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자료/이상연구

<李箱문학전집 5> 눈 먼 者의 李箱 더듬기.

묭롶 2017. 7. 16. 22:18

  이 책 한권을 읽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상 문학이 지닌 본래적 난독의 문제도 있지만, 수록된

논문을 독해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내 지식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해의 범주에

놓기 어려운 李箱의 작품과 이상문학에 대한 각종 연구성과물을 읽는 것을 포기 못하는 이유는 이상 작품의

본래적 '난해성'(이해 불가능)에 있다.  이상연구만큼 연구의 출발선에 상관없이 모든 연구자들에게 공평하게

어려운 연구대상이 또 있을까?  필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연구에 비할만한 난독(難讀)이다. 


  이상을 연구하는 연구가들이 연구의 출발점에서 연구를 위해 선택하는 방법론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나의 출발점은 어떤 연구의 성과물로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함이라는 보편의 경우와는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다.

중학교 1학년때 그의 작품 『날개』를 통해 우연히 만난 이후 내 가슴 속에 '李箱'은 물음표로 각인되었다.


  그에 대한 호기심에 그의 작품들에 다가가려할때 날 넘어뜨린 돌뿌리는 '난독'이었다.  읽기에도 어렵고 그래서

이해도 어렵고 그 무엇보다 한자가 많은 그의 작품을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읽는다는 건 무모함에 가까운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단 한 권을 읽어서 그 전체 내용이 파악 가능한 소설책도 아니고,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이 李箱이라는 인물이 뭘 얘길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궁리 끝에 나는 이상을 연구한 논문들을 통해 그 각각의 방법론이 길어올린 결과물을 살펴보기로 했다.

국내외 석,박사 논문중 이상관련 논문들을 살펴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난독의 가려움으로 가득한 내 등을

시원하게 긁어줄 효자손이 되어주지 못했다.  다만 이상문학의 해석을 위한 다양한 새로운 시도들에 흥미를

느꼈을 뿐이다.


「수없이 많은 방법론의 적용과 현란한 의미 부여 이전에 당연히

선행되었어야 할 일차적인 의미 해독조차

충실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상 문학 연구의 정직한 현주소이다.」

-<이상 문학에 나타난 책과 독서의 은유>(임명섭) 中 p132


  물론 내가 읽은 적은 수의 논문을 가지고 내가 이런저런 얘기할 처지는 못되지만, 그래도 전문성을 띤 집단을

한발쯤 뒤에서 지켜본 내 입장을 얘기하자면 그동안의 이상연구가 핵심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수박겉핥기에

치중했다는 느낌이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에도 이상연구가 언제나 원점으로 되돌아오게 된 상황이

여러번 언급되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이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출발한 나에게 李箱은 밤하늘에 떠있는 빛나는 별과 같다.  분명히 눈으로 보이지만

그 좌표의 추정치만 있을뿐 실제 모습에 다가가기 힘든 별이 이상이다.   나는 다만 이상관련 문헌들의 독서를 통해

그 별을 망원경으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을 뿐이다. 


  역시 읽는데 너무 오래걸린『李箱문학전집 5』도 나의 그런 바램의 연장선에서 독서가 이뤄졌다. 

이 책에는 이상연구에 관한 총 10개의 논문이 실려 있다.  각 논문마다 이상문학에 접근하는 방법론이 모두

달랐지만 한편의 작품 '산촌여정'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 「이상 시학과 <전원수첩>의 수사학」(박현수)을 보인

이상의 <산촌여정-성천기행 중의 몇절>에 나타나는 활동사진과 공동체적인 동일시」(월터K.류) 두 편의 논문을

비교해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또 이상의 시를 도형의 개념을 도입해 해석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

「도형에서 바라본 이상 시의 해독」(조수호) 편도 그동안의 논문과는 다른 방법 을 제시해주고 있어 그 부분은

너무 신나게 읽었다.  또 이 책에서 건져올린 성과는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대칭점에 이상의

『날개』를 놓고 그 두 작품의 상관관계를 다룬 「<날개>의 생성 과정론」을 다룬 김윤식교수의 논문이었다. 

  이상연구의 주변부에 위치한 내게 문헌을 통한 새로운 견해와 새로운 방법론, 그리고 그 새롭게 알아간다는

경험이 주는 즐거움은 결국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상연구 곁에 붙들어 놓는 동인이다.


  이번 독서의 내나름의 즐거운 성과를 다음과 같이 책의 내용을 통해 요약정리해본다.


1. 「도형에서 바라본 이상 시의 해독」(조수호)

    위 논문은 이 책에 수록된 10개의 논문 중 가장 크게 흥미로웠다.  어느 학교 대학원 석사, 박사를 거쳐 어디

교수로 재직중이 아닌 단순히 '이상연구가'로 이름을 올린 분이라서 더 마음에 끌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이상의 시를 도형화 시켜 이를 통한 새로운 해석의 방법을 시도한다.  그의 논지는 이상의 시가

현실(삼각형)+이상(역삼각형)=사각형 으로 치환이 가능하며 또 이 사각형은 운동을 통해 원형으로 나아간다는

주장이다. 


  「△은 현실을 상징하며 ▽은 理想으로 그리고

그것이 결합된 □이 이상이며

무한한 우주를 포함하는 이상의 세계관이다. 


입체에의 절망에 의한 탄생

운동에의 절망에 의한 탄생


입체에의 절망에 의한 탄생은 사각을 이야기함이다. 

사각의 원형은 정육면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선에 관한 각서7>에서 운동하지 않으면서 운동의 코오스를 가진다고 했다.

즉 회전하는 모든 것의 정지된 상태를 사각형으로 표현한 것이다.

'운동에의 절망에 의한 탄생' 역시 사각을 의미한다.  」-p61


이상의 <선에 관한 각서2>를 도형화한 그의 해석을 살펴보자.


「즉 3과 1이 같이 포개져 있는 사각형 12쌍. 

이상은 이것을 겹쳐 표현한 것이다.

~12는 전체로서의 12라고 한다. 

이것은 음양을 상징한다.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존재한다.

~이상에 있어 위의 12:12는

결국 △+▽과 동일하며 그것은 □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음양의 태극을 상징한다.   」p69


  이상연구가 조수호의 도식화를 통해 이상 시에 대한 시각화적 해석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도식화를

통해 <선에 관한 각서2>에서 시가 가진 운동성을 발견함은 물론 <선에 관한 각서1>의 '(고요하게 나를 電子의

陽子로 하라>'의 연관성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더 나아가 시 뿐만 아니라 그의 소설 『날개』가 보여주는

 '위트와 패러독스의 포석'의 해석을 시각화함으로써 이상이 그의 작품을 건축물을 지어올리듯 어떤 하나의

구상 위에 단어와 문장을 배치함으로써 어떤 일관된 하나의 방향성을 추구했음을 조심스레 추측해보게 된다.


  내 추측의 근거를 나는 다름 구절에서 찾아본다.


「세상에서 땅바닥에 달라붙어 뜯어먹고 사는

천하인간들의 쓰는 시와는 운소(높은 하늘, 높은 지위)로 차가 나는

훌륭한 시를 보산은 몇편이나 몇편이나 써놓은

것이건만 그대신 세상사람들은

그의 시를 이해하여줄 리가 없는 과대망상으로 밖에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휴업과 사정>, 『이상문학전집』p155


  이상이 작품활동을 하던 시기 보통의 작가들이 이차원(지면紙面)에서 글쓰기를 할때 이상의 작업공간은

삼차원이었다.  그의 시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반복과 대칭은 한 입체의 한면과 다른 반대편을 드러내는 듯

하다.  그런 이유로 이차원에 머무르는 여타의 작가들보다 다른 한면을 더 볼 수 있고 조작할 능력이 있는

자신을 李箱은 그들보다 비교우위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2. 李箱의 <성천기행> 중 '환각의 인'에 대한 두 개의 다른 해석


  1) <이상 시학과 <<전원수첩>>의 수사학>- (박현수)

       이 논문은 이상이 프랑스 쥘 르나르의 『전원수첩』을 읽고 그에 대한 영향으로 <성천기행>이

쓰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논문을 통해 이상 작품의 창작 동인의 배경을 짐작해보게 된다.

박현수의 논문은 이상의 성천기행의 <환각의 인>은 이상이 쥘 르나르의 『전원수첩』이 보여준

포획된 영상이 더 세련된 기법으로 표현된 예라고 주장하며 두 작품의 비교를 통해 이상이 서구의 출판물에

높은 관심을 가졌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2) <이상의 <산촌여정-성천 기행 중의 몇절>에 나타나는 활동사진과 공동체적인 동일시>-(월터K.류)

        박현수의 논문이 쥘 르나르의 『전원수첩』의 연장선상에 이상의 <성천기행>을 놓았던 것과는

달리 월터K.류는 <성천기행>의 여러 묘사들이 시골(민족주의)와 도회(일본으로 상징되는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장치였으며, 이상은 이런 배치를 통해 본인 스스로는 공산주의나 민족주의에 편향하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을 문학적으로 표출했음을 그의 논문을 통해 드러낸다.


3. 〈날개〉의 생성 과정론 -(김윤식)

  1)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이상의 『날개』의 연관성.

       이상 관련 기사들을 통해 구인회 소속 문인들과 이상과의 일화를 흥미롭게 읽고서도 소설가 박태원과

이상에 관한 문학적 관련성을 알지 못했던 나는 김윤식의 논문을 읽고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어 너무 기쁘다.

동인지 <시와 소설>의 창간호 편집을 맡게 된 이상이 상대적으로 무게중심이 기운 시의 대칭점에 박태원과

김유정을 배치한 것은 그만큼 그들의 문학적 성과를 이상이 인정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동경 거리 헤매기의 구보와 서울 거리 헤매기의

<날개>의 주인공 '나'와의 낙차는 물론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구보 쪽이 자기의 행복 찾기보다

어머니의 행복 찾기에로 기울어짐으로써

 '비생활'인 유민적 삶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라면,

<날개>의 '나'는 '비생활'에서

또 다른 '비생활'(환각)에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날개>의 생성 과정론 >中 p354

「~<날개>와 <천변풍경>이 이상과 구보의 게임이며

거기에서 생긴 긴장력이 놀이의 본질이라면,

이 놀이의 규칙은 어떠했을까에 관한 점. 

 '자기 기만'이 그 게임의 규칙인바,

구보에 있어 그것이 거리감으로 나타났다면

이상에 있어 그것은 생리화로 드러났다.  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기 기만의 이 게임 규칙은 문학사적 과제였던 것이니,

이른바 모더니즘의 미학이 그것이다. 

이 자기 기만이 문체의 환각으로 눈가림되어 있었던 쪽이 구보라면,

이상의 자기 기만은 생리적 차원이어서 일종의 즐김(자연스러움)이 아닐 수 없었다.

전자가 문체의 환각(미학)이라면, 따라서 자각적이라면,

후자의 그것은 자조적이자 패러독스의 일종이었다.」동 논문 中 p357


  '자기 기만'을 주제로 각각 흑(미학)과 백(패러독스)의 바둑돌(작품)을 잡고 승부를 겨루는

이상과 박태원의 모습을 그려본다.  간만에 호적수를 만나 승기를 다짐하는 이상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

하다.  만약 이상이 동경에서 일본경찰에 의해 급사하지 않고 박태원이 월북하지 않아서 그 두분이 근대문학사의

등불을 밝혔다면 어땠을까?   의미없는 상상이지만 안타까움이 앞서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가신 분들은 밤하늘의 별이 되셨고 결국 나는 앞으로도 오랜동안 그 별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려는

남들이 보기엔 부질없을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