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어요

<애나벨: 인형의 주인>을 보고 영화 <곡성>을 다시 보게 되다.

묭롶 2017. 8. 15. 21:15

 

 

  아마도 올해 처음 개봉된 공포영화인것 같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운 세상을 살다보니 스릴러물은 넘쳐나는데

공포물은 갈수록 그 입지를 잃어간다.  그 와중에 컨저링과 인시디어스 그리고 애나벨로 이어지는 나름의 끈끈한

스토리라인을 유지하는 제임스 완 사단에서 만든 영화 <애나벨: 인형의 주인> 개봉 소식을 듣고 손꼽아 기다렸다

보게 되었다. 


  물론 귀신이 무서워봤자 영화 <추적자> 에 나오는 사이코패스 하정우만큼 무서울까 싶긴 하지만 공포영화가 갖는

나름의 공식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공포영화에는 추리소설이 주는 즐거움과 같은 종류의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영화 애나벨을 보면서 우리나라 공포영화의 변화점을 발견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먼저 사연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사연이 많다.  우리나라

공포영화의 시조격인 <월하의 공동묘지>와 나의 초등학교시절 화제가 대단했던 <여곡성>과 그 이후 <여고괴담>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공포영화에 출연하는 귀신들은 다들 참으로 기구한 사연들을 지닌 원혼들이었다. 

물론 이러한 공통점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사다코>, <주온>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과 <디아이>등의 태국 영화

등에도 적용된다.

  그런데, 원혼에서 출발해서 사람들에게 저주를 주는 존재로서의 공포였던 동양적 공포가 영화 <곡성>에 이르러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가장 큰 차이점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주체의 변화이다.  과거 원혼에 의한

저주가 죽음의 원인(개인적 원인)이었다면 <곡성>에서는 악령에 의한 빙의가 원인이 된다. 

  악령으로 대표되는 공포물의 시조는 영화 <엑소시스트>를 꼽을 수 있겠다.  동양적 공포물의 원인체들이 지박령인

반면 악령은글로벌하다.  아프리카 바빌론 유적에서 발견된 악의 상징물은 저 멀리 뉴욕의 어느 소녀(리건)에게 빙의되어

그 육신과 영혼을 장악하고 주변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간다.  이건 단순히 영화 <링>의 비디오테이프만 안보면 되는

상황이 아니라 그냥 이유도 원인도 없이 느닷없이 죽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큰 차이점은 동양적 공포물의 원인이 원혼에 의한 저주 즉 개인적인 원인에 있기 때문에 그 저주의 대상과 발현이

제한적인 반면 서양의 공포의 원인인 악령은 지역도 문명도 성별도 가리지 않는 차이를 지닌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애나벨이나 컨저링, 인시디어스나 엑소시스트에 나오는 악령들에 비하면 비오는 날 무덤 가르고 나와서 소복 입고

울어제끼는 귀신들이나 영화 <곡성>에서 참 힘이 없던 지박령 무명(천우희분)은 귀여울 지경이다.  

  암튼... 글로벌한 악령들은 소복 입고 나와서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읊지 않는다.  그냥, so cool하게 나 잠깐

you get 할게 ok??할 뿐이다.  여기서 어리버리 아무생각없이 대답하고 허락비스무리하게 했다가 피박 쓰고

신장 털리고 영혼까지 털리는게 바로 헐리웃 공포가 아닌가 싶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과거에 참 순박했던 원혼이었던 한국공포영화 주인공께서 영화 <곡성>에서 글로벌한

악령으로 변신하신다는 점이다.  인도 밀교인 부두교의 밀법에는 일정 수의 좀비 즉 영혼 없는 자에 의해 제물로

희생된 사람들에 의해 어떠한 존재?(대부분 악령)가 소환된다는 의식이 있다.  영화 <곡성>에서 사람들은 원인 모를

이상한 것에 빙의되어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  결과적으로 그 결과 영화 말미에 힘을

되찾고 소환되는 것은 거대한 악령이다. 

   어찌보면 <곡성>이 헐리웃자본을 투자받아 제작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여곡성>부터 <여고괴담>을 거쳐

한국에서 개봉되는 거의 대부분의 공포영화를 모두 보아온 내 눈엔 한국의 공포영화가 <곡성> 전과 후로 나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왜??? 주인공의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그런 이유에서 <컨저링> 과

<인시디어스>, <애나벨>이 후속편 제작이 가능한지 짐작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조금은 아쉬운 지점이 없지

않다. 


  ps: 참 헐리웃 공포영화의 악령들이 인정머리가 없다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된 <애나벨:인형의 주인> 이었다.

       애나벨 인형의 제작자인 부부의 이름이 사무엘과 에스더(성경에서 믿음을 지닌 자로 대표되는)라는 점이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믿음의 유무와 그 깊이와 나이와 성별을 따지지 않고 빙의를 통해 자신을 확대

        재생산해내는 악령의 존재가 어쩌면 문어발식 글로벌 기업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ps2:  그나저나 <컨저링2>와 <애나벨:인형의 주인>에 걸쳐 두루 활약하신 발락수녀가 다음 시리즈물에

           어떤 사연을 가지고 등장할지 벌써 궁금해진다.  그나마 공포물이 스릴러물보다 좋은 점은 뒤끝이

           덜 찜찜하단 점이다.  물론 <13일밤의 금요일>에서 계속 죽지 않고 후속에 등장하는 제이슨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