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장 그르니에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장 그르니에와 알베르 카뮈의28년간의 서신 모음집.

묭롶 2017. 1. 9. 23:00


   사실 나의 독서는 우연의 결과물들이다.  내가 일상을 떠돌다 만나는 책들이

나의 독서의 기록이듯이,  나의 독서는 정해진 길이 없다.  정확한 좌표가 없는 보물섬의

지도처럼 그저 호감있는 작가의 작품을 읽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섬』을 

읽게 되었다.  평소 읽는 장르도 아닌 에세이를 예기치  않게 읽고 난 후

내 마음 속에 일렁이는 파고(波高)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섬』을 읽고 일상을 벗어난 어느 하루 멀리 떠난 낯선 해안에서 마주친 파도처럼

내 일상에 부딪쳐온 잔잔한 파문을 잊을 수가 없었다.   『섬』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장 그르니에의 제자 알베르 카뮈가 서문에서 밝힌 바 있는 인간 삶의 근원적

고통에 대한 공감대가 스스로 괜찮다며 덮어버렸던 나의 고통의 실체를

깨닫게 했다.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은  내게 큰 울림과 감동을 주었던『섬』의 저자인 장 그르니에와  그 책에 서문을 쓴

그의 제자 알베르 카뮈가 28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 서신을 모은 책자이다.  장 그르니에는 1930년에 폐병에

걸려 휴학중이던 알베르 카뮈를 만나기 위해 그가 살았던 가난한 동네 벨쿠르를 방문했다.  그 첫 방문 이후

카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1960년까지 그들은 서신을 주고 받았다. 

「~과연 이 책은 우리가 우리의 왕국으로 여기고 있던

감각적인 현실은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그와 병행하여

우리들의 젊은 불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설명해 주는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었다.」 『섬』서문 6~7p

「~이 작가는, 어떤 고독에 대해서 말해야 할 경우

그 고독을 무대에 올려놓고 눈앞에 보여주는 것을 꺼립니다. 

그분은 큰 인기를 끌수 있는 연극이나 소설이 아니라

사람을 설득하는 장르인 에세이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수가 많고

가장 진심어린 언어들 중의 하나인,

고독이라는 바로 그 언어를 말했습니다.」P429-카뮈


인간은 과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운명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필연이라고 말하는

실타래 속에 인간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알베르 카뮈와 그의 스승 장 그르니에를 비춰봤을때 말이다.

  사람은 절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그대로 하고 살수도 없지만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태어날 수도 없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삶에 속할 때 인간은 그걸 운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카뮈는 자신이 지닌 능력을

인식할 즈음 그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폐병과  동시에 그의 평생의 스승이자 친구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게 되었다.

 

「<<이방인>>에 대하여 선생님이 써주신 글,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글을 읽는 것이 제게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부디 발라르에게 부탁하여 제게 잡지 한 부를 보내도록 해주십시오.

여기서는 아무것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p123-카뮈

「어제 식품 소포를 하나 보냈습니다.

~그리고 갈색 가루가 든 통이 하나 있을 것입니다.

그건 버섯 가루입니다.

그건 제가 직접 따서 준비한 것입니다.

~그 가루는 소스를 만드는데 사용하면 최고입니다.

~그 모든 것이 양호한 상태로 배달되었으면 합니다.」p147-카뮈

  물론 이 책을 통해 알베르 카뮈와 그의 스승 장그르니에와의 문학을 넘어선 개인적인 친분의 관계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각자의 문학적 영역에서 서로 서평을 써주고 서로의 영역을 옹호하는 범위를 넘어서서 서로의 집필에 필요한 서적을

추천하고 서로의 독서영역을 공유하는 관계, 더 나아가 주방의 조미료인 버섯가루까지 공유하는 나이 열다섯살 차이나는

이 사제관계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나이차이 열 다섯살은 참 애매한 나이차다. 스승으로서도 그렇고 보호자로도

친구로서도 그렇다. 그런데도 그들은 스스럼없이 서로 친구라고 말한다.   열 다섯살이라는 애매한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부탁하는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심지어 돈 문제까지도 편지로 의논할 상황이라면

그것참....가족보다 나은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군소리를 늘어놓지 않고도 개인이 가진 최상의 것이 다른 사람과 서로 합쳐지고,

또 그러면서 자기주장을 포기하지 않고도 그 개인 안에서 다른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경지에 당신이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매우 기뻐요.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저항할 상대가 되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p265-그르니에

 

 

  사람은 누구나 거울을 본다.  그건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이다.  내 잇몸에 고추가루가 끼었는지 다른 사람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보기 위해 거울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거울이 언제나 제대로의 모습을 비추지는 않는다.

주관성이 개입한 거울을 보는 경우 나의 모습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가의 운명을 타고난

이에게 그 자신을(카뮈)비출 올바른 거울(장 그르니에)-' 개인이 가진 최상의 것이 ~저항할 상대'-을 만난  건

행운일지도 모른다.

「하기야 선생님께서 이미 다 알고 계셔서

제가 구태여 말씀드릴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시만 아시다시피 친구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설명하는 것이겠지요.」p307-카뮈

  그러나  거울(장 그르니에)에 자신을 비춰봄으로써 그 자신이 문학을 통해 길어내고자 했던 질문의 답을 스스로

구하게 된다면 어떠할까?  물론 자신의 삶의 정답은 그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지만 거울(장 그르니에)을 통해 그 스스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확인하게 되었다면 이 경우엔 그러한 거울을 택한 그 스스로를 칭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알베르 카뮈가 『이방인』을 썼을때 그의 의식 속에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이 느끼는 부조리에 대한

모호한 의식이 존재했다.  그는 그 모호함을 포착하여 작품으로 구체화시켰고 이를 또 그의 『시지프 신화』에 담아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어느 하나의 모호한 포즈에 불과했을뿐, 이를 포착하고 구체화시키고자 하는 불안한 시점에 카뮈는

그의 스승에게 조언을 구함으로써 그 스스로 찾고자 했던 답을 스승과의 서신 교환을 통해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작품에 대한 의견교환을 직접적 대면(말)이 아닌 서신(글)을 통해 함으로써 자신의 사유의 정당성을 구체적으로

도식화시키고 그 오류를 바로잡아 진전시켜 나갔다.   

  『이런 것이 바로 제가 며칠 전부터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는 생각입니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저는 선생님게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어떤 대답을 주실지 상상해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제 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p186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건 선생님의 마음이 아니고 '내 마음'이다.   사실 장 그르니에와 알베르 카뮈가 사상면에서

같은 길을 걸었다고 볼 수는 없다.  장그르니에는 항상 어떤 방향을 제시했을뿐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지시하고 그걸

카뮈가 따랐다고 볼 수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전혀 동 떨어진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분명 당신의글을읽은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어쨌든 나는 당신 자신의 생각을 충실하게 따르겠다는

그 확고한 태도와 그런 태도를 실천에 옮기며 살겠다는

그런 의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때로 그 생각 자체 속에,

그 생각의 가장 깊은 근저에 당신의 삶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곤 합니다. 

~어떤 이상을 위하여 사는 것은 부조리한 것이 

아닙니다.  그 까닭은 바로 세계가 부조리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 세계를 위하여, 그 세계

때문에 사는 것이 부조리하기 때문입니다. 」p143~144-그르니에


->
「~부조리의 신화는 존재하지만 부조리의 사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어디로 가는가 하고 선생님은 물으시겠지요? 

제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바로 그것입니다.」p150-카뮈

 

                                           ※부조리의 사상에 대한 스승 장그르니에의 질문에 대한 알베르 카뮈 스스로의

답이 부조리에서 진전된 주제인 '반항'-『반항하는 인간』, 『페스트』에 담겨있다.

 

「<<페스트>>에 대하여 편지에서해주신 말씀 또한 감사합니다.

~인간은 결백하지 않고 '또한' 유죄인 것도 아닙니다

이 모순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그래서 리유는 "나는 모른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무지의 고백에 이르기 위하여 아주 먼 곳을 돌아온 겁니다.」p219-카뮈

->「저는 점점 더 우리가 그 어떤 거대한 집단 기만에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그 기만을 폭로하기 위해서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가장 의연하게 말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P295-카뮈

 

※ '반항'을 주제로 한  『페스트』와 『반항하는 인간』에 대한 스승과의

주제토론에 대한 카뮈식 대답이 『전락』에 담겨있다.

 

  이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두 사람의 개인적인 친분이 아니다.  이 서신들을 통해 우리는 이들이 상대방에게 자신을

비춰봄으로써 서로가  상승하는 관계가 이둘 사이에 형성됐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장 그르니에는 도가적인 성향의

사람으로 자신의 공백안에 이야기를 담음으로써 큰 울림을 두는 에세이를 썼다면 알베르 카뮈는 자신의 삶을 통한 성찰을 통해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인간의 진솔한 모습을  담아낸 작가였다.  이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았지만 서로의 작품을 공유함으로써 각자 갖지 못했던 공백을 상대편의 작품에서 길어옴으로써 자신의 작품의 상승을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큰 그림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알베르 카뮈는 그 자신이  그 스스로

가지고 있던 본원적 질문의 답을 문학을 통해 이끌어낼 생각을 그의 스승을 통해서 결심을 굳혔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질문을 스승을 통해 되물음으로써 어쩌면 찾을 수 없는 좌표를 조금씩 찾아 나갔을 수도

있다.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반항->인간으로 나아가는 사고의 진전과정의 모두에 그의 스승인 장그르니에의 모습이

비추는 것을 보면 이 책의 총평을 맡은 파트릭 코르노의 「"장 그르니에가 없으면 알베르 카뮈도 없었을 것이다.

" 쥘 루아가 한 이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것이 못된다.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카뮈 자신은

그르니에게 입은 은혜를 공공연하게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편 그르니에 쪽에서도 자신이 인도자로서 담당했던

역할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제자였던 카뮈에게 자신 또한 크게 빚지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카뮈의 말에 따르면

장 그르니에와 그의 관계는 예속도 복종도 아닌 대화요 교환이요 상호대조였으며, 영적인 의미에서의 '모방'이었다. 

해설집의 문맥은 알베르 카뮈와 장 그르니에의 관계를 단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역사상 이렇게 아름다운 관계가 있었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다.  상황이

이러하니 1960년 1월 알베르 카뮈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때 열 다섯살 많았던 그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는

마음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장 그르니에는 카뮈와의 서신에 공책에 마음의 빚을 갚겠다는 글을

자주 적었었다.  그 마음의 빚을 그는 카뮈 사후 칠년이 지나 『카뮈를 추억하며』에 담았다.  자신보다 열다섯살이나

어린 제자를 불의의 사고로 보내고 그와 보냈던 평생을 칠년의 숙고에 담아 스승이 기록을 했으니 이들의 관계는

마지막까지도 훈훈하다. 

ps:  개인적으로 알베르 카뮈의 공산당 탈당에 따른 사건의 전말이 궁금했는데, 다음과 같았다.  역시 카뮈 다웠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제가 어떻게 하여 공산당을 떠나게 되었는지

말씀드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당에서 벽보를 붙이고 신문을 판매하는 일 정도는 대수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에서는 저에게 아랍인 당원들을 모집하여

그들을 민족주의 조직-나중에 P.A.A. 가 된

'북아프리카의 별'었습니다.-에 가입시키는 임무를 맡기더군요. 

저는 그 임무를 수행했고, 그 당원들은 저의 동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36년의 전환기가 왔지요.  공산당이 인정하고 격려해 마지않는

정책의 이름으로 바로 그 당원들은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체포당했고,

그들의 조직은 해체된 것입니다. 

간신히 추적을 피한 그중 몇몇은 제게 찾아와서

이런 비열한 짓을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냐고 따지더군요. 

~아직도 그들이 제게 와서 하는 말을 들으며 치를 떨었던

 그때의 전율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후 즉시 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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