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어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슬프면 반칙이에요!>

묭롶 2014. 12. 14. 21:30

 

           2014년 12월 13일 남편의 생일날 아침겸 점심을 먹고  영화 어때? 콜! 이라고 답해서 영화 시작 십분전에

영화를 보기로 했다.  어르신 두 분이 나오신다는데 사실 화제성보다는 상영시간에 끌려서 내린 영화선택이었다.

조금 늦게 상영관에 들어갔는데 영화가 시작됐는지 달밤에 화장실에서 나오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노랫가락

한 소절을 들려주시는 장면이 보였다.  그 다음 내 시선을 끄는 것은 어르신 두 분이 사시는 산골 집이었다.

엥?  동네가 어디지?  사투리가 강원도 같긴 한데.......... 어르신들 사시기에 참 열악해보인다.... 저렇게 눈오고

추우면 연세 드신 분들께서 밥해 드시기도 힘들텐데 두분 손잡고 요양원 가셔야 하는 건 아닌가.....혼자..

찧고 까불고 별놈의 생각을 다하는데, 참 두분 사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또 그 모습이 끝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애틋함에 가슴이 아려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76년을 함께하셨다.  우린 늦은 결혼으로 남편은 마흔네살, 난 서른 아홉 살, 팔십을

상한으로 놓고볼때 우리에겐 사십년 정도가 남은 셈이다.  늦게 결혼을 하고 늦게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은 예전에는 본인이 우선이더니 자신이 우선순위에게 밀렸다며 투덜거렸다.  맛있는 거, 좋은 거, 예쁜 거는

온통 딸램이를 먼저 챙겼으니 그럴 법도 하다.

 

            생활의 여유는 내일의 직장생활을 위해 담보 잡힌 채, 그나마 남은 에너지는 딸램에게 쏟아부었다.

비단 나 뿐일까.  밥상 위에 맛난 거 있으면 먹고 싶어도 참고 쇄꽹이 수저 위에 먼저 얹어주고 먹는 모습만 봐도

행복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 과정 중에 소외받은 큰 아들(남편)은 이복자식같은 기분이 들었을까?

           어찌보면 남은 시간의 대부분을 함께해야 할 말 그대로 '반려자'인데, 살아가는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반려'하며 나머지 숙제처럼 미뤄뒀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당장 남편을 대하는 행동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영화를 보고 왠지 저 사람의 늙음까지 함께 공유하겠지란 생각에 마음이 짠해진다.  좋은 것을 함께하는 건

당연하지만 자식들도 마다하는 서로의 늙음과  아픔을 가감없이 함께한다는 점에서 '배우자'는 참 소중한 존재다.

유머에 팔십 드신 어르신에게 자랑은 배우자가 있는 것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사실 남편과 나는 슬픈 영화에는 맥을 못 춘다.  ㅜ.ㅡ 눈물, 콧물 홍수가 나서 수습이 안되니 처음에는 서로

안 운 척 하기도 챙피해서 슬픈 영화는 멀리했는데, 나이가 둘다 중반을 넘어가니 울고 팅팅 붓는 것도 창피한 줄 

모르게 되었다.  그래도 영화를 보면서 이 사람과의 미래를 꿈꿀 수 있어 행복했다.  당장 현실을 견디고 어쩔 수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은 현실 속에서 그래도 나는 많이 가진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것을 갖고 있지만 더,더,더 를 외치느라 내 주변을 돌보지 못했다.  최근 내 생활에 강력한 장애로 등장한

목디스크를 신경쓰느라 탈모가 진행 중인 남편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더 빠졌는지, 주름살이 얼나마 늘었는지, 밤에

기침을 해도 아는 척을 하지 못했다.  같이 사는 사람인데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그러다 갑자기

둘 모두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지면 참 어색할 것 같다.  엥?  내가 그전에 알 던 분이 맞나요?  하이고 너도 마찬가지세요!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고 각자 서로의 길을 전력질주 하느라 단절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원망과 거리감을

지닌 채 오랜 시간을 함께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남편 늙으면 곰 솥에 일주일 치 국 끓여놓고 놀라간다는 말은 괜히

있는게 아니다.  늙기 전에 남편이랑 많이 놀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쏘주도 맥주도 같이 더 많이 마시고 노래방도

같이 가고 여행도 다니고 둘이서 신나게 뒷담화도 보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나이가

들어있지 않을까.  솔직히 영화를 보고 아프기 전에 많이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자의 아픈 모습을 지켜본다는

건 상상만해도 너무 힘들고 너무 무섭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슬펐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