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어요

<내사랑>사람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묭롶 2017. 7. 16. 00:39

  영화 <내사랑>을 보고 내가 좋아하는 밴드 로맨틱펀치의 노래 <마멀레이드> 가사중

"내가 있어야만 해요"라는 부분이 떠올랐다.  영화속 주인공 모드는 "You need me!"라고 말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 주는 울림이 너무 커서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동안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실은 조금이라도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 대신 콧물이 다량방출되는 탓에

프다하면 기피해왔는데 그림과 음악에 관련된 영화는 평소 좋아한터라 감수해야만 했다.

  여기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대상은 보통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이성으로서의 대상이

아니다.  '나'를 나일 수 있게 해주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도와주고 곁에 있어주는 누군가를

칭한다.  주인공 모드는 말한다. "나의 모든 생이 이 액자 안에 담겨있다고" ...........

  모드는 잿빛세상을 자신만의 파인더(시선)로 바라본다.  실제가 지닌 사실 그대로가 아닌 모드의

시선이 포착된 순간의 인상은 그 순간의 이야기를 간직한 감수성의 결과물로 재탄생된다.  예를 들어

배달되지 않은 생선에 항의하기 위해 에버렛을 찾아온 산드라가 우연히 발견한 모드의 닭그림이

그러하다.  저 닭그림을 그린 사람이 당신이 맞냐는 산드라의 질문에 모드는 "네. 제가 그렸죠. 

참 통통해서 보기 좋았던 순간을 간직하고 싶었"다고 답한다.  단순히 저녁 스튜거리가 되버린 닭이

그림으로 그려짐으로써 뱃속에서 든든한 포만감으로 잠시동안의 행복으로 사라질 운명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주는 대상으로 격상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삶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인상을 잿빛으로 굳힌 에버렛처럼 바늘하나 들어갈 틈 없이

단단해보이지만, 그 잿빛 공간에 덧입혀진 물감들에 의해 실제가 가진 본질이 주는 인상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생선장수의 가정부일지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게 무언지 알고 그걸 응원하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삶은 의미있는거라고 모드 루이스는 말한다.  내가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은 에버렛이 자신이 커온

고아원에서 다른 원아들과 점심을 먹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때의 상처받은 표정이 담긴 장면이었다.

  한번도 사랑받지 못했고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으며, 하고싶은걸 할 기회를 얻지도 하고 싶은게 뭔지

생각해 본적도 없이 세상이 날리는 무작위 난타에 주먹들어 간신히 얼굴만 가드하기도 힘들었음이

담긴 그 표정이 그의 전생을 다 담고 있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가정부로 일하는 모드에게 에버렛은 말한다.  "이 집의 서열을 말해주지.  나, 개, 닭, 그리고

그 다음이 당신이야.",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모드는 에버렛에게 "개를 더 키우라고" 말한다.

모드의 말에 에버렛은 "개는 필요없어 내가 필요한 건 당신"이라고 답한다.

  변하지 않는게 사람이라고 말한다.  보통의 기준에서 모드는 장애가 있는 고아로 직업과 집이 있는

에버렛에 비해 많이 부족하고, 또 에버렛도 처음엔 자신이 그녀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모드와 함께 하는 시간들 속에서 자연스레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과 같은 곳을 바라본 그는 자신이

그녀보다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모드를 떠나보낸 후 일상으로 돌아온 에버렛의 표정에선 내가

마음아파했던 처음의 상처받은 표정(삶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그저 주어진 삶을 견디기도 힘들었던)

대신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먼곳을 바라본 사람의 표정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이제 자신의 삶에 필요한게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드를 통해 알게된 에버렛이기에 실화 속 그의 죽음은 가슴 아팠지만

그의 삶이 걱정되진 않았다. 

  어쩌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울림은 행복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되묻게 된다는데 있다.

사회가 권장하는 보편의 행복,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 들어가고 알뜰살뜰 저축해서 집 사고 아이 낳고

사는게 행복의 공식처럼 통용화된 우리 사회에서 행복은 만들어가는게 아니라 그 순간순간 느끼는 거라는 걸

이 영화는 말해준다.  다른 사람 눈에 행복해보이는 기준틀 속에 있다해도 그 안에서 정작 본인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다. 

  자고 일어난 에버렛이 식탁 위에 놓인 물한컵을 조금은 신기하고 어색해 하면서도 달갑게 마실때의

표정, 뜨거운 스튜를 앞에 놓고 조금은 얼빠진 표정으로 그걸 들이킬 때의 표정, 그리고 너무나 더러운 유리창

너머로 모드를 볼때의 불안한 표정.............은 에버렛에게 필요한게 무엇이었는지를 말해주는 듯 하다.

  영화 도입부의 유리창과 영화의 중반부의 유리창, 그리고 거의 마지막의 유리창을 지켜보면 에버렛에게

필요했던 You가 무었이었는지 알게된다.  도입부의 더러운 유리창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얼룩지고 금방이라도

내몸에도 오물이 묻을듣한 혐오가 가득하다.   중반부에 모드가 유리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에버렛의

눈에 비친 세상에는 자연스럽게 꽃이 존재한다.  마지막 모드를 보내고 난 후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보내는

에버렛의 시선은 유리창 보다 더 큰 무언가를 담고 있다.  흡사 관객으로 보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이.

나에게 무언의 말을 건내듯이. 넌 지금 행복하냐고 묻고 있듯이........


ps: 주인공들의 열연이 빛나는 영화다.  샐리 호킨스의 절뚝이는 다리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사회성 부족을 보여주는 표정들, 그리고 나이 들어도 멋짐이 죽지 않는 에단 호크에 거듭 감탄했다.

둘이 조촐한 결혼식을 마치고 춤을 출때의 감동은 정말 그 순간으로 시계가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림을 그릴때의 모드의 표정은 보는 사람마저 행복하게 했다. 


ps2: 비포선라이즈 의 후유증으로 기차만 타면 옆자리 승객에 대한 기대감을 최근까지도 버리지

못했지만, 내 현실에서 비포선라이즈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어쩌면 이 영화처럼 내 삶을 바라보는

나만의 파인더에 꽃을 그려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