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어요

<자백>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간첩,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묭롶 2016. 10. 22. 23:08

 

  자유 남한을 꿈꾸며 탈북한 남자가 있다.  그는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중국에 있는 여동생을 데려와 함께

살고 싶은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여동생은 대한민국에 도착하자마자 국정원 산하 비밀 기관에 끌려가

6개월 동안 감금되었고, 공무원이었던 남자는 간첩 협의로 고발되어 구속된다.  여동생은 오빠가 북한을 드나들며

간첩행위를 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지만, 법정을 나와 자신의 자백이 강요와 협박에 의한 거짓진술이었음을 밝힌다.  

  국정원과 검찰은 심문 과정에서 여동생에게 거짓진술을 유지해야만 대한민국에서

오빠와 함께 살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 또한 거짓이었고 여동생은 끝내 중국으로 추방되었다. 

  이 후 삼년이 넘는 기간동안 검찰과 국정원은 무죄 판결을 뒤집기 위해 계속 조작된 공문서와 출입국

기록을 증거로 항고심을 했고 대법원에서 최종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날 때까지 여러 가지

죄목을 덧붙여 남자를 괴롭혔다. 

 

  영화 『자백』은 국가에 의해 간첩으로 몰린 사람들을 추적조사하여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간첩이

되었는지와 그들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다룬 다큐멘타리 영화다.  영화 중반부, 최승호PD가 인터뷰한

탈북자 조사과정 중 자살한 한준식이라는 남자와 함께 조사를 받았던 탈북자는 '나라가 필요해서

그렇게(감금, 폭행, 세뇌 등)하는 것이니 자신은 할 얘기가 없다'고 말한다.  이 나라에 이만명의 간첩이 암약하고

있다는 새누리당 의원의 말처럼 그렇게 많은 간첩에 왜 필요한 것일까? 

 

  초등학교 시절 '평화의 댐'이 떠오른다.  연일 TV 화면에서는 북괴에 의해 수몰되는 서울의 풍경이 보도되며

북괴의 수몰계획에 맞서 '평화의 댐'을 설립해야한다는 당위성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심어줬다.  학교에서는

'평화의 댐'에 관한 글짓기와 반공 포스터, 글짓기, 성금모금이 실시되었고, 이에 대한 이견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시절인 지금도 통장잔고 21만원이 전부인 전두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어린 내 눈에도 '평화의 댐'은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죽었다는 이승복 어린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광기어린 열기가 담긴 사건이었다. 

  이후로 커가면서 선거를 앞두거나 무슨 큰 일이 생길 때마다 언론에서 터져나오는 간첩, 비행기 폭파,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한 도배된 기사들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늑대는 애초부터 없었단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영화 『자백』을 보면서 왜 아직도 저들은 틈만 나면 '늑대가 나타났다'를 외치며 없는 늑대를 만들어내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지배자인 빅브라더를 위해 역사는 계속해서 조작되고 사람들은 시스템을 위해 지배구조에

용이하게 세뇌당하고 사상경찰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위험인물들을 잡아들인다.

 

  「과거를 개조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보조적인 것, 다시 말해 예방적인 것이다. 

~ 하지만 과거를 개조하고 조정하는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당의 완벽함에 대한 안전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P295~296

 

악몽은 맨 처음 팔꿈치를 얻어맞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에 일어났던 일들은

거의 모든 죄수들이 겪어야 하는 관례적인 예비 심문일 뿐이었다. 

모든 죄수들이 마땅히 자백해야만 하는 죄목에는

간첩행위, 파업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자백은 일종의 형식에 불과한 것이었고, 고문이 진짜였다. 

얼마나 많은 매를 얼마나 오랫동안 맞았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P335

 

  대한민국은 표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실상은 조지 오웰의 『1984』처럼 피라미드의 극점에 있는

그들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그들의 체제를 유지시켜주기 위해 어릴적부터 세뇌되고 무력화되었으며 다 같은 처지임에도

서로가 서로를 미워해서 함께이지 못하게 만드는 재주를 지닌 극소수를 위해 존재하는 나라다.  이 나라의 지배층에게

국민은 필요에 의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비풍초똥팔삼의 흑사리 껍데기와 같다. 

 

  흑사리 껍데기만도 못한 간첩사건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냐고 물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억도 안나고

 웃기기까지 하는 것 아니겠는가(자신의 재임시절 일어났던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묻는 최승호 PD의 질문에

검은 우산 속에서 웃고 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얼굴이 바로 이 나라 지배계층의 민낯이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국민이 국가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찍히면 언제든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 있음을 이번에 또 하차당한 MC 김제동을 통해 보여주며 이 나라는 국민을 대상으로 협박과 회유를 일삼는다.

미국작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의 인용구처럼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언제든 국가에 의해 파괴될 수 있다는

자각이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하인즈라는 친구가 있었는데,~그놈은 항상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어. 

 '망할 놈의 빨갱이들이 이 나라를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가 이 빨갱이 놈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런데 그때 여기 서부로 온 지 얼마 안 된 젊은이가 ~그런 말을 듣더니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렇게 말했지. 

'하인즈 씨, 제가 여기 온지 얼마 안 돼서 그러는데요,  그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게 뭐죠? 

그랬더니 하인즈가 대답을 했지. 

'우리가 시간 당 25센트를 주겠다고 할 때 30센트를 달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다 빨갱이야!'」2권 p148

 

  하지만 내가 이 나라의 지배구조를 향해 시간당 30센트를 요구하는 순간 국가라는 파리채가 내 삶을 송두리째 부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가혹한 현실의 원인제공이 자신에게 있다며 스스로를 자학하게 만들어

자기파괴와 자존감 상실 속에서 같은 처지의 타인을 아니 서로를 미워하고 경멸하게 된 사람들은 어디에서 자신들을 공격해

오는지를 알지 못한다.  화살이 어디에서 날아오는지를 직시해야 피할 수 있는 확률이 생기듯이 영화 『자백』

간첩조작 사건의 전말을 우리 앞에 드러내보임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되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