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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문학연구의 새로운 지평>이상이 살던 시대로 가서 만나본 李箱

묭롶 2017. 10. 8. 16:49

  지금까지 이상연구의 대부분은 이상의 작품을 지금의 현재로 소환한 상태에서

이뤄졌다.  이 경우 각 개별 작품을 분석하는 기준점은 언제나 현재였다.  그런 이유로

영화에서 과거를 다룬 시대극을 보는 것처럼 '이상'은 추상적이고 멀게만 느껴졌다.

  항상 핵심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담 너머로 까치발을 돋우고 아스라히 보이는 담장

너머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애타는 갈증이 지금까지의 이상연구였다.


  그간의 연구물들을 읽으며 물론 그간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즐거움이 없지 않았지만

이상 작품에 다른 접근 방법은 없을까라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이상 문학연구의 새로운 지평』은 나를 타임머신에 태워 이상이 살던 1920~30년대의 경성으로 데려다

주었다.  신범순의 논문 「실낙원의 산보로 혹은 산책의 지형도」는 이상의 작품을 크게 '백화점 텍스트',

'길과 산보의 텍스트', '자화상 텍스트' 등으로 분류한다.  그중 '길과 산보의 텍스트'를 통해 살펴본 실제

이상이 걸었던 청진동 뒷골목과 청계천 뒷골목, 그리고 공설시장과 종로를 기점으로 나뉜 동서 대로와

일본인 거주지역인 남촌과 조선인 거주지역인 북촌으로 구분된 지형이 눈 앞에 펼쳐지듯 설명되어 있어

흥미진진했다. 


「~우리는 이상의 『날개』를 다른 식으로 한번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즉 이 장면에만 너무 근접해서 보지 말고, 이것을 『날개』전체 구도 속에 놓고

다시 보아야 한다.  그것은 주인공이 칩거하는 유곽의 공간과

백화점과 경성역이라는 전체 지형도를 통해서,

즉 주인공이 배회하는 산보의 전체 지형도를 통해 접근해보는 방식이다.」p79


「~이상은 이 소설의 주인공을 이 미로의 유곽에서 멀리 떨어진

경성역과 미쓰코시 백화점에 갖다놓음으로써 이 미로의

게임을 끝내려고 했다. 

미로 속의 꿈과 가짜 사랑은 이미 철저하게 허구성이 폭로된다.

백화점으로 상징되는 근대의 거대한 시장이 뿌리는

마력은 골목들 깊은 곳에까지 철저히 침투하고 있다는 절망감이여기 있다.」

<실낙원의 산보로 혹은 산책의 지형도>p100


  그리고 '백화점 텍스트'를 통해 당시 일제라는 타의에 의해 유입된 자본주의가 조선의

근대에 미친 영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백화점(미쓰꼬시)' 시편 속에서 그러한 정경을 바라보는 이상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자화상 텍스트'를 통해 이상의 거울 시편에 대한 그동안의 해석(분리되어

화해하지 못하는 자아에 대한 시정(詩情))에 반론을 제기한 부분(분리에 성공하지 못함에 대한 자조와

비탄의 정서)에 신선함을 느꼈다.


「~특히 이상의 소설에 있어서 주인공의 솔직성이 우세하여 좀더

김해경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에서는 여지없이

'그'라는 삼인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가면쓰기'가 성공하여 위악적인 이상 쪽으로

좀더 기울고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에서는 '나'라는 일인칭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 볼 만하다. 

결국 이상의 소설들은 크게 보아 '거울시편'이 소설로 치환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거니와, 가면을 쓰고 비밀을 품은 채 거짓말을 일삼는

'거울 밖의 나'는 내가 지켜내고 싶은 '나'이며, 거울 속의

가면이 벗겨진 채 벗겨진 맨 얼굴은 내가 부정하고 싶은 '그'인 것이다.

'오감도' 「시제1호」의 '13인의 아해'에서부터 「종생기」의

"와글와글 들끓는 여러 나"에 이르기까지 이상 문학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이처럼 분열된 주체, 즉 분신의 문제이다.」

<이상 문학에서 '분신' 테마의 의미와 그 양상> p338~339


 '이상'에게 '거울'이 갖는 의미를 이번 논문집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알베르 카뮈의 『칼리귤라』와

『전락』에서 '거울'이 표면적 자아의 실체를 비추는 실제의 '거울'의 역할을 했다면 이상의 '거울'은 '자아'가

구축하려고 했던 분리된 자아를 담아내려고 했던 틀이다.  '이상'이 그려내고자 했던 분리된 자아는 그 틀이

도화지가 아닌 '거울'이 됨으로써 실패하고 만다. 


「~위의 예문들은 이상의 시선이 X선과 같다는 것,

그 시선으로 포착된 세계는 미로의 형상으로 재현된다는 것,

~말하자면 그는 '도시 산책가'이기 이전에 이미 '도시 설계자'였다.」

<이상 시에 나타난 시선(視線)의 정치학과 거울의 주체론>p273


「~텍스트에 '이상'이라는 이름을 노출시키면서

그가 겨냥했던 것은 그 조각조각 나누어진 텍스트(text)들을 모아서 말 그대로

하나의 직물(texture)을 짜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상'이라는 '텍스트'를 만들어 '이상'이라는 '삶'을 구성하는 작업이다.

그러니 '이상'이라는 텍스트가 완성되는 그 순간 김해경으로부터 이상으로의

탈주는 완성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가 죽음이 지척에 와 있음을

모르고 있을 때에 미리 『終生記』를 쓰고자 했던 까닭이다.

김해경이 죽기 전에 이상이 먼저 '상징적으로'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위 동일 논문  p293


  특히 이번 연구 모음 중 가장 흥미로웠던 연구는 이상의 시편이 높은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까마귀의

시선, 즉 오감도(烏圖)에 해당된다면 그의 소설은 '시'를 설계도로 삼아 쌓아올린 건축물에 해당된다는

신형철의「이상 시에 나타난 시선(視線)의 정치학과 거울의 주체론」편이었다.  이 논문은 이상의 오감도

연작시가 지닌 투시도적 성격이 소설로 구현되는 방식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그간 난해하다고

여겨졌던 '오감도' 연작의 선입견을 벗어나 그 본래적 성격(투시도)을 소설을 독해하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날개』는 근대 도시의 소비적 면모를 관찰하는

산책자의 시선에 입각해 혹은 타락한 자본의 교환 논리에 입각해

해석해야 할 작품이 아니라 한 전염병자의 신체를 둘러싼

격리와 감시 그리고 교화의 논리라는 근대적 신체 훈육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닌가.

본고는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하여 무엇보다 작품의 서사를 충실히

따라가는 가운데 '아내-매춘부'의 구도 대신 '아내-감시자'의

구도를 통해 『날개』의 의미를 재고해 보려 한다.」

<근대적 신체 훈육의 관점에서 본 『날개』의 의미> 中


「~이렇게 보면 삼십 삼 번지는 격리 병동과 같은 공간으로 해석된다. 

'나'는 그것을 의도적으로 유곽으로 위조하는 한편 아내와 내 방 사이에

존재하는 장지문의 절대성을 밝힌다.

~아내는 사람을 만나고 '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혹은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폐기하거나 폐기당한다.

이런 점에서 삼십삼번지와 아내의 존재는

전염병 격리병동과 그 간호사-감시인의

형상으로 창조되는 것이다.」동일 논문 p225


  또한 이상의 『날개』에 대한 새로운 독해법을 다룬 김주리의 「근대적 신체 훈육의 관점에서 본 『날개』의

의미」는 그동안 『날개』에 씌워져 있던 선입견의 휘장을 단번에 걷어젖히고 그간 일관되게 매춘부로 고정된

'아내'를 결핵환자 이상을 병원에 가두고 그를 감금상태에서 관리하는 '감시자'로 해석함으로써 이상의 다른

작품 연구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김주리의 논문이 이상의 시대를 기준으로 한

그의 작품 연구의 모범사례란 생각을 해본다.


  이 연구목록에 수록된 논문들이 모두 그간의 이상연구의 보편성을 넘어서는 건 아니지만 오감도 시 제 1호의

뚫린 골목과 막다른 골목이 그 당시의 시대상을 상징한다는 해석, 뚫린 골목과 막다른 골목을『날개』에서

유곽의 미로 같은 구조로 대입하는 등의 새로운 시야를 제공하고 작품 연구에

새로운 방법론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부분들이 눈에 띄여 개인적으로는 이번 모음집의 독서가 즐거웠다.


「~백지와 잉크의 짝은 '작가인 나'를 상징한다. 

작가인 나는 지성의 극치를 들여다 본 일이 있는(천재)

정신분일자(박제)를 주인공으로, 온갓 것을 상징하는 여인의

반만을 누리는 생활이라는 소설의 내용을 친밀하게 설계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인 나'는 그런 생활에 '한 발만' 들여놓고

'소설 본문 속의 나'와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보고

낄낄거린다고 한다.  '날개'에는 '소설 본문 속의 나'와

'작가인 나'가 공존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작가인 나'란 白紙 위에 글의 설계도를 짜는 주체이며,

그렇다면 白紙와 짝을 이루는 '잉크'가 등장하는 부분의 '나' 역시

'작가인 나'가 등장하는 부분이라고 봐야하는 것이다.」

<지느러미와 날개의 변증법>p260


  이번 논문을 통해 나는 난해하고 어려운 작품을 쓰는 작가 이상이 아닌 패배가 자명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을

'이상'이라는 분리된 분신을 통해 다양한 문학적 방법론을 시도했던 인간 김해경의 포부와 좌절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도 위트와 낭만을 잃지 않았던 이상 특유의 표정과 웃음이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듯 했다. 

  그리고 언제나 변신의 귀재인 연이 앞에 패배할 수 밖에 없는 '나'(李箱)가 실화(失花)의 실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작품 속에서 다른 여러명의 여인들과 패배가 자명한 바둑경기를 두는 '나'를 바꾸는 선수교체(변신)가

이상의 동경행의 목적은 아니었을까라라는 망상도 해본다.  물론 이 블로그 후기는 나만의 것이기에 펼치는

상상의 나래다.(이건 나만의 망상이다.)

  하지만 이번 독서를 통해 나는 앞으로의 '이상 읽기'가 난독 보다는 이해의 범주로 놓일 수 있겠다는 희망도

가져본다.
ps: 물론 나도 오타를 자주 내는 편이지만 논문수록집에 오타가 여러군데 보여 개인적으로 편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