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요리의 절반은 재료라고 말한다. 원재료가 훌륭하다면 이미 그 요리는 특별한 조리법이나
첨가물을 가미하지 않아도 그 원재료의 맛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한 점의 가격을 논해야 하는 제주도의
다금바리나 서해안의 깨끗한 뻘에서 체취된 백합은 그 자체만으로도 여타의 재료와 어울지지 않는 독보적인
맛과 향을 자랑한다. 영화라는 장르도 요리와 비슷하게 취향과 식성이 기호를 가늠하는 장르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로 다수 관객층을 확보한 감독이나 뛰어난 연기를 인정받는 배우는 작품의 상업성과
재미를 떠나 일정 수 이상의 관객을 담보하게 한다.
영화는 술을 마시는 사람과 안 마시는 사람, 그리고 술 중에서도 소주나 맥주 그리고 폭탄주 등 그 기호에 따라
관객의 선호도가 갈리는 장르이다. 이는 비단 청소년 관람불가나 전체관람가로 구분지을 수 없는 부분이어서
어떤 영화들은 제한상영가의 등급을 받고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상업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외면을 받기도 한다.
나는 사실 미국의 영웅주의적 상업영화를 싫어한다.
영화 <아마겟돈>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지구에 충돌하려는 소행성에 폭탄을 설치하는 임무를
맡는다. 지구를 구하는 특별한 인간에게서 전해지는 감동을 배가하기 위해 영화 속 브루스 윌리스는 의연하게
딸의 안위를 딸의 남자친구에게 전하고 장렬하게 산화한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는 어떠한가.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인에 맞서 미국의 대통령이 친히 감격스럽게도 폭격기를 직접 조종한다. 이런 미국식 영웅주의는 지구를 구하는
영광스런 자리를 특별한 영웅인 미국인, 그것도 백인에게 수여한다.
미국의 상업영화를 돈을 주고 보면서 미국식 우월주의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건, 중국산 양식 우럭을 가지고 와서
회쳐 놓고 다금바리라고 내놓는 꼴과 진배없다. 그들이 강요하는 억지 감정에 동요되어 영화를 보기에는 고량주를
못 먹는 나에게 억지로 죽엽청을 권하는 상황과 같아서 혐오가 인다.
그런데, <가디언스 오브 더 갤럭시>를 보자. 일단 구성부터 잡다한다. 영화 <군도>에서 강동원이 관군으로 변복한
지리산 추솔을 보고 잡스러운 냄새가 난다고 한 대사가 떠오를 정도로 구성원이 다양하다. 하다못해 <스타트렉>처럼
외계인이나 기계인간도 아니고 이건 변형 인간에 혼혈 인간에 실험으로 조작된 너구리와 유전자 변형된 식물까지,
전혀 동질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건 뭐 요리로 보자면, 그냥 잡다한 재료를 넣고 끓인 부대찌개다. 그런데 아무거나 섞어서 끓인다고 부대찌개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중 재료가 상한게 있다면 이를 끓인 건 요리가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다. 서로 섞어 끓인 찌개일지라도
그 재료 각각의 선도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이를 요리라고 부를 수는 없다.
영화 속에서 이들은 스스로를 루저라고 부른다. 각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그 스스로 루저라고 부르는 존재들
이지만 그들은 쓰레기가 아니다. 무언가를 많이 가진 자들이 비겁해질때 특출한 능력을 지닌 영웅적 면모를 지닌
인물도 없지만 그 자신 스스로 가진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내어 놓는 그들이 한데 모여 끓여내는 부대찌개의 맛이
영화 <가디언스 오브 더 갤럭시>의 매력이다.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그 기호를 떠나 남녀노소 좋아하는 부대찌개처럼
이 영화는 코믹과 액션, 휴머니티를 부족함 많은 인물들을 통해 섞어 끓여냄으로써 더욱 진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가디언스 오브 더 갤럭시>는 <어벤져스>시리즈와 비교되는 점이 많다.
같은 제작사인 마블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다는 점과 지구의 위기와 우주의 위기를 한 팀을 이뤄
헤쳐나간다는 공통점을 빼고 두 작품은 성격이 다른 이란성 쌍둥이와 같은 차이점을 드러낸다.
먼저 <어벤져스>는 한 팀을 이룬 각각의 인물 하나 하나가 모두 특출한 능력을 갖춘 영웅들이며 남다른
자의식(어찌보면 똘끼)의 소유자들이다. 과학고에서 일등을 다투는 것처럼 특출한 인물들이 서로 모여
좌충우돌을 겪고 그 각각의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여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 내용이 <어벤져스>라면,
<가디언스 오브 더 갤럭시>의 인물들은 5초 뒤에 팀원을 배신한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팀 결속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태생과 각각의 사연만 남다른 인물들이다. <어벤져스>의 인물들이 뭔가를 잃어본 적이
없는 힘 있는 주인공들이라면(오히려 자신의 힘이 그 자신에게 독이 됐을지는 몰라도) <~갤럭시>의 인물들은
계획도 없고 그저 닥치는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들이다.
<~갤럭시>에서 가장 자의식이 있는 인물은 변형식물 '그루토'다. "나는 그루토다"라는 말만 계속 되풀이
하지만 그의 행동에서 거짓과 이기심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어찌보면 갤럭시팀을 이끄는 구심점은 퀼이 아닌
'그루토'다. 타인을 '나'가 아닌 '우리'로 끌어안는 능력은 그 어떤 영웅도 가지기 힘든 면모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적이 특출난 어느 한 사람의 영웅적 행동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적은 '나'가
아닌 '우리'가 되는 순간 일어난다. 힘을 가진 자에게 맞서는 용기는 개인도 품을 수 있지만 가진 자를
쓰러뜨리는 힘은 함께 행동할 때 나온다는 사실을 <가디언스 오브 더 갤럭시>를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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