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자료/이상연구

변신의 귀재 '姸이'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묭롶 2010. 4. 8. 09:20

 

       <이미지 펌:cafe.daum.net/dsspco>

 

    최근 '李箱'을 주제로 한 논문 중 흥미로운 가설을 제기한 논문을 읽었다.  이상 문학작품 중 프롤로그가 있는 소설만을 선별하여 구조적으로 분석한 논문이었는데,  그 출발을 '李箱'의 문학을 '箱(상자)' 속에 같힌 '李모'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이상관련 논문들과의 차별점을 갖는다.

  기존 이상문학연구는 그의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죽음'에 주목해 왔다.  그 결과 이상문학은 그의 불우한 가정사와 결핵(죽음이 예고된)에 대항하기 위한 하나의 실험의 결과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한 전제 속에 그의 작품 속에서 끊임 없이 연애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여인들(금홍, 姸이, 안해 등)은 이상의 반대편에 놓인 인물들로써 이상과 대결하는 역할로 정의되었다. 

  하지만 그전부터 나는  이상 문학의 출발점이 현실탈피(자신의 불우한 현실)와 죽음에의 극복의지(희망)에 있다고 봤을 때, 왜 그가 작품 속에서 계속된 패배를 경험하게 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문학을 통해 현실 극복을 위한 여러가지 실험들을 했다고 가정했을 때, 실험의 결과물이 일관되게 패배라는 결과는 납득이 가질 않는다.(물론 나만 그렇게 느낀건지는 모르지만) 내가 만약 이상의 입장이었다면 난 실험을(문학적) 통해 뭔가 긍정적 희망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실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절망을 자청해서 경험한다는 건 자학이니까....

 

  그래서 난 이상의 문학적 실험 속에 등장하는 여인네(절대적인 승자이며, 변신의 귀재인 그녀들)

들의 정체가 실은 어떤 절대적인 존재임을 이미 이상 자신이 자각한 상태에서 그들에게 대항하는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지켜보기 위해 이상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앞선 이상연구들이 그 절대적 존재를 '죽음' 내지는 '불우한 환경'이라고 상정했던 반면, 나는 그 여인네들의 정체가 '시간'일 거란 추측을 하게 된다.  

 

  인간이 죽음까지의 한시적인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현재까지는 진리이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류의 미래가 어찌될지 알 수 없기에)  이상은 이러한 인간들의 유한한 삶(시간)을 일찍이 자각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초창기에  분열되고 파편화된 자신의 시간의 기록(사진처럼 찍힌 시간의 인상)을 표출시켰던 시를 보더라도,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과거의 자신(과거의 삶)들을 자신 둘레에 도열시켜서 미래를 살아갈 자신을 지켜보게 하는 듯한 양상을 보여왔다.  (미래의 시간을 지켜보는 자신들(과거의 삶)에게서 느껴지는 절망감이 시의 주를 이룬다)  특히 결핵의 발병이후 그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되지 않음을 예감한 이후에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을 것이다.   이는 각혈 이후 이상이 '시'가 아닌 '소설'을 선택하게된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이상의 소설 속 여인네들을 '시간'의 다른 이름이라고 가정해봤을때,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의 주인공이 바로 삶의 주체인 '내'가 아니라 '시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한정된 시간동안 한정된 셋트에서 한정된 배우들이 출연하는 '시간'이라는 연극에 '수명(각자의 역할)'을 맡고 연기하는 일개 배우인지도 모른다.  이상은 끊임없이 자기자신에 대해 고민했다.  어떤 것이 나의 역할인지, 어떤 것이 나인지, 어쩌면 그는 모두가 미친 우물물을 마시고 미쳐버린 나라에 남아있는 단 한 명의 정상인이 아니었을까!(그의 작품 속에서 '포즈'를 취한다는 부분에서 그가 자신이 '시간'을 구성하는 하나의 배역임을 자각했다고 본다면 비약일 수도 있겠으나, 현재의 자신이 아닌 실제 자신의 흔적(포즈)임을 자각하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자신이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하나의 커다란 시나리오의 단순배역에 불과했음을 깨달아버린 한 남자의 이후 삶은 어떠하겠는가? 

이는 이상이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패배하고 좌절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변신의 귀재, 수도 없이 다른 남자를 만나는 안해, 버림 받을까 전전긍긍하게 하는 금홍 등 이들은 모두, '시간'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죽는 순간까지 '레몬'(삶)을 찾으며 다 되어버린 시간(자신의 역할)에 저항하려 했던 '이상'은 그의 소설들처럼 결국 '시간'에 무릎 꿇고 말았지만, 세기를 거듭하여 잊히지 않는 전설처럼 거의 이름은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해서 재해석되어지고 있다. 

 

ps: 논문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걸 그냥 막 풀어 놓았다.  그 결과 역시 생각과

글은 다르구나라는 좌절감이.......,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