 글모음을 통해 알게

되었다.  더불어 인간의 삶에 미치는 문학의 영향도 생각해보게 된다.  만약 인간의 문명에 종말이 온다면

그건 문학의 상실에서 시작될 것이다.  꿈꿀 수 있는 여백을 지니지 못한 인간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