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고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은 자신없는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 자작곡을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한다.
"~다시 마지막 한 발을 내 디딜 수 있겠니?~되돌리지 못 할 한 발" 영화에서 그레타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이다.
삶이 주는 시련과 절망으로 나 홀로 칠흙같은 어둠에 갇혔다고 느낄 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좌절과 자학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레이첼이 부르는 노래의 가삿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내게 영화의 시작과 함께 레이첼이
들려주는 노래는 난 너의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 우리 함께 노래 부르지 않을래라는 말로 들렸다.
어둡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 넌 혼자 있는게 아니라며 손을 내미는 듯 한 노래가사는 듣는 사람에게 다시 한 발을
내디딜 용기를 북돋워준다. 물론 앞 날을 향한 내 발걸음은 자기 자신의 몫이라는 조언도 빼놓지 않고.......
실의와 좌절에 빠져있을 때 어느 누구의 조언도 귀를 스쳐갈 뿐 마음에 와 닿지 못할 때 마음에 와 닿는 노래(음악)들이
있다. 그런데 가까운 이의 조언보다 왜 노래(음악)가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일까? 그건 아마 모든 문제의 해결의 열쇠를
내 자신이 지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일지라도 내 삶을 대신 걸어가줄 수는 없기에 인간은
숙명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음악은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전하지 않지만, 음악이라는 공간 안에 나를 놓아둠으로써
나자신을 받아들이고 수긍할 수 있게 해준다. 영화의 제목처럼 BEGIN AGAIN(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은 나를
직시(直視)함에서 출발한다. 나는 시간이 날 때면 귀에 이어폰을 끼고 클래식 FM(실황 음반)을 들으며 잠깐씩 밤길을
걷는다. 많아야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번뿐인 산보길이지만 클래식 공연 실황을 들으며 길을 걷노라면 나 자신이
악기의 일부가 된 느낌이 든다. 나라는 악기의 현이 들리는 음악에 맞춰 현이 떨리고 울리는 느낌 속에서 나를 스쳐가는
모든 풍경들과 사람들은 더 이상 낯선 대상이 아닌 음악의 일부가 된다. 산 아래에서는 나무가 보이지만 산 정상에서는
산의 전체 모습을 바라볼 수있는 경우처럼 음악을 듣는 동안 우리는 무한하게 확장되는 나를 경험하게 된다.
영화에서 왕년에 잘 나갔던 음반 제작자인 댄은 음악을 통한 '무한하게 확장되는 나'에 대한 경험을 음악을 듣는 동안
평소에 아무 의미가 없던 모든 것들이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고 말한다. 댄의 경우처럼 음악을 듣는 동안 내 주변의 모든
사물들 또한 음악의 일부가 된다. 가사를 몰라도 세계 전역에서 싸이의 음악이 들리면 말춤이 아니더라도 흥겨움에 춤을
추는 것처럼 음악을 통한 영역의 확장은 그 확장의 공간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공통의 감수성으로 묶어놓는다.
물론 아무 음악이나 경계를 확장하는 힘을 지닌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레이첼이 말하는 진정성이 있는 음악은 바로
경계의 확장을 통해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아우르는 힘을 지닌 음악을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진정성 있는 음악이
치유, 힐링의 힘을 지닌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레이첼의 노래는 무너진 댄의 삶을 일으켜 세우고 그의 가정에 변화를
가져오며, 상업성의 대중음악 세계로 변질(박제)되어버린 예전 남자친구에게 깨우침을 건넨다. 이 모든 일들은 그레타가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음악이 일으키는 마법과 같은 일들이 우리의 현재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잔혹한 현실에서 언제나 음악이 우리 곁에 있다는 깨달음은 영화 BEGIN AGAIN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 PS: 솔직히 나는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이 무쟈게 부럽다. 내 마음이 원하는대로 표현할 수 있다면 박정현이나
알리 정도로 나와줘야 하는데 현실은 1옥타브 이상 안되는 고음불가다. 음악을 듣고 느끼는 리코더 기능만 있고
사운드 기능은 탑재가 되지 않는 나라는 존재의 한계를 음악을 통해 실감하게도 된다. 영화 속 레이첼처럼 얼굴도
예쁘고 노래도 잘하고 거기에 작곡까지 가능하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래도 나는 또 다른 기능이 있을지도 모르니
아직까지는 나라는 별을 더 많이 탐사해봐야할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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