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펀치에 빠지다>

로맨틱 펀치 두번째 만남: 16.09.30 충장축제뮤직페스타

묭롶 2016. 10. 17. 21:00

 

  제가 어렸을 때, 해적의 보물섬을 표시한 지도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죠.   두 마리 푸른 용이 입김을 내뿜는

바위에 해골이 붉은 입맞춤을 하는 곳이라던지 하는 내용이 적힌 지도였지요.  요즘처럼 네비로

주소나 전화번호를 검색해서 안내대로 찾아가는 방식이 아닌 주인공이 온갖 모험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이르는

보물섬처럼 어릴 적 보물섬 이야기는 모호함 속에 상상력과 모험을 내포하여 제게 상상의 날개를 달아 주었죠.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과거의 보물섬 지도 식의 안내를 원하지 않아요.  (#)해시태그로 곧바로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길 원하죠.  보물을 얻기까지의 모험이나 시행착오는 바보 짓이에요.  그래서 더 이상 사람들은 글을

쓰지도 읽지도 않고 타인이 #(해시태그)를 누르기 전까지 혼자서 반짝이는 저마다의 별이 된거죠.  

 

  저는 바보 같지만 글로 써요.  내 마음의 지도는 #으로 찾을 수 없는 좌표거든요.  저도 알 수 없는 이 좌표를

그 언저리나마 더듬어보기 위해 글로 그 형태를 담아 두려 해요.  로맨틱펀치에 대한 마음도 마찬가지에요.

마흔 한 해 삶에 뜬금 없이 찾아 온 이 낯선 감정을 글이라는 형태를 빌어 담아 두어야 나중에 제가 나이를

먹어도 그나마 짐작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글로 써요.  그리고 또 써 볼려구요.    --> 

 

  9월 4일 로펀(로맨틱펀치 줄여서) 입덕 이후 저의 일상에는 큰 변화가 생겼어요. 

 

기존    :   가족 빼고 1순위 애니팡, 2순위 클래식 1FM , 3순위  한라산, 잎새주

입덕 후:  1순위 로맨틱펀치, 2순위 로펀, 3순위 한라산, 잎새주.

 

  입덕 후 멜론에서 로맨틱펀치 음원을 전체 구입하고 현재 판매중인 CD음반(굿모닝블루, 파이트클럽, 글램슬램)을

구입한 후 도착 즉시 제 차에 있던 클래식 CD들이 집에 있는 책꽂이에 반납되었고, 제 출퇴근길 동반자는

클래식1FM에서 로펀 음악으로 변경되었죠.  퇴근 후 집안일을 마치고 짬이 나면 이어폰을 꼽고 카이가

전하는 라디오 공연실황을 들으며 호수공원을 걷곤 했는데, 입덕 이후론 로펀 유튜브 음악을 듣게 되었어요.

 

  로턴 음악을 들으며 걷노라면 왠지 저도 공연때마다 붕붕 날아다니는 배보컬처럼 마음만 둥둥 떠서(몸은

무거워서 절대 뜨지 못하겠지만) 괜히 보는 사람들 무섭게 혼자 히죽히죽 웃고 다녔어요.  짬만 나면

로펀 검색하느라 사내 순위 전국 랭킹을 지켰던 애니팡도 멀리하게 되었죠.

 

                                          <제 폰이 워낙 구려서 사진을 못 찍어서 인스타그램에서 사용 허락받고

                                리포스트했어요.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9월 10일 김해 단독 공연을 사정 상 못가게 되어 속상해하던 중 9월 30일 충장축제에 로펀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30일이 마감날인데도 미친듯이 마감을 해놓고 집에다 차를 주차한 후 충장축제에 갔는데

이날도 역시 비가 왔어요.  로펀 공연은 공연 마지막 순서인 크러쉬 바로 앞이었는데 학생들이 앞자리를

차지해서 뒷줄에서 비옷 입고 의자에 앉아 빗물에 손가락이 쪼골쪼골해질때쯤 로펀이 등장했죠. 

   방송용이어서인지 스탠딩도 못하게 하고 다른 공연팀들도 시간상 제약을 많이 받아서 앵콜도 마음대로

받지 못하고 들어가는 상황에서 로펀이 등장했어요. 

 

  진행하는 MC가 로펀을 소개하며 말했죠.  "로펀을 모를 수는 있지만, 로펀의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팬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말을 들으며 공감백배했어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로펀 공연을 스탠딩으로

즐기지 못한다는 건 큰 슬픔이었어요.   물론 로펀은 그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지만요.

 

  왠지 떡 벌어지게 차려놓은 술상에 술이 빠진 것처럼 참 가슴이 아팠지요.  공중파?  아니 지방파 방송을 위해

착석을 요구하는 분위기 속에 우리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튀어오르지 못하고 아가미만 뻐끔거렸어요.

 

  공연이 끝나자마자 구입한 CD에 사인을 받기 위해 난생 처음 애를 썼어요.  일단 로펀 공연이 끝나자마자

빠져나가는 관객들의 뒤를 쫓았죠.  이미 꼴은 비 맞아 거지 꼴이었지만 그래도 태어나 처음으로 싸인을 받아보겠다고

애들 뒤를 졸졸 쫓아갔어요.   ㅜ.ㅡ  ㅎㅎㅎㅎ  주차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싸인 받았는데, 이름을

잘못 써주셔서 다음 번 공연 때 CD 새로 사서  다시 싸인 받으려구요.  그래도 안해 본 짓 하고 그리 가슴 뿌듯해보긴

첨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