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어요

<콰이어트 원> 공포 영화의 특징을 발견하다.

묭롶 2014. 9. 21. 23:30

 

  내가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호러(공포물)다.  보통의 상황을 벗어난 왜곡된 현실(큐브, 오큘러스 등)이나

극한에 처한(좀비물, 고어물 등) 상황에서 인간은 본성을 드러낸다.  그 본성이 살기위한 본성이든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성이든 간에 여타의 장르에서 볼 수 없는 인간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는 어린시절부터 호러물을 즐겨왔다.

주변사람들은 정신건강에 해롭다며 말리는 영화취향이지만 무슨 악취미인지 나는 그런 사람들의 편견에도 보란듯이

지금까지 열심히 보고 있다.

 

  공포물을 계속해서 보다보니 어느순간 공포영화의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공포영화의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누군가에게 전이(轉移)하려는 목적을 지닌 존재들이다.  공포물에서 전이(轉移)는 매개체를 통해서도

이뤄지는데 최근 개봉한 <오큘러스>에서는 '거울'이 컨저링에서는 '귀신들린 집'이 그리고 오래된 영화 '처키'에서는

악령들린 인형이 매개체가 있다. 공포의 주인공이 전이(轉移)를 통해 죽지않고 부활한다는 점은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에게서 느껴지는 찜찜한 공포를 연상시킨다.  물론 공포물은 전이(轉移)라는 독특한 장치를 통해 자연스럽게

속편 제작의 용이성을 갖는 이점도 있다. (<컨저링>과 <인시디어스> 속편들을 보자면)

 

 

  공포물에도 상.중.하가 있다면 매개물을 통한 전이(轉移)는 그나마 중(中)에 해당된다.  왜냐면 매개물을 제거하면

공포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공포물의 하(下)를 차지하는 것은 좀비 류가 출연하는 영화들이다.  이 경우는 더 쉽다.

왜냐면 좀비는 이미 인간으로서의 판단 능력을 잃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나마 제거에 인간적 갈등이 덜 하다.

문제는 공포의 매개물이 사람이 될 경우이다.  이 경우는 상(上)에 해당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악령이 들렸다

(컨저링에서 엄마, 인시디어스에서 아들 혹은 남편, 엑소시스트에서 딸 등)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들은 재수없게

악령의 매개물이 되었을 뿐, 그 대상이 가족이 아닌게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들은 나은 경우이다. 퇴마의식을

거치든 가족이 똘똘 뭉쳐 난관을 극복하든 간에 회복이 되면 다시 해피엔딩을 맞을 가능성이 이 경우에는 존재한다.

 

  공포물의 전이(轉移)과정 중 가장 최악의 경우는 싸이코틱한 부 또는 모(영화적 경우로는 엄마다 다수다),

아니면 부모가 같이 아이를 전이(轉移)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이다.  전설적인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 와

<인시디어스>에서 연쇄살인마의 엄마, 그리고 좀 지난 영화 <셀>에서 연쇄 살인마의 엄마 등이 최악으로

꼽을 수 있겠다. 

  이 최악의 전이(轉移)의 특징은 일방적으로 비뚤어진 사랑이 대상에게 지속된다는 점이다.  비뚤어진 사랑은

인간으로서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독자적 이성을 말살시키며 자신의 자존감을 상실하게 만든다.  그 상실의

공간을 대신 차지하는 것이 바로 전이의 원본보다 진화된 형태의 거대화된 싸이코 인격이다.  <인시디어스>에서

검은 신부를 만든 연쇄살인마의 엄마는 남편에게 버림 받은 자신을 대신하여 아들에게 딸이 되기를 강요한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보상심리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아들에게 퍼부은 결과 아들은 여성이 되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방법을 찾던 중 다른 여성성을 희생시킴으로써 만족감을 얻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공포물의 또 하나의 특징이 등장한다.  이는 공포물의 공식과도 같다.  공포물에서 공포의 근원이 되는

인물은 내제 상태->각성->발현->전이 의 과정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공포물의 고전 <엑소시스트>에서

딸(리건)의 이상증세를 발견한 엄마는 신부에게 도움을 청한다.  신부는 한 눈에 악령이 들렸음을 확인하고

이제 신부에게 정체를 들킨 악령은 열심히 자신의 힘을 보란 듯이 펼쳐보이다 숙주(리건)의 몸이 약해지자

더 건강해보이는 젊은 신부에게로 옮아간다.

  영화 <콰이어트 원>는 내제->각성->발현->전이 의 과정을 영화속에서 충실히 보여준다.  영화에서 박사는 인간의

비정상적 뇌활동이 염력의 정체라고 믿는다.  비정상적 뇌 활동을 일으키는 원인을 다른 대상(인형)에게 전이(轉移)하면

환자가 정상이 될거라는 자신의 가설을 믿는다. 그의 가설에 따른 실험은 오히려 전이(轉移)의 대상을 환자가 스스로 선택

하게 됨으로써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환자인 제인은 자신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브라이언을 대상으로 선택한다.

공포물에서 전이(轉移)이 대상을 사랑하는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제의적(祭意的)인 성격을 띤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전이(轉移)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공포물에서 가장 완벽한 전승(傳承)을 이루는 것이다.  <콰이어트 원>과 심은하가 출연

했던 드라마 <M>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물론 공포의 근원물인 원본이 음..넌 맘에 들어. 이제 내 꼬야.  라고 찜한다고 해서 전이(轉移)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 전이(轉移)의 대상은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컨저링> 첫번째 이야기에서

귀신 붙은 인형을 매개로 한 악령이 붙은 두 명의 여자 룸메이트에게 영매인 부인은 '처음부터 들어오라고 허락해

준 것이 잘못'이라고 말했다.  사랑을 매개로 이뤄지는 공포물의 전이(轉移)는 '사랑'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자아를

원본에게 자리를 내어준 자발적 동의가 가장 큰 문제가 된다.  드라마 <M>에서 이창훈이 '차라리 나를 가지라'는

외침에 'M'의 악령이 얼마나 쾌재를 불렀게는가.  <콰이어트 원>에서도 제물이 되버린 브라이언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을 표현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자넨 내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 말을 돌리고 있어.  원래 자기 얘길 그렇게 안하나"

라는 박사의 물음을 자존감이 약한 브라이언의 심리 상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다.

 

  갈수록 멀쩡한 정신으로 살기 힘든 세상이다.  얼마전 종영한 <괜찮아, 사랑이야>의 노희경 작가 말처럼 드러나는

상처가 중요한게 아니라 감춰진 채 곪는 상처가 문제이다.  자신을 붙들고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건강한 자아를

갖는게 중요함을 공포영화 속에서 다시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