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작품을 읽다가 1913년에 태어난 카뮈와 1910년에 출생한 李箱의 삶이 닮은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과 알베르 카뮈 모두 작품활동의 출발점은 '죽음에 대한 자각'이었다. 누군가는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면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지만, 자신의 바로 뒤에 따라 붙은 죽음을 대면한 이상 누군가가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시간동안 난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상에게 죽음은 남아있는 시간동안 저항해야할 대상이었고, 알베르 카뮈에게 죽음은 삶에 대한 부조리였다. 이상은 죽음을 인식한 이후로 자신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없음을 예감한 듯하다. 그는 생활인과 분리된 자신의 모습을 '시'와 '소설' 속에 투영시켜 그곳에 자신을 비추어보았다. 일반인의 범주에 들 수 없는 그였기에 '자기'를 인식하는 방식은 남들과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오감도에서 그토록 무서워하고 무서운 아해는 바로 이상 그 자신이었다.
'李箱' 그의 필명은 '李'라는 그를 둘러싼 '죽음(상자)'을 의미한다. 그의 프롤로그 소설이 프롤로그 부분에 작중 인물의 폐배를 공언한 후 시작된다는 점도 결국은 죽음이라는 운명앞에 언제나 폐배자일 수 밖에 없고, 경계선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안에서 한정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상은 폐결핵으로 인한 각혈이후 너무나 일찍 자신의 삶의 문을 두드린 죽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미 어린시절 백부의 집에 양자로 입적된 이후 성장과정을 통해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각성을 일찍 하게된 이상 앞에 찾아온 폐결핵은 이상의 삶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눈(目)과 같았다. 이상과 같은 폐질환으로 평생을 시달렸던 카뮈는 이상이 결핵으로 죽음을 맞은 것과는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죽음마저도 부조리하게)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1913년에 태어난 카뮈는 알제에서 태어나 17살이 되던 해 폐질환을 앓게 되자, 자신이 맞닥뜨린 죽음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마라톤을 막 뛰다가 결승점을 몇 미터 남겨놓고 멈춰버린 마라토너를 보는 관객들과 같은 적막감과 당혹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그와같은 감정의 정체를 '부조리'라 규정짓고, 평생을 이 부조리한 감정의 실체를 문학을 통해 규명하는데 바쳤다.
이상과 카뮈는 모두 보편성의 세계의 주변에 위치해 있었다. 숲을 벗어나야 숲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일상에 거리를 둔 그들 눈에 비춰진 부조리한 세상은 그들의 문학적 실험을 통해 우리에게 또다른 세계에 대한 인식과 새로운 감수성을 선사해주었다. 카뮈는 이러한 새로운 감수성을 '부조리의 감수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은 자신의 삶을 통해 직접적으로 '부조리'의 '철학'이 아닌 자신이 몸으로 겪고 체험으로 녹여낸 부조리의 경험('부조리'의 '감수성')을 증거한다.
이상과 카뮈의 문학적 출발점은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되어 방법론으로 문학을 택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지만 차이가 있다면 바로 방법론의 차이일 것이다. 카뮈가 직접 겪은 '부조리'의 체험이 그의 작품의 요체라면, 이상은 각각의 작품 속에 자신의 분리된 '부조리한 자아'를 산재시켜 놓았다. 카뮈의 '뫼르소'들이 어떤 일관성을 갖는 존재들이라면 이상의 '李'들은 제각각의 상자에 포장된 선물들처럼 분리된 개별성을 보인다.
1913년에 태어난 카뮈가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의 『작가수첩』에 비추어볼 때 1937년부터가 된다. 그는 2차세계대전 이후 실존주의가 문화전반에 지배적인 분위기를 차지한 시대상황하에서 인간의 '실존'에서 오는 고통과 극복의지를 자신의 체험을 빌어 '소설'과 '에세이'로 재해석해 놓았다. 지금도 1960년도에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카뮈가 죽지 않았다면, 그의 부조리의 세계, 죽음->반항>자유>열정 의 구상물들이 어떤 결정체를 낳게 되었을지가 궁금해진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 비추어볼 때, 이상은 카뮈가 정의하는 부조리한 인물군(돈후안, 배우 등)에 포함되는 인물이다. 부조리한 인물들은 부조리한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상은 수차례의 각혈과 경제적 곤란 속에서도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레몬'을 찾는 이상의 모습에서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 무릎 꿇는 나약함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그도 자살충동을 끊임없이 느꼈지만, 그는 그 충동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카뮈도 한때 자살을 생각했으나 그는 자살충동을 부조리를 바라보는 통찰력으로 철저히 사유하여 <시지프 신화>를 창작했다) 이렇듯 부조리한 인간은 운명과 고통에 부딪쳐 명철한 의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반항하는 것이다. 이상의 부조리(죽음)에 대한 저항은 시대적 흐름에 묻혀 '모더니즘(새로운 표현방식)'의 범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이상의 저항을 '부조리'에 주목하여 봤을때, 그의 문학적 실험이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될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아마도 1937년도에 이상이 그리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방법론의 전체 그림이 어떤 모습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으리란 생각도 해보게 된다.
ps: 중학교때 <날개>를 읽은 이후로 난 李箱이란 인물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위의 글은 카뮈의 책들을 읽고 느낀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전문적인 의견의 개진에는 반박할 지식체계가 내겐 없다. 하지만 기존의 이상연구물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李箱'의 문학을 비춰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시도해보고 싶다.
<다음 인물검색 발취>
1910. 9. 14 서울~1937. 4. 17 도쿄[東京].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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