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을 통해 본 人間의 여정(旅程)

묭롶 2014. 8. 24. 13:36

 

  人間, 상형문자인 한자로 보는 인간은 뜻 그대로 본다면 사이에 놓인 인간

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人間이라는 한자는 단 두 글자에 인류의 공통성과

특징을 담아냈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는

말로 십자가에서 생을 마친 예수나 궁극의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싯다르타를(내가 모르는 다른 종교성인을 제외하고) 빼놓고 그 자신의

완성을 이뤘다고 말 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대부분 인간의 삶을 여정(旅程)으로 표현한다.  사람인에 사이간이라는

한자풀이처럼 인간의 삶은 어떠한 무엇을 위한 과정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 어떠한 무엇에 차이는 있지만 무언가를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인간은 공통점을 지닌 존재이다.  인간과 달리 동물의 삶은 완성을 위한

과정이 없다.  생존을 위해 입력된 본성일 있을 뿐 생물군 중에서 최고가

된다거나 보다 훌륭한 동물이 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은 아직까지 보여지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에게 동물에게는 없는 이름이 있는 이유는 개개의 인간 각각의

삶이 모두 제각각의 고유성을 지니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이름을 후대에 남긴다는 말도 결국은 한 인간의 삶의 고유성이 다음 과정을 밟아가야 할 다른 인간에게 길잡이(이정표)의

역할을 하게됨을 뜻한다.  어떠한 무엇(완성)을 위한 삶의 과정의 총합이 人間일때, 그 출발의 길잡이(이정표)가 되는

존재는 대부분 그들의 부모이다.  부모가 걸어 온 삶의 과정은 아이의 발육과정을 지켜보며 그 과정에 맞는 도움을 주는

부모의 역할처럼 한 아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어머니의 부서진 얼굴을 볼때마다

내 운명에 대한 놀라운 신뢰가 내 가슴속에 자라남을 느꼈다.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나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위험과 대면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P46

 

  로맹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의 로자 아주머니나 『하늘의 뿌리』의 미나,

『새벽의 약속』에서 빅서해안에 누워있는 그의 상상속에서 콧등을 문지르며 친밀감을 표현하는 물개는 모두

로맹가리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메타포이다.  2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했으며 문학가이자 프랑스 대사였던

로맹가리의 삶은 그의 어머니가 꿈꿔왔던 그의 모습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자식을 그녀가 꿈꾸는 이상국가(프랑스)의 국민으로 만들기위해 러시아에서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에

정착했다. 

 

  로맹가리에게 삶은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 상태인 로자 아주머니가 하루에도 수 십번 오르내려야

했던 계단으로 인식되었다.  자식의 프랑스 영주권 취득과 장래를 위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직접 장을 보고

수십 수백번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단 한 순간도 포기하는 모습을 자식에게 보이지 않았던 한 인간(어머니)의

삶을 지켜본 로맹가리가 '인간'에 대한 글을 쓰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새벽의 약속』은 로맹가리의 자전적 소설이다.  어린시절부터 그를 작가로 이끈『유럽의 교육』을 쓰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자신의 소설이 허구임을 강조했던 그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로맹가리 그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끝났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로맹가리의 이야기이지만 실상은 로맹가리를 한 사람의 주체적

인간으로 만들기까지의 어머니의 삶의 과정을 담고 있다.  어머니가 그의 자식의 미래가 되길 원했던 모습에 이르러

어머니의 삶은 '끝났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끝(어린 로맹)'에서 다시 시작된 '삶(작가로서의 로맹가리)'의 당위성과

앞으로의 여정을 예고한다. 

 

「오래전부터 나는 더는 조롱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는 인간이란 결코 웃음거리가 될 수 없는

무엇임을 잘 알고 있다.」P51

 

「가장 혹심한 정치적 또는 군사적 난투를 겪으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 적과 함께하는 공통의 전선을 꿈꾼다.

나의 자아 중심주의는 나로 하여금 형제 살해의 투쟁에 완전히 적응할 수는 없게 만들며,

근본적으로 나와 같은 운명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빼앗을 수 있는

그 어떤 승리도 나는 생각할 수 없다. 

또한 나는 완전히 정치적인 동물이 될 수 없다. 

끊임없이 내 적들 모두에게서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정말 고질병이 아닐 수 없다.」P261

 

  그의 『유럽의 교육』이 작가 로맹가리의 출발과 끝(완성)을 하나의 원형의 고리로 보여준다면 『새벽의 약속』은

인간 로맹가리의 삶의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서야 로맹가리가 문학을 통해 반복적으로 말하는

생명에의 존엄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와 왜 그가 존엄을 전파하고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로맹가리는 그 자신의 삶이 어머니라는 한 인간의 존엄을 양분으로 문학적 꽃을 피워낼 수 있었다는 점을 정말 일찍

깨달았다.  자신의 사후에도 자식에게 편지가 전달될 수 있도록 미리 몇 년분의 편지를 쓰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전 생애를 앞에 두고 로맹가리는 단 한 순간도 삶에 비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절망하지 않았다.  오늘까지도 나는 절망하지 못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노력은 항상, 완전히 절망하는 데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별 도리가 없었다.  내 안에는 항상 계속 미소 짓고 있는 무엇인가가 남아 있는 것이다.」P277

 

 『자기앞의 생』에서 꼬마 모모는 할아버지에게 사람이 사랑이 없이도 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할아버지는

불행히도 사랑이 없이도 살 수는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로맹가리는 알고 있다.  사람이 지금 현재 사랑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사랑받았던 기억이 없다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또 그는 알고 있다.  인간의 사랑이 존엄(尊嚴)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자신의 전 작품에 걸쳐 생명의 존엄을 설파한 로맹가리는 타인의 존엄을 서로 지킴으로써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더 친밀한 사랑으로 채워진 희망적 세계로의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새벽의 약속』은 로맹가리 그 자신과 어머니의 삶을 통해 인류애로 나아가는 과정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로맹가리는 이 책을 통해 삶이라는 인간의 여정에서 앞으로 한 발을 떼어놓게 만드는 희망이

무언지와 인간이 바라봐야 할 완성으로서의 방향이 어디인지를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