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

묭롶 2010. 4. 12. 11:30

 

    책의 제목을 읽고 어린시절 길렀던 '백구'가 떠올랐다.  하얀털로 덮인 진돗개 혼혈(흔히 잡종 똥개)인 '백구'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의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목에 묶인 줄이 팽팽해지도록 내게 오려고 버둥대며 반가움을 표시했었다.  더운김이 나는 분홍색 혓바닥으로 나를 핥는 것도 좋아했는데, 평소 된장국에 말은 밥(멸치가 많이 든)을 좋아하던 식성 탓에 축축한 침에서는 언제나 된장 냄새가 감돌았다.

  어느날 학교를 다녀와서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역시 묶여있어야 할 백구가 안보이는 것이었다.  울고불고 엄마한테 어디갔냐고 했더니, 대답을 안 하셨다.  얼마지나 할머니가 백구를 된장 발라서 큰아빠랑 얌냠냠 하셨다는.....ㅜ.ㅡ; 얼마나 그 두분을 원망했던지.... 난 그 이후로 '개'는 키우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마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넘치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인간관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것 같다. 

 

~이침이 되면 동물들은 당신을 찾아와서 애정을 표시한다. 

동물들의 하루 일과는 이러한 사랑과 신뢰의 실천으로 시작된다.  P57

 

물론 날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사랑'이라는 감정이 온전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그렇게 맹목적인 감정을 보여준 존재를 또 한 번 잃는다면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없을 것이다. 

장 그르니에는 타이오를 안락사시키기로 한 자신의 결정이 과연 타이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인지, 결국 고통받는 '개'를 봐야만 하는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한 것인지에 혼란을 느낀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은 타인의 고통보다는 자신의 고통을 우선시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는 사랑했던 '개'의 죽음을 자신이 죽음처럼 여기는 글쓰기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계기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 혹은 우리 자신을 가엾게 여길 때, 우리는 삶이 마련해 준 기쁜들을 잊고 있다.  고통이란 기쁨의 결핍에서 비롯될 뿐인데, 삶의 기쁨을 모른다면 어떻게 고통을 알 수 있겠는가?  동물들은 삶을 행복한 것으로 여긴다. 

나중에 겪은 고통에 연연해하며 일생 동안 누렸던 기쁨을 부정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P67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을 살아남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꽃들, 가축들, 우리의 부모들을 일고도 살아남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훗날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추억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산다>라고 말한다.  P84

 

("너, 나 사랑해?"  라는 물음을 나는 해본 적이 없다.

난 사실 자신이 없다.  정말 백퍼센트 사랑만 할 자신이 없어서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그런걸 묻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물론 상대방이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백구'가 돌아와서 나와 눈을 맞춘다면 난 나를 향한 '백구'의 사랑을 100% 확신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개만큼 느끼지 못한다.  얽히고 설킨 감정 때문에 우리는 개가 느끼는 것과 같은 절대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P20

난 그래서 TV드라마에서 하는 사랑놀음에 언제나 썩소 내지는 피식... 비웃음을 던지게

된다.  '니들이 사랑을 알아?', 그러고보면 우리 인간은 사랑을 '개'에게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주는 것도, 사랑을 받는 것도......)

 

  장 그르니에.... 이 노친네의 책을 읽을수록 이미 고인이 되신 이분이 너무 좋아진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살처럼 어디 한 곳에 얽메임없이 자유로운 구름처럼 떠도는 이분의 정신이 나에게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이제..사랑하는 타이오와 함께 그들만의 천국에 계시겠지.....'오! 타이오야!  저기 봐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정 아무개가 우리 이야기를 읽고 있구나' 이렇게 말하며 웃음지을지도 모르겠다. 

PS: 이 책을 읽으니, 블로그를 하기 전에 읽었던 김훈작가의 『개』를 다시 한 번 읽고

싶단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