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로맹 가리>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로맹가리, 인간을 노래하다.

묭롶 2014. 7. 6. 17:24

 

<언젠가는~>  - 가수 이상은

 

젊은 날엔 젊음을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그러나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가수 이상은의 노래 〈언젠가는〉의 가사구절이다.  가사구절처럼 뭔가를

인식한다는 건 현재가 아닌 언제나 과거가 된 지나간 삶이다.  현재나 미래는

실체화되지 않아서 인식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문학은 작중인물의 특정한

삶이 보여주는 실체화된 감수성을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문학을 포함한

문화예술 장르는 인간에게 인간 삶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장르별 특성에

따라 독특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하지만 최근 문화예술은 인류문명에

값하는 아우라를 지향하기 보다는 대중문화의 트랜드를 쫓는 경향을

보인다. 

 

「사랑의 시는 시인들의 작품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거기에 있었다. 

우리가 만나기 전 나의 삶은 연속된 스케치, 여자들의 연습 그림, 삶의 연습 그림,

로라 당신의 연습 그림인 것만 같았다.  사랑의 몸짓, 많고 많으며 가지가지 다양한 잠자리에,

모든 안녕과 작별에 진정성은 없었고, '누구누구의 방식으로' 모방된 사랑이 숨겨져 있을 뿐이었다

때때로 그것은 아무렇게나 되어버리고 작업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비법은 재주를 감추고 쉬운 것이 남는다. 

별 쓰임새 없이, 비싸지 않게, 쾌락만으로도 살 수 있다.」P37~38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기에 좋고 듣기에 좋은 것들을 즐겨찾는다.  그래서 대중문화의 전반은 문화를 소비하는

 

젊은층의 수요메 맞춰 트랜드가 형성된다.  인간의 크게 삶은 생(生), 노(老), 병(病), 사(死),

희(喜), 노(怒), 애(哀), 락(樂)으로 구성되지만 대중문화는 젊음과 삶 그리고 즐거움을 주로 취급한다.  

 

  대중문화가 나이듦과 소외, 그리고 죽음과 아픔을 다룬다는 건 독특한 상황과 목적을 위한 예외적인 경우가

다수여서 사람들이 애써 보려하지 않는 장르를 보편성으로 끌어올린다는 건 현재로선 힘든 일이다. 

로맹가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보다는 늙거나 소외된 계급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하지만 보편성의 세계에 편입하지 못하는 그의 인물군들이 펼쳐내는 삶의 실상은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로맹가리의 작품을 읽노라면 그의 독특한 인물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같은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게되고 그 깨달음의 과정 속에서 여타의 작품들에서 느끼지 못하는 큰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였으나 창녀였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았을때 예수는 크게 기뻐하며 칭찬했다는 일화-물론 예수가 죽었을때도

그 곁은 지켰던 사람은 마리아였다-내가 싫어하는종교의 일화지만 감동은 뜻밖의 곳에서 얻어진다는

메세지를 준다.)

 

 

 

 

 

  삶과 젊음에 대한 찬미가 대부분인 대중문화에 반하여 로맹가리의 작품은 저물어가는 석양(노년과

소외와 고통)의 아름다움과 애틋함을 사실적인 문학적 감수성으로 길어올림으로써 인간의 삶에 대한

경의를 이끌어낸다.

 

  대중문화의 현재를 놓고 봤을 때, 로맹가리는 독특하다.  그의 작품은 인간에 대한 백과사전과도 같다. 

그의 작품을 읽노라면 한 인간의 역사이자 보편적 인류라는 큰 물줄기에 내 자신이 합류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는 정신적인 젊음을 지닌 채 육체적 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하는 괴리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해낸다. 

 

  이 작품을 읽고 로맹가리의 단편 「마지막 숨결」이 떠올랐다.  『이 경계를 지나면~』은 로맹가리의

작품세계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작품이다.  행방불명된 아나키스트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구상된

『레이디 L』이나 기름유출로 인해 죽어가는  새떼에서 영감을 받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나,

그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기앞의 생』,『흰개』,『솔로몬 왕의 고뇌』등과 달리 이 책은 로맹가리가

소설을 어떤 방식으로 구상하고 전개해 나가는지를 발견하는 기쁨을 선사한다.  (이 소설의 출간당시

프랑스독자들을 포함한 문단에서는 로맹가리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고

평했다는데 그건 그의 단편 「마지막 숨결」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로맹가리 입장에서

참 상황이 우스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숨결」은 다가오는 죽음이 아닌 능동적 죽음(사회적 명예를 잃지 않은 채)을 선택한 주인공이

2차대전 당시 접대부였던 지금은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된 여성의 도움을 받아 익명성의 장소에서 죽음을

맞기 위해 계약한 유고인 청부살인업자를 기다린다는 내용의 단편소설이었다.  이 단편이 장편이 되면서

작중인물의 선택적 죽음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기 위해 주인공은 2차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전직 전투비행단

조종사이면서 현직 부도 직전의 출판업 사장이 되고 자신의 아들보다 어린 사랑하는 여인을 더 이상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끼는 인물로 그려진다.

 

 「"무라도프를 보내주지." 그 이튿날, 나는 페어팩스의 한 카페에서 무라도프를 만났다. 

그의 진짜 이름이 뭐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유고슬라비아 사람들이 서쪽 연안에서

 '자리를 잡아가고'있는 중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마지막 숨결」P82

 

        「~그리고 이번엔 유고슬라비아 사람은 찾으러 가지 않을 생각이에요.  맹세하지요......」P223 

 

 「마지막 숨결」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이 경계를 지나면~』에서 주인공은 유고인이 아닌

스페인 국적의 좀도둑을 청부살인의 대상자로 지목하는 치밀성을 보이는데, 이는 자신의 작품을 놓고도 유머를

잃지 않는 로맹가리식의 냉소를 드러낸 듯 하여 난 그 대목을 비교해볼 수 있어 참 기뻤다. 

 

                       「~난 그 전에 죽고 싶어, 자......."  "뭐 하기 전에요?" 

                    ~"바다가 오염되기 전에, 삶이 제 아름다운 깃털을 잃기 전에,

                                   모든 장미가 회색이 되기 전에."」P69

 

 어쩌면 단편과 장편을 통해 같은 방식의 죽음을 여러 번 심사숙고한 결과 로맹가리는 운명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자신이 직접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만약 로맹가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알베르 카뮈가 1960년에 자동차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 않고 노년을

맞았다면 과연 어떤 작품을 썼을지 궁금해진다.  로맹가리만큼이나 인간의 운명지어진 죽음을 앉아서 기다리진

않았을 카뮈이기에 그가 노년을 맞았거나 살아서 로맹가리의 죽음을 알게되었다면 뭐라고 얘기했을지 궁금해진다. 

아마 두분다 저 세상에 계시니 서로 해야 할 얘기들은 그곳에서 오래오래 나눌 것 같아서 내심 그 모습을

상상해보니 흐뭇하다(시가를 입에 문 채, 개구쟁이 같은 큰 눈으로 카뮈를 바라볼 로맹가리나 그 특유의 웃을 듯

안 웃는 것 같은 미소를 머금은 채 로맹가리를 마주볼 카뮈를 상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