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어요

<그레이트 뷰티> 죽음이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다.

묭롶 2014. 6. 18. 23:30

 

 

 

  <그레이트 뷰티>를 보고 죽음과 물(로마)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로마의

유적지를 관광하는 관광객의 모습  뒤로 노래하는 합창단이 오버랩된다.  정확한 곡명을 알 수

없지만 내게는 장송미사곡으로 들리는 합창 속에 한 사람의 관광객이 갑자기 쓰러진다. 

그리고 로마의 유적지 분수의 물로 손과 얼굴을 씻는 남자를 뒤이어 거리를 걷던 주인공 젭이 길을

걷다 도로변 급수시설에서 얼굴과 손을 씻는다. 

  이렇듯 <그레이트 뷰티>는 영화의 진행이 서사가 아닌 장면이 지닌 메세지의 연결관계를 통해

진행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장면(시퀀스)과 장면(씬)의 연결은 영화가 반복적으로 비춰주는 바다와

물이 갖는 이미지인 순환의 의미를 지니며 하나의 결론(죽음)을 향해 흘러내린다.  난 영화를

전문적으로 관람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영화의 시작부에 인용된 셀린느의 <밤의 끝으로의 여행>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순환(로마)의 이미지 속에서 풀어내려 했다는 점을 막연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1. 죽음과 물(로마) 의 이미지

 

  주인공인 젭 감마르델라는 자신의 65세 생일파티 직후 첫 사랑의 부고를 듣게 된다.  뒤이어 그는

같은 모임 회원의 아들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그 다음엔 친구의 딸인 라모나를 떠나보낸다. 

주인공이 겪는 세 번의 죽음은 어찌보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도입부인 죽음이 하는 네 번의

노크와 닮아있다. 

 

  <크리스마스 캐롤>의 구두쇠 스크루지가 자신을 찾아오는 유령들(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각성했던 것처럼 타인의 죽음은 살아있는 자에게 새로운 삶을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첫 사랑의

죽음은 자신에게도 죽음이 도래했음을 예고한다.  젭은 이제 자신에게 허비할만한 여분의 시간이

없다는 각성과 더불어 자신 앞에 예비된 노년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뒤이어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달려왔던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다.  두번째 상류층인

지인아들의 장례식에서 그는 자신을 포장하는 상위 1%의 지위와 자신의  겉치레의 위선과

덧없음을 깨닫게 된다.  세번째 친구의 딸인 라모나의 죽음을 통해 젭은 이제 자신의 죽음인

네번째 죽음의 노크에 대답을 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 물(로마)의 이미지

 

  물은 젭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통합과 순환의 의미를 지니며 타인과 자신의 죽음을 포함한

인류의 역사를 상징한다.  또한 젭의 집 앞에 있는 콜로세움으로 대표되는 로마의 이미지는 인류가

살아왔던 삶의 축적된 집합체를 상징한다.  로마는 중세 귀족문화의 출발지이며 가장 많은 인류

문명적 유산을 보유한 곳으로 인류문명의 명품적 아우라를 간직한 곳이다.  젊은 시절 로마에 편입한

 나폴리 청년 젭은 상류층 중에서도 가장 최고가 되길 꿈꾸었다. 

 

  젭은 여타의 보통사람들처럼 자신이 상류1%에 속하고 부와 명성을 획득하게 되면 자신의 삶

또한 명품적 지위를 획득할거라 생각했고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 자신이 획득한 부와

명성은 낡고 부식되어가는 콜로세움처럼 그 자신의 삶에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못했다.  

사람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로마는 그  축적된 방법론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축적된 방법론 중 명품(상류층이나 부)의 아우라를 획득함으로써 자신에게서 아우라가

발산되리라고 믿는다. 

 

 

=>삶은 사기이자 거짓말.

 

  학창시절 대부분의 문제집의 뒷 면에는 정답이 있었다.  풀다가 막히면 뒷 면의 해답을 찾기도

하고 벼락치기때는 답을 먼저 표시하고 문제와 답을 외우기도 했다.  그런데 저마다에게 주어진

삶에는 정답이 없다.  앞서 살아간 모든 인류의 삶을 모두 대입해본다해도 그 답을 찾을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답을 찾기 위해 종교를 택하기도 하고 예술을 통해 답을 구하기도 한다. 

 정말 인류사를 통틀어 답을 구하는 희귀한 경우 사람이라면 신성을 예술품은 아우라를 얻는다.

하지만 대부분 보통 사람은 다른 사람이 풀어놓은 정답을 자신의 삶의 답이라고 단정지으며

고민없이 살아간다. 

<그레이트 뷰티>는 이러한 삶을 거짓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삶이라는 질문에 대하는 사람의

분류를 다음과 같이 나눈다.(이 영화에서는 각 부류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알몸을 통해 그들의

위선과 진실을 드러낸다)

 

 

  1) 삶이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노수녀님, 영화 말미의 젭, 라모나(알몸 등장)

  2) 답을 아는 척하는 사람: 교황 후보 추기경(답을 아는 척하다가 답에 대해 묻는 듯 싶으면

                                          은근슬쩍  자신이 잘아는 분야로 말을 돌리는, 이분은 요리사가

                                          딱인데요.)

                                         상류1%의 젭의 지인들(스테파니 알몸 등장)

       - 젭의 환상 속 마술로 사라지는 기린은 이솝우화처럼 위선에 가린 삶의 진실을 상징하는

          영화속 장치이다. (마술로 기린이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게 가릴 수는 있지만 기린이

          내는 소리까지 감출 수는 없다)

  3) 답을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 어차피 인간의 삶의 결과는 죽음이므로 바로 죽음으로 결론을 보는

                                                젭의 지인의  아들(빨강 물감을 뒤집어 쓴 지인의 아들의 알몸)

  4) 답을 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따라하는 사람: 로마노의 여자친구 혹은 보통사람들(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난 소설을 쓸거야,

                                                난 배우가 될거야 주관이 없이 정답으로 보이는 것은

                                                모두 따라하려한다.-로마노의 여자친구의 알몸)

  5) 아무 생각없이 그냥 사는 사람: 자칭 행위예술가(음모까지 염색한 자칭 행위예술가의 알몸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의 최소한조차

                                                  알지 못한다.)

 

 

  => 삶은 저마다에게 주어진 질문이다.

 

    극중 노수녀님은 젭의 집에 날아든 홍학떼를 보며 "난 이 새들의 각각의 세례명을 모두 알고

있지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곧 이어 멈춰있는 새떼를 향해 입으로 바람을 분다.  그 바람에 새떼는

저 멀리 다시 날아간다.  좀처럼 입을 열지않던 수녀님은 왜 젭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이제 쉬었으니 현재의 너의 자리를 찾아 너의 삶을 살렴~이런 생각도 들었다) 

일생을 가난을 서약하여 청빈한 삶을 살며 식물의 뿌리만으로 구도의 삶을 산 노수녀님은 오랜 생을

통해 많은 앎(지식)을 득했지만 자신의 삶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구하지 못했음을 젭에게

말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구도의 삶을 104년이나 지속하고서도 치열하게 무릎으로 속죄의

계단을 오르는 노수녀님의 모습은 죽음이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노수녀님은 젭에게 묻는다.  "왜 소설을 쓰지 않나요?"  수녀님의 질문은 바꿔말하면 "당신은

누구세요?"와 같다.  이미 젭은 환상 속에서 프란체스카라는 여자아이에게서 "당신은 누구세요?"

라는 질문을 받고 당혹스러워하며 질문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젭은 수녀님의 질문을 받고

이제 더 이상은 답을 피할 수 없을을 깨닫는다.  "당신은 누구세요?"라는 질문은 곧 '나'는

누구인가를 의미하며 이는 또 죽음이 하는 질문에 '나의 삶'으로 답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 영화에서 진정한 그레이트 뷰티는 삶에서 획득하는 무엇이 아닌 자기자신으로서의 각성이며

각성을 통한 삶을 의미한다.   삶의 각성은 종교와 방법론이나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자신의

삶의 성찰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노수녀를 통해 깨닫게 된 젭은 이제 네 번째 노크(죽음)이

찾아오기 전 새로 시작할 수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명품의 아우라는 명품을 획득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 자신이 자신의 삶을 통해 자신이라는 명품의 아우라를 발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레이트 뷰티>를 통해 알게 되었다.  

 

ps: 사실 이 영화의 포스터에 나오는 <화양연화>는 인생을 살며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었다.  어쩌면 <화양연화>라는 카피는 이 영화와 맞지 않다.  젭은 과거를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고 나도 그 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영화속 첫사랑의

남편이 부인이 죽고 얼마 되지도 않아 새로운 여자친구와 새 인생을 사는 모습을 보고 젭이

느낀 바가 많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