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자료/이상연구

<꾿빠이, 이상>스스로 비밀이 되어 사라진 李箱을 찾아서.....

묭롶 2017. 8. 13. 17:01

 

  「굿바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위트와 패러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輕便)하고 고매(高邁)하리다.  」

『이상소설전집 〈날개〉中 p84』


   김연수의 『꾿빠이, 이상』을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李箱의 소설 <날개>의 도입부 글 중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라는 구절이 되지 않을까?   실제로 작품 속에서 다루는 사건은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이상의

데드마스크와 이상의 시 '오감도 제16호 실화'에 얽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 김연수는 작품 도입부에 백가지의 사실을 가지고 천가지의 삶을 써내야하는 전기작가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가지 밝혀진 사실과 다른 사실 사이를 작가는 거칠게 연결함으로써 나머지 생략된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상상력에 의지하게 된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사실의 기록에 기초하는 전기마저도 이러한데 한국문학에서 난해함으로는 손가락에 꼽히는 이상을 소설의 소재로 삼다니 저자의 그동안의 이상연구에 대한 기초가 연구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는 됴쿄행 이후 도쿄에 대한 실망감의 형식으로 드러난 외출혈을

내출혈로 전환시키고 김해경이란 존재 자체를 내파시켜 천재작가 이상만을 살리는 길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상'이란, 평생 공들인 인물을 지압붕대 삼아 임시 지혈하고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가정의 장남인 김해경으로 다시 살아가는 일이다.

죽기 전까지 이상에게는 이 두가지가 공존했었다. 

과연 어느 쪽이 진짜 모습에 가까울까?」p143


  그는 이상의 시 오감도와 지도의 암실과의 관련성을 통해 오감도가 이상의 다른 작품에 미친 메타포(확장성)

로서의 의미를 오랜 시간 연구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의 그러한 작업을 이상을 연구하는 작중인물, 서혁민과

피터 주의 작업과정에서 엿보게 되는데 그 방법론의 새로운 접근법이 참으로 놀라웠다.   


  내가 『꾿빠이, 이상』을 접한 건 『李箱문학전집5』에 수록된 김윤식 교수의 <이상 연구를 위한 한 변명>을

통해서였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논문도 아닌 소설에 대한 언급을 장장 p365~383에 걸쳐 언급했단 말인가?

그것도 오랜 이상연구가인 김윤식교수가 말이다.  궁금증을 못 참고 곧바로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동안의 이상 관련 연구 결과물들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감정은 답답함이었다.  아마 김윤식교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많은 연구진들이 이런 저런 해석을 일삼았고, 

그 숫자는 산을 만들고도 남을 것인데

왜냐하면 텍스트 자체가 열려 있는,

그러니까 진행형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자기의 추리력 만족에 멈추기 쉬우며 그것에 비례하여

우쭐대거나 멀쓱하거나 하면 그만일 터이다. 

이상 문학 텍스트가 연구자의 바깥에 놓여 있는 만큼

연구자로서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은 예외적 연구자가 있다면 어떠할까.

~피터 주, 그는 후자에 속한다. 

정확히는 작가 김연수의 선 자리가 이 범주이다.」

李箱문학전집5』p373~374


  '연구자의 바깥에 있는 예외적 연구자' 이만큼 단적으로 이 작품의 성과를 잘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 

진정 소름이 돋았다.  김윤식교수가 이상연구 논문 수록집에 많은 페이지에 걸쳐 이 소설을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풍 바깥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다.  이전의

상황에 비춰 대입된 추정 데이타를 적용하여 근사치를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태풍의 중심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어떠할까?  이상이라는 거대한 메머드급 태풍을 겪었던 사람들이 대부분

고인이 되거나 기억이 바랜 지금 그 태풍의 양태를 부족한 데이터로 복원해내는 건 그것도 왜곡없이

길러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김연수는 이상의 삶을 그 자신의 삶으로 대입해 살아간 서혁민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가난한

인간 김해경과 비밀을 지닌 이상에게 다가간다.  그동안 인간 김해경의 삶을 전기적 입장에서 작품에

대입한 연구들이 지닌 한계와 이상 작품의 난해성 해독에만 치중했던 과거의 연구들에서 벗어나

서혁민이라는 인물 속에 그 둘을 담아냄으로써 작품해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는 것이죠. 

 보는 바에 따라서 그것은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이상 문학을 두고

최재서와 김문집이 각각 다르게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상과 관련해서는 열정이나 논리를 뛰어넘어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란 말입니다. 

진짜라서 믿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진짜인 것이고

믿기 때문에 가짜인 것이죠."」p97


  이는 내게는 실로 답답하게 제자리에서 맴돌던 이상연구의 가려운 등을 긁어준 격이 되었다.

그래서 작중인물 김연화(기자)와 피터 주가 작품의 진위 ('오감도 시 제 16호 실화'와 '데드마스크')여부를

중요치 않게 여기는 그들의 생각에 나는 동의하게 되었다.  중요한 건 그 작품의 해독이 아니다.   작품에

사용된 텍스트는 데이터만 존재하면 무한히 반복 재생산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건 그 텍스트 속에

감춘 비밀이다. 


  이 작품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바로 위조된 이상문학을 바라보는 시점이 아니라 이상문학이 지닌

문학사적 위치에 대한 의문이다.  작중 이상연구가 김태익에 의해 피터 주가 내놓은 오감도 시 제 16호

실화가 위작임이 밝혀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사에서 이상문학이 차지하는 위치는

변함이 없다.  그 훼손되지 않는 빛나는 비밀이 무엇인지를 되묻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본질이다.

물론 그 비밀을 찾아내는 흥미진진한 도전은 이상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몫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 소설이 소설이 지닌 상상력의 거침없는 나래에 이상을 얹음으로써 그동안 가지 못했던

곳으로 시야를 넓혔다는데 있다.   특히 이 문제의식은 나처럼 이상에 대한 비전문적 접근을 시도하는

사람에게 더 희망적인 방향제시이다.  어쩌면 작중인물 김태익처럼 난독에 주를 두고 문맥과 문장과

단어에 주안점을 둔 좁은 해석이 아닌 좀 더 넓게 바라보는 시야에 이상을 두고 보아야 그 비밀의 일부라도

실마리를 잡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래서 이상연구는 가슴 조마조마하고 더 가슴설레는 일인지도

모른다.



ps. 이 책을 읽고 비밀이 되어 사라진 李箱과 내가 사랑하는 '로맹가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과연 이 책을 읽고 내가 로맹가리의 이 유서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내 마지막 소설의 마지막 말 속에서

 대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