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어요

<무뢰한>과 <차일드44>를 통해 다른 체제 속에서의 사랑을 비교해보다.

묭롶 2015. 5. 31. 23:30

  이틀에 걸쳐 금요일엔 혼자 <무뢰한>을 토욜에 신랑과 <차일드44>를 봤네요.  영화 <무뢰한>은

하드보일드멜로를  <차일드44>는 스릴러로 장르도 다르고 하나는 자본주의를 <차일드44>는 공산주의라는

점에서 배경도 전혀 달랐죠.  그런데 전혀 달라보이는 두 편의 영화가 한계상황에서의 인간의 사랑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더군요. 

  먼저 <무뢰한>의 사랑이야기를 살펴보죠.  영화의 카피처럼 단란주점 마담인 해경과 잠복 형사인 재곤의

사랑은 영화의 카피처럼 시작부터 거짓에서 출발해요.  거짓을 발판으로 커져가는 감정은 불신과 의심을 낳게

되죠.  어쩌면 <무뢰한>이 그리는 사랑은 자본주의 세상에선 어쩔 수 없이 필연인 이유목적적 사랑을 여과없이

그려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이 겉치레를 다 벗고 목욕탕에 들어가게 되면 서로 체형의

차이와 무게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같은 몸뚱이인 것처럼, 자본주의가 덧씌워놓은 포장된 사랑의 겉치레를

벗겨낸 날 것의 사랑이 <무뢰한>에서 해경과 재곤의 사랑이 아닐까 싶어서죠. 

  전도연은 영화 속에서 몸뚱이만 남은 여자의 삶을 너무나 완벽하게 그려냈어요. 드라마 <미생>에서

천과장이 밤에 영업상 마시는 술자리 이후 집에 들어가서 스트레스 받은 자신을 위로하며 혼자 기울이는

술잔처럼 밤새 술접대에 술에 찌든 발걸음으로 돌아와 혼자 물컵에 소주를 따라 마시는 전도연의 모습에서

그전 캐릭터의 잔상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죠. 책 『피로사회』에 표현된대로 자본주의를 사는 현대인은

스스로의 감정을 감춘 채 살아가는데 길들여진 만성피로를 고질병으로 지니고 있어요. 강한자, 가진자에게는

감정을 감춘 채 구부리고 약한자에게 화풀이하는 현재를 <무뢰한>은 영화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요.

(그런 까닭에 <무뢰한>에서 깡패와 형사의 행동에는 차이가 없어요.  자본주의의 생리대로 행동하는 그들에겐

하는 일의 차이만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무뢰한>이 피로를 껍데기처럼 뒤집어쓰고 사는 현대인들의 필요목적적 사랑을 그린다면 <차일드44>는

비교적 고전적인 사랑의 감정을 다루고 있어요.  고난을 함께 나눈 두 남녀가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전형적 사랑의 과정을 스릴러라는 장르에 담아 보여주지요. 

공산주의 체제에서도 인간의 감정은 감춰야하는 소모적이고 감상적인 산물이에요.  남녀간 가족간 동료간의

사랑과 우애는 체제의 안녕을 위해 언제든 없어지고 없앨 수 있는 한시적인 감정이죠.  체제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솔직했던 전직 MGB(우리나라 국정원)요원인 레오는 자신의 아내인 라이사를

반역죄로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좌천되죠.  영화는 레오가 왜 아내를 고발하지 않았는지 설명하지 않아요.

보통의 영화들이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역경을 헤쳐나가는 반면 <차일드44>는 고전적 의미의 사랑을

다루면서도 의심없는 순도 100%를 확신하지 않기 때문이죠. 

 

  결국 <무뢰한>과 <차일드44>를 통해 내가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사랑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동안에

두 남녀가 겪어내는 과정인 현실이지 환상이 아니란 점이에요.  현대인에게 사랑은 스스로 사랑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기차에 뛰어드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까레리나』가 아니라 사랑했던 남자를 칼로 찔러야

했던 여자 해경의 모습에 있어요. 

 

  ※  두 영화를 통해 두 여성 캐릭터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네요.  누구나 쉽게 취급하는 자신에게

배려를 하는 남자를 만난 여자는 그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요.  말 그대로 몸 바치고 마음바쳐 사랑

하는거죠.  매를 때리는 주인이 부르면 매번 뒷걸음질치면서도 다가가는 개처럼, 잔인한 현실이 구둣발로

잠자는 안방에 들어와도 그 삶을 살아내요.  마지막까지 사람이 주는 체온의 따스함을 저버리지 못하는

거죠.  <차일드44>의 라이사는 생존을 위해 사랑하지 않는 MGB요원과 결혼을 해요.  그런데 이 남자가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자신을 고발하지 않아요.  그런대도 라이사는 이 남자를 떠날 궁리만 해요.

그러다 남편이 위기에 처하자 남편보다 더 열심히 싸우고 때리고 동참해요.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드는 캐릭터에요.  두 여자 모두 각자 나름으론 수동적 삶을 살진 않았지만, 현실적 캐릭터인 해경은

지켜보기 너무 마음 아파서 영화적 캐릭터인 라이사 쪽으로 눈길이 돌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