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무>를 봤다. <해무>를 보며 봉준호감독의 <설국열차>가 떠올랐다. 두 영화 모두 봉준호감독이
제작에 참여했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한정된 시스템 속에서 인간의 저항을 다룬 <설국열차>의 세계가
영화 <해무>에서는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에 집중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에 다가갔다는 인상을
받았다. <설국열차>가 대재앙으로 열차 안에 고립된 윌포드 지배하에서의 투쟁을 그렸다면 <해무>는
바다라는 공간 안에서 전진호라는 배에 어쩔 수 없이 고립된 사람들의 선택을 다룬다.
<설국열차>에서 생존을 위해 식육을 정당화한 크리스는 윌포드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력봉기를 일으킨다.
무력봉기의 결과 현존하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기차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아이러니에 직면하게 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식육으로 부지한 목숨을 걸고 혁명을 일으켰지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행태를 답습해야 한다는 선택 앞에 선 인간군상을 그린 영화가 <설국열차>다.
<설국열차>가 인간다운 삶을 목적으로 일어났던 유사 이래의 모든 혁명들이 원래의 가치를 잃고
왜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결국은 과거의 삶을 반복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면 <해무>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경우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해무>는 인간의 선택이 의도의 선의(善意)와 관계없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때 인간이라는 존재가 밑바닥을
모르는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존재론적 비극을 다룬다. <설국열차>에서 크리스가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켜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송강호는 그 기차라는 시스템(제도)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선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화 <해무>에서 전진호를 살리기 위해 치러졌던 모든 행위들은 전진호의 침몰과 더불어 무의미해졌다.
또한 <해무>에서 전진호 강선장의 선택은 위기 상황에서 리더가 잘못된 판단을 했을 때 시스템 전체가 어떤 위험에
놓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강선장의 선택은 매번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불가피성을 보여줬지만, 그 자신이
부여하는 정당성 앞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짐승보다 더한 추악함(사실 짐승은 추악하지 않다. 생존을 위한 과정일 뿐,
그 과정에 불필요한 잔학성은 없다. 필요이상 자의적으로 잔인해지는 것이 인간이다.)을 드러냈다.
어쩌면 불가피한 상황에서 수단을 정당화하는 인간의 행위는 그 자체로 인간의 본성적 사악함을 그러내는 장치이다.
성선설과 성악설을 떠나 인간은 표면적으로는 이타심을 지닌 사회적 존재이지만, 그 저층부에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수단시할 수 있는 본능이 무시무시하게 들끓고 있는 것이다. <해무>는 자신의 본능적 욕망이 제재받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은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영화속 전진호의 상황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닮아있다. 자본주의라는 바다를 항해해야하는 대한민국은 노후한
전진호처럼 대내외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의 전진호처럼 대한민국의 여기저기에서
사회위험요소들이 불거지고 있다. 수백명의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는데도 구조를 위한 리더쉽은 없었고, 생떼같은
산목숨들이 죽었는데 지금까지도 책임있는 조사와 유가족들의 염원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전진호와 그 배의
선원들을 구하겠다는 강선장의 의도로 인해 결국은 선원들이 죽고 죽이고 또 배까지 침몰하는 영화속 상황은
대한민국의 현재를 상징하는 장치이다.
8월 말 개봉을 앞둔 영화 <더 퍼지>의 포스터이다. 일년에 단 하루 12시간 동안 인간의 모든 행위는 처벌받지 않는
퍼지데이 동안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는 일년에 단 하루 12시간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개국이래 지금까지 가진자들에게 무법천지를 정부가 공인해주는 에브리데이 퍼지데이이다.
2002년의 월드컵의 함성 속에 효순.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이 묻히고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 앞에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꽃다운 목숨들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씨랜드의 유족들이 이 땅을 등졌던게 이해가 되는
현실이다. 국민을 위한 시스템이 부재한 현실에서 국민이 자신의 안위를 스스로 걱정하고 앞날을 개척해야하며
또 국가를 위해 이타심까지 발현하는게 당연시되는 상황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면서 진정으로 그 사람들을 위로해야하는 사람들의 복지부동이
마음아프다. 가라앉는 전진호의 모습에서 리더쉽이 부재한 대한민국의 침몰이 연상되어 가슴이 막막하다.
전진호라는 배의 실존을 위해 치러졌던 모든 희생끝에 배가 침몰하지 않았다면 살아남은 자의 삶은 어떠한
모습이었을지를 상상해보았다. 전진호라는 실존은 사라졌지만 그 안에서 이뤄졌던 이타적인 행동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 <해무>는 인간의 가장 큰 적(敵)도 인간이지만 유일한 희망도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을 말할 수 있다는 점에 희망을 가져본다.
'영화를 봤어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긴 어게인>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 (0) | 2014.09.21 |
---|---|
<루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다. (0) | 2014.09.03 |
<가디언스 오브 더 갤럭시> 루저들이 모여 만든 부대찌개의 맛!!! (0) | 2014.08.04 |
<그레이트 뷰티> 죽음이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다. (0) | 2014.06.18 |
<하이힐>대한민국에서 나로서 살기를 희망한다는 건?? (0) | 2014.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