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자료/이상연구

김윤식의 <이상연구>

묭롶 2008. 10. 27. 11:42

 

  김윤식의 『이상연구』는 작가 이상에 대한 연구를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상의 개인적인 환경에서 촉발된 작품세계의 해석과 이상의 작품을 통한 작가 이상에 대한

연구가 바로 그 두 가지이다.  이 두 가지 해석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진행되는데, 『이상연구』의 그러한 특징은 이상문학의 근원지를 찾는 출발점에서도 이미 찾아볼 수 있다. 

  김윤식은 이상문학의 근원지인 ‘자살충동’의 원인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찾고 있다.  이상 자신의

비정상적인 성장기로 인해 기인한 ‘자살충동’과 그의 죽음을 예고하는 육체적 질병인 결핵으로 인한

‘자살충동’이 바로 그것이다.  ‘자살충동’이 이상으로 하여금 고백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고 그 최초의 자기고백이 『12월 12일』이다.  김윤식은 왜 이상이 ‘자살충동’에 시달렸으며

그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또한 이상이 ‘자살충동’을 벗어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택해야만 했는지를

그의 작품을 통해서 해석하기도 하고 그의 신체적(결핵)․환경적 요인들이 그의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살핌으로서 찾고자 한다.  이렇듯 김윤식은 ‘이상’을 연구함에 있어 다각도에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의 필요성은 또한 ‘이상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이미 이상에 대해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어느 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까닭에 아직까지도 이상에 관한 연구들은 계속 이루어지고 또 앞으로도 이루어질 것이다. 

  흡사 ‘이상’은 문학사에 있어 무궁무진한 해를 가지고 있는 함수와도 같다.  김윤식은 이상의 작품세계의

근원을 그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찾고 있으며, 작품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밝힘으로써

이상의 무의식을 우리 앞에 실재하는 현재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상의 처녀작「12월 12일」을 통해 찾아 본 이상 문학의 근원지>

 

  그는 ‘이상연구’의 출발점을 그의 처녀작에서 찾고자한다.  한 작가의 심리적 외상은 강박관념처럼

그 작가의 작품세계 도처에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처녀작을 통해 발견된 작가의 심리적 외상을

찾아내는 것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규정짓는 하나의 방법론이 된다.  김윤식은 「12월 12일」에서

처녀작의 특징적인 현상인 ‘원점회귀적인 요소’를 발견하여 이를 처녀작으로 상정한다. 

 「12월 12일」에서 보여 지는 ‘원점회귀적인 요소’는 서문(1)에서 결정적인 단어인 ‘자살’이다. 

우리는 ‘자살’이란 단어에서 이상이 자살충동을 자주 느꼈으며, 그 느낌을 기록하는 것이 곧

「공포의 기록」이란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에게 찾아온 자살충동이 강박관념으로 작용하여

그의 처녀작 「12월 12일」을 쓸 수밖에 없게 한 것이다.  서문(1)에 적혀 있는 ‘무서운 기록’의

속에는 이상 자신이 ‘공포의 기록’을 다 적기 전에는 자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이후에 오는 이상의 기록들이 ‘공포의 기록’이 될 것임을 예감하게 한다. 

  또한 「12월 12일」은 이상 작품의 특징인 대칭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12월 12일」에서

‘자살’에 이어 중요한 단어는 ‘불행한 운명’이다.  이 ‘불행한 운명’이 ‘자살충동’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불행한 운명’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작품을 분석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의 가계는 이상 집안의 형편과 대비되고 있다.  이상은 무능했던 부모의

 적빈으로 인해 3살 때 백부인 김연필의 양자로 가게 되었다.  양자로 들이고도 실상은 자신의

호적에도 올리지 않았던 백부와 백부가 원래 백모를 내치고 데려온 아들 딸린 여자로 인해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이상의 비뚤어진 운명이 바로 ‘불행한 운명’의 정체인 것이다. 

이상은 이 불행한 운명으로 인해 김해경으로 세상을 살지 못하고 가면인 ‘이상’으로 살게 되었다. 

12월 12일」은 백부와 실부에 대한 이상의 동시적 증오심을 심리적 드라마로 재현한 복수극이다. 

이상은 살아온 환경의 영향으로 정상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자신의 현재를 ‘비뚤어진 인간성’,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의 비정상적인 환경은 그를 정상의 세계인 12안에 들지

못하는 숫자‘13’의 기호로 규정짓고 있다.  그는 실부 김연창을 2천년전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기독에 혹사한 한 사람의 남루한 사나이’ 예수에 비유하면서 ‘모조기독을 암살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모조기독을 암살하지 않으면 아비의 ‘불행한 운명’이 바로

자신의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12월 12일」은 그러한 모조기독으로부터

계속해서 도망치고 있지만 그 운명에 발목 잡히고 마는 이상 자신의 기록이기에 ‘공포의

기록’이 될 수밖에 없다.

 

<이상 문학의 공포의 기원>

 

  그렇다면 「오감도」는 무엇인가?  「오감도」는 기호로 표시된 ‘공포의 기록’이다. 

한글 「오감도」에 오면 모조기독에 대한 드라마는 퍽 세련되고 또 심층에까지 물들어,

그야말로「공포의 기록」을 기호화시키고 있어 인상적이다.  「시 제 1호」에는 일생을

차압하고자 덤비는 모조기독이 은밀히 내면화되어 공포분위기를 알게 모르게 조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상의 ‘공포’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그 근원은 바로 백부에 대한 증오심과 공포심에서

기인한다.  백부에 대한 공포가 이상을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공포’는 이상에게서 정상적인 ‘생활’을 갖지 못하게 한다.  이상의 죽음 이후

발표된 「공포의 기록」(1937.4.25~5.15)에서 서장은 진짜 「공포의 기록」의 정체를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각혈, 즉 목숨과 관련되어 있다.  자살하지 않더라도 눈앞에 다가와 있는 죽음, 바로

그 죽음에서 필사적으로 도주하는 일, 그것이 「오감도」를 지탱하는 ‘공포’의 본질이다. 

이렇게 볼 때 이상 문학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것은 각혈과 관련된 자살과 죽음의 등가사상이라

할 수 있다.  그 실마리가 바로 처녀작 「12월 12일」이다.  첫 번째 각혈에서 이상 문학은 비롯되었고,

그 때문에 그의 문학은 공포의 기록으로 일관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12월 12일」은 최초의

공포의 기록이며 그 기록은 최초의 자기극화였다.  이런 점에서 처녀작 「12월 12일」은 이상 문학의

출발점이자 그 회귀점이라 할 수 있다.「12월 12일」의 서문(1)에 나타는 ‘본질적이고 치명적’인

자살충동의 내면화가 처녀작 「12월 12일」이라면 그 때문에 이작품은 「무서운 기록」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무서운 기록의 내면화란 무엇인가.  「12월 12일」이 「무서운 기록」이라는

것은 이 작품이 백부에 대한 복수극이자, 업의 죽음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자살충동’은

한편에서 보면 백부에 대한 복수이며, 다른 한편에서 보면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공포의 기록」속에는 「무서운 기록」의 정체를 밝힐 단서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글

속에서 ‘제 2차 각혈’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차 각혈이 이상으로 하여금 「12월 12일」을

쓰게 했다면 2차 각혈은 이상에게 심리변화를 일으켰는데,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그것이다. 

 

<‘자살충동’과 ‘결핵’에 대항한 마법권의 성립>

 

  이상은 제 2차 각혈이 시작되기 전부터 생활을 갖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에게 생활이 없었다는

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금홍을 글 곳곳에서 ‘아내’로 표기함으로써 생활과

비생활을 혼동하고 있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생활과 비생활의 혼동을 통해 ‘비밀’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봉별기」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 첫줄이다. 

스물세살이오-3월이오-각혈이다.」 1933년 봄 이때부터 그는 ‘생활’에서 벗어난다. 

 ‘생활’에서 벗어난다는 선언이 곧 ‘각혈’이었다.  그는 ‘각혈’을 깃발 또는 훈장처럼 가슴에 차고

 ‘생활’ 포기를 선언하였다.  이상은 ‘각혈’을 가운데 두고 생활 쪽으로도 비생활 쪽으로도 기울

수가 없었다.  그 접점에 그가 설 때 비로소 그의 문학이 탄생하였다.  그 접점이 공포지대이다. 

 생활과 비생활 사이의 싸움에서 열쇠를 쥐고 있는 균형감각과도 같은 것이 자살충동이었다. 

그러니까 그에게 있어 최후의 도박은 늘 자살의식이었다.  그렇다면 이상의 운명을 가름한,

제 1차 각혈은 언제일까.  이상에 있어 제 1차 각혈과 치명적․본질적인 자살충동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아내는 일은 이상 문학 연구에 있어 아주 기본적인 원점과도 같은 것이다. 

이상의 제 1차 각혈은 1930년 4월 26일을 앞뒤로 하여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증거는

수필 〈병상이후(病床以後)〉(청색지 1939.5)를 들 수 있다.  사후 2년 뒤에 발표된 이 글은

끝에 적힌 「의주통 공사장에서」에서 분명히 드러나듯 처녀작 「12월 12일」을 쓸 때와

일치되고 있다.  이 글에서 이상은 자신을 「그」라는 대명사로 객관화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심리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데 자신의 폐결핵에서 기인한 변화가 그것이다.  이상

문학에서 아주 흔하게 발견되는 아이러니 및 패러독스는 이처럼 1차 각혈에서 특징 지워진 생리적

현상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가 제 1차 각혈의 충격파를 겪고 정상을 회복하는 내적인

드라마가 <병상이후>에서 5단계로 생생히 포착된다.  제 1차 각혈체험을 통해 최종적으로 확인된

표층적 변화는 그가 <병상이후>에서 ‘광명을 보고 있다’라고 적은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 ‘광명’으로 나아가는 예술을 통해 막강한 괴물과도 같은 존재인 결핵과 맞서고자 하였다. 

그는 그 예술이 과연 죽음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를 지금부터 실험하고 증명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방법으로 이상은 <1931년(작품 제 1번)>에서 제 1차 각혈을 병의 관념에서

이동시켜 기호의 일종으로 확정하였다.  즉 ‘폐’를 인격체로 격상시킴으로써 ‘폐병’ 자체를 아주

보잘 것 없는 것, 가령 맹장염 따위로 비소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기호화의 세계를 이상

문학이 퍽 세련된 단계에서 보여 준 것이 거울에 관한 시들이다.  거울 밖과 거울 안의 세계는

서로 대칭점을 이루고 있기에, 거울 바깥의 것이 진짜인지 거울 안의 것이 진짜인지를 혼동케

함으로써 이상은 제 1차 각혈을 무시하고 무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만약 거울

안의 것이 진짜라면, 그것은 제 1차 각혈이 허구가 되는 것이다.  그는 이렇듯 제 1차 각혈이

없는 것이라고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질주하고 있다. 

  이러한 필사적인 노력이 「오감도」 <시 제 1호> 속의, 13인의 아해들이다.

 

<‘결핵’과 ‘이상문학’의 상관관계>

 

  제 1차 각혈로 인해 촉발된 이상 문학은 죽음을 예비한 문학이자 돌연한 죽음에 관련된 것이며,

그 방식을 그는 은밀히 감추기도 하고 큰 소리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방법론상으로는

패러독스에 해당되지만 정신에 있어서는 본질적이고 치명적인 것이었다.  「봉별기」의 첫 머리에

‘스물세살이오-3월이오-각혈이다’라는 글에서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일종의 선언이고 자기과시의

방법론이고 죽음을 조소함으로써 주음을 직시하고자 하는 아이러니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봉별기」는 이상 문학에서 죽음과 삶의 매개개념이자 현실과 비생활의 중간항이며 아내와

애인의 중간개념으로 놓여 있는 여인 금홍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린 작품이다.  이 글에서 이상이

자신의 병을 과장, 선전하고 희화화할 수 있었던 점에는 두 가지 의미층이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나는 심리적인 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은유로서의 결핵이 갖고 있는 낭만적 열정이다. 

그에게는 본질적으로 죽을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폐병이고, 다른 하나는

자살하는 길이었다.  이 둘은 서로 견제하고 또 협동하는 관계를 갖추고 이상 문학의 두 골격을

이루어 전개되었다.  결핵은 그 질병의 본래적 징후로 인해 낭만주의 문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폐병이란 오늘날의 암과 같이 초기 자본주의를 표상하는 대표적인 낭만적 취향이었다. 

결핵은 육체의 붕괴를 일으키지만 그와 동시에 이상한 행복감, 식욕증진과 아울러 성욕증대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질병의 본래적 특징이 이상 문학 곳곳에서 보여 지고 있기에 이상 문학의

성립은 폐결핵과 결코 분리시켜 논의할 수 없다.  이 결핵이 이상으로 하여금 금홍과 동거를 하게

만들었고, 수 없는 자살충동을 일으켰으며, 거울을 온갖 곳에 은밀히 배치시켜, 사람들의 시각을

여지없이 혼란시켰을 따름이다.  그런데 이 결핵을 무시하고 이상의 천재성이나 기질 쪽만을

문제 삼는다면, 모든 이상 문학 논의가 한갓 신비주의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봉별기」는

이상 문학이 본질적으로는 결핵 문학의 일종에 속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상문학의

현실적 측면은 「봉별기」를 축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인데, 이는 금홍과의 결혼생활 3년간이야말로

이상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인만큼, 금홍을 떠나면 그의 삶의 한 측면이 성립되지 않을

정도이다.  이렇게 중요한 금홍을 만나게 된 계기가 결핵이었다. 

 

<또 다른 대항 마법권으로서의 ‘소설’과 ‘동경행’>

 

 그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자살충동’은  ‘거울’을 그 대극점에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깡그리 불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 2차 각혈, 제 3차 각혈이 잇달아 그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의 자살충동은 후기로 갈수록 아주 익숙해져서 기호론으로

극복할 필요가 점점 없어져가기 시작하였음을 작품 「동해」가 잘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제 2차 각혈 이후부터 그의 자살충동은 일종의 연기(演技)적인 수준으로 길들여지고 친숙해져서

 ‘거울’을 소멸시키기에 이른다.  그것은 또한 기호론적 세계의 소멸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상은 기호론적 세계가 아닌 또 다른 대응점을 찾기에 이른다.  ‘소설을 쓰겠다’고 공언한 것도

이와 직접․간접으로 관련된 것이다.  앞에서 이상이 자살충동의 대칭점에 거울을 놓아서 탈출하고자

했던 기호론적 시의 세계를 벗어나 소설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택하게 되었음이 제 2차 각혈

이후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상이 동경행을 그 최후의 탈출구로 입에 담기 시작한 때는

언제부터였을까.  이상은 동경행을 감행한 1년쯤 전에 자신이 구사하고 있는 역설적 방법론 자체에

형언할 수 없는 오예감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방법론이 이제 무용지물로 변해 버릴 위험성이 생긴

것이다.  자살충동을 방법론으로 극복한 그에게 그 방법론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면 그 자리를

대신할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는데,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동경행이었다.  이상의 참된 동경행의

 동기를 찾는 실마리는 그를 둘러싼 마법권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마법권은 백부, 결핵, 금홍,

소녀 정희가 이에 해당된다.  이 마법권들은 이상의 개인사적인 것에 속하는 것이며 이에 맞서

이상의 정신사적․시대사적․문화사적 마법권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러한 마법권이야말로

이상을 동경으로 내몰고, 거기서 그를 죽게 만든 근본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마법권의

정체는 이상이 받은 식민지 고등공업 교육이 그것이며, 미술, 문학이 그것에 해당된다.  이상이

문학이라는 마력권에 빠지게 된 것은 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징인 주체, 내면, 고백, 자유분방함에

기인한다.  살아온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정상적인 12의 범주에 들지 못한 ‘13’의 이상에게 총독부

기사직은 견딜 수 없는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그를 자살충동에로까지 이끌어갈 정도였다. 

결핵이 그에게 육체적으로 자살충동을 부추겼다면 ‘총독부 기사직’은 그를 정신적으로 자살충동으로

이끄는 요인이었다.  그는 문학의 마력에 사로잡히고자 했는데 그의 직업이 이를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그는 백부가 사망한 직후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그가 꿈꾸던 모더니즘의

생활(다방 제비)을 시작한다.  이상은 자신의 일생을 차압하려 하는 모든 제도권과 모조기독에 맞서서

자신의 ‘내면’을 만들어 냈다.  그러한 ‘내면’ 창조의 결과물이 그의 13의 숫자, 그의 온갖 기행,

게으름인 것이다.  이렇게 창조된 ‘내면’은 자연스럽게 ‘고백’을 낳게 한다.  그는 육신에는 결핵을

배양하고 최후의 무기로는 펜을 선택하여 마법권에 대항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문학이 물신적 성격으로 변질되어 생리적․육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때 이미 그것은 대항

마법권의 효능을 상실한다.  이렇게 된 시기가 1936년이었다. 동경행의 불가피성이 바로 여기에서

말미암았다.  대항 마법권으로서 효력을 잃은 문학과 그가 정신사적․문명사적인 것이라고 파악한

결핵이 실상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그의 몸을 잠식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은 그 둘이 진짜 대항

마법권이 못 되었다는 증거이다. 진짜를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수사학의 수준이 아닌 방법론을 동경에서 찾고자 했다.  하지만 이상의 동경행은 결핵이 좀먹는

육체와의 싸움과 정신을 좀먹는 일제강점기의 서울이라는 지역적․시대적 조건으로부터의 탈출에 불과할

뿐이다.  이상에게 동경은 서울을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었고, 서울 역시 동경을 평가하고 의식하는

거울에 다름 아니었다.  동경과 서울을 대칭점에다 두고, 그 사이에다 커다란 의식의 거울을 매달았던

것이다.  이상의 비극은 그가 서울을 동경의 모조품으로 보았음에서 말미암는다.  그런 등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동경이 절대절명한 것, 신성한 것, 완벽한 것이어야 했다. 

 

<「날개」의 대칭점으로서의 「종생기」>

 

  이상이 다방 ‘제비’를 내기로 결심했을 때 이상의 구도 속에는 금홍이 제일 먼저 선명히 들어왔다. 

다방 ‘제비’에서의 헷갈려 어수선하고 얼떨함, 이것이야말로 모던 생활이라는 마법에 진입한 이상의

변태적 기호성이며, 이것이야말로 그에게는 가장 확실한 균형감각이었다.  이상의 생애에 있어,

금홍과의 이러한 현란한 관계 속에 있을 동안이 가장 안정된 기간에 해당된다.  이 안정된

기간에 그는 걸작인 「날개」를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날개」는 안정감, 행복감, 균형감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 안정감의 중심에 ‘금홍’이 있었다. 

  이러한 「날개」의 대칭점에 놓인 것이 「종생기」이다. 「종생기」의 중요성은 그가 <사신(4)>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고 밝힌 이후로 두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소설은 시와 달라서

대응점에 거울 같은 허수를 놓을 수 없다.  그러기에 소설에서의 대응점 찾기는 수사학 쪽이 아니고

현실적 삶의 무게이서 찾아야 한다. 「날개」의 성공은 그러한 현실적 삶의 무게에서 오는 것이다. 

이와 반면에 「종생기」는 그 대응점을 소녀에서 억지로 찾고자 했기에 이 작품은 소설도 시도 아닌

괴물체가 되고 말았다.  「종생기」의 중심부는 ‘치사한’ 만19세의 소녀 정희이다.  「날개」가 금홍과

관련된 작품이고 그 때문에 그의 안정감이 최대로 발휘된 고전적 성격을 띤 것이라면, 이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종생기」는 ‘치사한’ 만19세의 소녀와 관련된 자품이고 그 때문에 균형감 없고

그로테스크하고 퇴폐적이며 추악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금홍의 세계와 ‘나’의 대응에서

는 형언할 수 없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기에 그곳에는 거울이 없었다.  거울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금홍을 잃고 난 그는 금홍의 대칭점을 찾는 일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대칭점이 만19세의

단발소녀 정희, 임이, 연이 그리고 다만 소녀로 말해지는 ‘치사한’여인이다. 「종생기」와 「날개」가

갖는 공통점은 그 사이에 거울이 걸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거울 대신 실물만으로도 대칭점이

만들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상 문학에서는 큰 진전이고 성숙함이라 할 수 있다.

「날개」와 「종생기」가 거울 대신에 「날개」에서는 금홍이 그 대칭점으로 「종생기」에서는

소녀 정희가 있다.  그런데 「날개」에 비해 「종생기」는 안정감이 훨씬 뒤떨어지고 격조조차

떨어진 졸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만19세의 소녀 정희와 ‘나’의 균형감각이 결코 만족할

만큼은 이루어지지 않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  「종생기」에서 그는 소녀와의 관계에서 균형감각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상은 카메레온처럼 변하는 변신술의

소녀 앞에 도저히 그 속도를 맞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소녀가 변신술을 부리는 한 이상은

종생하되 「종생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상이 숨겨 놓은 비밀이며, 인간 이상의

수수께끼이자 이상 문학의 마지막 수수께끼이다.

 

<동경에서 대항 마법권을 잃은 ‘이상’>

 

  조선 문단에 있어 최초로 결핵을 자각한 문인은 나도향이다.  나도향의 결핵의 자각은 결핵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그의 죽음이 문단의 스캔들인 까닭은 그가 결핵을 즐겼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상의 경우에는 그 즐김에 있어 방법론적인 즐김이었다.  그것은 결핵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 그것에 주체성을 부여함으로써 ‘나’와 구별하여 타자화하는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이야말로 이상 문학의 특질을 결정한 패러독스의 본질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론에는

즐거움과 위안이 따르지만 그것이 결국 속임수이고 눈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듣는 것은

공포의 인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상 문학의 방법론이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핵을

아무리 대상화하고 희화화할지라도 결국 결핵은 물러가기는 커녕 점점 더 그를 향해 치열해졌으며,

위트나 아이러니 따위를 아무리 교묘하게 늘어놓아도 천하의 수재들인 9인회를 계속 속일 방도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동경에서의 내면풍경을 아홉 개의 <사신>과 <실화>, <종생기>, <권태>,

<수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상은 동경에 도착해서 바로 실망감을 표시했는데, 어째서 동경이

치사스런 곳이었을까.  이는 이상이 동경이라는 도시의 겉모양만 본 피상적인 관찰에서 말미암음과

패러독스의 복수를 감행할 대상의 상실에서 오늘 허망감과 초조감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가

동경을 ‘치사스럽다’라고 표현한 글은 아마 문화충격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착 한 달 만에 귀국하겠다는 생각을 품고도 계속 동경에 머물렀던 이유는 그가 서서히 문화충격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제국대학 1학년에 김기림이 재학중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상에게는

김기림만 있은 것은 아니었는데 그의 주변에는 ‘3․4문학’ 그룹이 있었다.  이상은 ‘3․4문학’의 사람을

만날 때마다 20세기의 포즈를 근근히 유지해보일 뿐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자연스러운 20세기를

살아갔던 반면 이상은 본질적으로 19세기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성천에서 자신을

근대(모더니즘)의 위치에 놓고 농촌사람들을 한갓 ‘북국 펭귄새’에 비유했던 것을, 그는 동경에 와서

보니 자신이 20세기에 속하지 못한 ‘북국 펭귄새’임을 충격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의

충격으로 인해 그는 그 이상 동경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그는 서울로 급히 귀환하거나, 아니면

그의 종생을 거기서 맞이해야했다.  결국 결핵이 그를 죽인 것이 아니고, 또 일본 경찰이 그를 감옥에

넣었기 때문에 그의 병이 악화된 것이 아니고, 그는 더 나아갈 지평이 없었다.  그는 죽게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상에게 있어 동경(근대)와 김기림 모두 시간이 필요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 시간이 부족한 쪽은 이상이었다.  이상의 진짜 비극은 이 시간과의 싸움에서 졌다는

사실에서 말미암는다.  이 사실을 아주 선명히 보여주는 대목이 <사신(7)>에도 있고 <실화>속에도 있다. 

 <사신(7)>에서 말하는 육체의 고통은 정신력의 견제력을 완강히 주장하고 있다.  시간이 지금 정신을

견제하여, 성가셔 죽을 지경에 이른 것이라면, 육신과 정신의 싸움은 시간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진짜

절망은 여기서 왔다.  흐느적 흐느적한 육체일 때 은화처럼 맑던 정신의 세계가 <날개>이고, 서울이고,

<오감도>의 세계라면, 잉크 지우는 약으로 육체가 지워진 세계의 문턱이 동경이고, <종생기>였다. 

시간과의 경쟁에서 그는 여지없이 패배하였으며, 그 순간 그는 흔적만 남기고 말았다.  이것이 동경에서

맞은 그의 죽음의 본질이다.

 

 <이상의 마지막 방법론으로서의 「종생기」>

 

「종생기」가 씌어진 것은 1936년 11월 20일인 동경에 도착하여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할 수사학을 이용해 「종생기」를 쓰겠다고 공언했다. 그렇다면 수사학에 있어 놀라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본 문단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개천용지개의 유서와 맞닿아 있다.  그에게 세상을

놀라게 할 자살의 모델이 바로 개천용지개였던 것이다.  개천용지개가 「양자」출신이라는 점과 그의

작품의 주요 창작동기가 양부인 백부와 백모, 그리고 실부에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상은 그를

자신의 대칭점에 놓고 있다.  그러한 대칭선상에서 나온 작품이 「종생기」이다.  이상은 개천과는

다른 수사학을 선택해야 했는데 그 수사학의 일종으로 선택한 포즈가 홍안 미소년이 노옹으로 변해간

변신담의 일종이다.  25년 11개월에서 26세 30개월까지의 숫자가 「종생기」의 범위인데 이렇게

볼 때 「종생기」의 시작은 1936년 7월 쯤에서 시작하여 1938년 6월까지를 예견한 것을 그린 것이다. 

이상은 자기의 생명선을 1938년 6월까지로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종생기」의 서두에서

정상적․상식적인 것을 놀라게 할 수사학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그의 비정상의 표상인 ‘열세 벌’의

유서를 작성한다.  「오감도」에서 ‘13인의 아해’에 속했던 그의 기본기호의 회귀가 마침내 유서에까지

뻗쳐 있었던 셈이다. 

 

  <동경에서 죽음을 맞다>

 

  그는 그 과제의 목표설정을 잘못했기 때문에 실패하게 되어 있었다.  서울과 현해탄 사이에 거울을

설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지식으로만 접했던 ‘문학’의 참모습을 동경에서 찾고자 있다. 

하지만 이상은 사실 20세기 근대의 본질을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고 또 그러한 시각도 잘못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의 눈에 비친 동경은 진짜 서양의 근대를 수입한 가짜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근대의 이상향으로 존재하는 동경과 실제 동경과의 좌표상의 거리는 먼 것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20세기를 지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19세기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상은 관념지향성이라는 일종의 편향성의 한계를 동경에 와서 비로소 인식하였던 셈이다. 

이 인식에 이르면 이상은 자신의 인생의 좌표를 다시 설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가 동경에서 쓴 <사신(9)>에 나오는 ‘지난날에 대한 후회’란, 곧 ‘생각하는 것’의 변화를 가리킨다. 

생각하는 것의 바뀜이란 구체적으로는 위에서 말한 관념지향의 편향성에 대한 궤도수정이다. 

그 관념지향성이 그에게는 근대성이었던 사실이 바로 그의 갈 데 없는 비극성이라 할 것이다. 

관념지향성의 허망함을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이 동경이었다.  이상은 동경에서 현실을 진짜로

볼 수 있는 시각을 비로소 획득한 것이었다.  그러한 시각 속에서는 거울도 대창점도 없었다. 

이상에게 있어 실제적인 「종생기」기가 바로 그의 이러한 깨달음이다.  거울도 대칭점도 없는

그 세계에서 이상이 바라본 것은 「골고다」의 예수상이었다.  이러한 내면의 인간의 지향점을

두고 다시 한 번 관념지향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사실은 1937년 4월 17일 새벽 4시 그의

임종시에도 확인된다.  그가 임종시에 ‘레몬’ 도는 ‘멜론’을 달라고 하며 죽어간 사실이 그 증거이다. 

‘레몬’이 표상하고 있는 것은 관념지향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끝내 그 관념지향성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상 문학은, 이러한 관념적 질병,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시대를 구별하지 않는 새로운 신선함을 풍겨 주고 있다.  그렇기에 이상은 과거형이

아니라 우리 앞에 도전하는 지평으로 저만큼 놓인 제우스신상이고 예수상이다.  그는 동경에서 스

스로 신이 되었기에, 그의 죽음은 완결일 수가 없다.


  『12월 12일』에서 이상의 『권태』에 이르는 작품을 살펴보며 결국 이상의 문학작품들이 이상의

개인적․정신사적 외상을 뛰어넘기 위한 방법론의 결과물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비정상적인

성장기로 인해 계속해서 ‘자살충동’을 느꼈던 이상에게 방법론은 두 가지로 다가왔다.  그 중 하나는

실제로 그에게 죽음을 안겨줄 신체적 질병으로서의 ‘결핵’이었고, 나머지는 ‘문학’으로의 도피였다. 

그에게 ‘문학’이 도피처가 되었음은 이미 그가 백부집에서 외롭게 혼자서 앓고 있을 때에도 그렇게

열심히 ‘시작’에 몰두했음도 알 수 있다.  그는 정신적인 ‘자살충동’을 ‘문학’을 통해 승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문학을 해석하는데 있어 ‘결핵’은 중요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그렇다면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결핵’은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이상연구』는 이상문학에서 ‘결핵’이 차지했던 역할을 그 질병 자체가 가지고 있던 특성과,

그의 작품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가에 주목한다.  ‘결핵’은 그를 『오감도』의 기호론적 시세계로

피신하게 했고 그 중심부에 거울을 설치함으로써 끊임없이 그의 실제의 대칭점으로 존재했다.  또한

 ‘결핵’은 결정적으로 이상 문학의 걸작을 낳게 한 『날개』속 ‘안해’인 ‘금홍’을 만나게 한다. 

 ‘금홍’은 이상에게 ‘거울’이 필요 없이도 ‘현실’을 살 수 있게 해준 현재와의 매개체였다.  만약 금홍이

이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이상이 동경행을 결심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금홍이 떠나고 나자

이상은 기존에 ‘자살충동’의 방법으로 택했던 모든 수사학적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진짜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동경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진짜를 찾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가슴 속에 빛나던 이상향으로서의 근대는 현실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동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보다 그 이상향에 더 많이 가깝게 다가갔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동 시대의 현실 속을 살지 못하고 그 속에서 계속하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론을

모색해야 하지 않았을까  결국 그의 문학의 첫 출발점이기도 한 ‘자살충동’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본원적인 충동의 반대편 단면이었을 것이다.  그가 당면한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자살’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모색했던 ‘방법론’들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래서 그는 종내 죽음에 당도해서도 자신의 가슴 속의 빛나는 예수로 비유되는 관념지향성으로

나아가기 위해 끝내 ‘레몬’내지는 ‘멜론’을 찾았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