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진을 찍지 못한 저에게 사진을 공유해주신 인스타그램 s.h.emily님께 감사드립니다.
72회 신촌 퀸라이브홀에서 있었던 로맨틱파티에 다녀왔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제 생애를 통틀어 가장
멋지고 신나는 공연이었죠. 왜 로펀을 더 일찍 만나지 못했던가 후회가 됐을만큼요.....
그동안 몇 차례 로펀의 공연을 보면서 왜 내가 이 밴드에 첫 눈에 반했을까 내심 자문을 해왔었죠. 보컬이 멋있어서?
음악이 좋아서? 기타 솔로와 드럼 연주가 훌륭해서? 여러가지 의문점들이 있었는데, 72회 로맨틱파티를 보면서
이유를 깨닫게 되었지요. 로맨틱펀치의 강점은 바로 공감능력에 있어요.
불통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특히 나이를 더 먹어갈수록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많은 방어막을
쌓지요. 누가 가두지 않았지만 스스로 벽돌을 쌓아올림으로써 스스로 감금을 택하는 거에요. 스스로 택한 고립 속에서
우리는 외롭고 누군가가 그 속에 있는 우리를 찾아주기를 바라죠. 기존의 가수나 음악가의 음악은 쇼생크 탈출에서
팀 로빈스가 몰래 틀었던 <피가로의 결혼> 속 아리아처럼 개인의 닫힌 공간을 울리는 메아리일 뿐이에요.
잠시잠깐의 위안을 줄 뿐이죠.
로펀의 음악은 그러한 수동성 대신 넘어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키는 힘이 있어요. 단순한 공감의 능력을
넘어서 로펀의 음악 속에 관객을 주체적으로 동참시킴으로써 스스로 일어설 힘을 북돋워주는 거죠. 어쩌면, 로펀의
공연을 통해 그 힘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들을 다시 찾을 수 밖에 없을거에요. 이 세상에 훌륭한 뮤지션과 더 훌륭한
음악은 무수히 많지만 관객 스스로가 자신 또한 공연의 주체로 느껴질 정도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까지 그들이
가지진 못 할테니까요.
저는 음악을 전문적으로 듣는 사람이 아니라 72회 로맨틱파티에서 어떤 곡이 좋고 어떤 세션의 어느 연주가
좋았다고 평을 할 수는 없어요. 턱걸이 티켓팅으로 겨우 뒷자리를 차지해서 앞도 보이지 않고 난생 처음
경험하는 협소한 지하공간에서 사람들과 의도치 않은 부비부비를 경험했지만 공연 내내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어디 직원이라는 제 외피를 벗어던지고 온전히 '나'일 수 있었어요. 알면 알수록 저 혼자 애정하기에는 아까운
매력적인 밴드에요.
이제.. 총평은 여기까지이구요. 제 블로그 취지에 걸맞게 제 개인적 일지를 남겨요. 스킵 강추!!!!
72회 로파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왕복 KTX티켓팅이었어요. 정작 공연 티켓팅은 하지도 않았는데
무조건 될거라 생각하고 기차표를 끊었죠. 로파 티켓팅을 하는 운명의 날, 전 사내망의 보안과 저속의
무서움을 몸소 확인했답니다. 티켓팅 망작.. 꼴번 268번!!!!
문앞에 턱걸이하고도 좋다고 웃고 다녔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로펀 공연보러간다고 동네방네 소문 다 냈죠.
다들 나이 거꾸로 먹는다고 걱정하더군요. 공연 전날인 29일 토요일 특근하고 퇴근하자마자 공연 당일 오전까지
미친듯이 집안일하고 대신 애기 봐줄 신랑님 비위 맞춰 새우 삶아서 손수 까 먹이고 장어 사 먹이고 ... 참 눈물겹네요.
공연 당일 올 가을 들어 가장 춥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왠걸 날씨가 너무 푸르고 햇살이 따사로웠어요.
워낙 뒷 자리라 제 신발 중 가장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사랑하는 친구와 용산행 KTX에 올랐죠. 사실 어렸을때는
기차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내 옆 자리에 멋진 누군가가 앉길 바라는 기대감이 있었죠. 하지만 너무나
현실적이게도 이번엔 입냄새가 많이 나는 여자분이 제 옆자리셔서 친구와의 대화(독서)에 힘이 많이 들었어요.
제발 내려올때는 평범한 사람이길 바랬는데 이번엔 술 꽐라되신 아저씨가 쩍벌로 주무셔서 책 읽기 힘들었네요.
(11월 4일 서울 공연에서 돌아올때는 제가 먼저 쐬 한병 먹고 타서 자버릴려구요.)
용산역에 도착해서 촌년 티내며 어리버리하게 출구를 찾아서 어찌어찌 1호선 타고 시청역 하차 후 2호선
환승해서 이대역에서 내렸지요. 그 다음 다음길찾기로 퀸라이브홀을 찾았는데 그 앞에 있는 커다란 메가박스
건물이 라이브홀인줄 알고 갔다가 되돌아와선 라이브홀 간판을 보고 정녕 내 목적지가 맞는지 내 눈을
의심했죠. 지금까지 다녔던 공연장들의 비주얼과 차이가 많아서요 ㅜ.ㅡ 제가 언제 인디밴드 공연을
다녀봤어야죠. 신촌도 처음 가보는데요.
공연전 민생고를 해결하려고보니 혼자 가서 먹을만한 곳이 없네요. 공연 전날 밤, 신랑님께 잘보이려고
좋아하지도 않는 장어집에 가서 된장국물에 깡소주만 마셨더니 속은 썩썩한데 별 수 없이 빵쪼라리 뜯어먹고
버텼어요. 양치하고 나와선 티켓을 찾아왔는데 시간이 예매하게 남아서 인근을 배회하다 또 커피숍에 갔어요.
한참 책을 읽고 있는데 부부로 보이는 듯한 커플이 들어와서 제 옆에 앉았지요. 커피숍에서는 몰랐고
대기하면서 그분들이 제가 싸이에서 알게 된 통영 미라언니와 형부라는 걸 알게 되었죠. 같은 밴드를
좋아하는 나랑 이름 한글자 틀린 언니를 직접 뵙게 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언니가 로펀 슬로건도
하나 주시고 나눔해주신 파우치도 제 몫으로 하나 주셔서 득템했죠. (기다리다가 맥도날드 배달 오토바이가
와서 전화를 하니 안에서 누군가가 나와 비닐봉투 두 뭉치를 들고 들어가던데 빅맥이 로펀의 저녁이었을까요?)
좁은 통로로 입장하다보니 들어가는데 한참이 걸렸어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비좁고 역사가 느껴졌기에
정말 이곳을 통과하면 공연장이 있긴 한 건지 의심이 들었죠. 지하 2층 정도 내려가니 정말 깜짝 놀라게 작은
공연장에 사람이 바글바글했어요. 공연장 부비부비가 뭔지 몸소 확인한 순간이었죠. 조명속에 자욱하게 깔린
스모그가 사람들의 열기로 공중으로 부옇게 상승하고 있었고요. 통영언니가 그나마 앞자리로 밀어주셨지만
시야 확보가 힘들었어요. 신발에 십센치 부목이라도 박을걸 그랬나봐요.
게스트 리플렉스는 로펀 팬들은 정말 철옹성 같은 분들이라며 자신들에게도 그 애정의 2.6%라도 나눠주시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멘트를 했어요. 리플렉스는 한번도 안 들어본 밴드지만 음악이 신나고 피를 끓게 했지요.
리플렉스가 세 곡 정도 노래를 한 후 로펀이 등장했어요.
오늘 로펀 셋리스트를 확인해보니 무려 17곡이나 했네요. 게스트 이지형님 분량을 빼고요.
(설마.. 제가 잘못 체크한걸까요? 저도 믿기 힘들었어요.)
1. 글램슬램
2. Right Now
3. 몽유병
4. Down Down Down
5. Holic
6. Silent Night
7. I Belong to you
8. 파이트클럽
9. 굿모닝 블루
10. 눈치채 줄래요
11. 사랑에 빠진날
12. Still Alive
13. 이밤이 지나면
14. 키스
15. 야미볼
16. 토밤
17. 어매이징
이 정도면 체육계로치면 철인 삼종경기네요. 한시도 제자리에 안 있고 붕붕 날아다니면서 노래하고 스탠딩 마이크
돌리고 레이지 마이크로 중계하랴 수분이 부족한 콘치에게 수분 공급에 멘트까지 흥부전에 나오는 놀부 심술부리는
대목의 사설이 연상될 정도로 분주하지요. 있던 살도 공연 한번에 십킬로는 빠지겠어요. 로펀의 보컬자리는
극한직업에 올려도 될 정도인거죠.
노래 중간에 베트남 여행 다녀온 콘치를 퇴폐관광 다녀왔다고 놀리기에 게스트 이지형님 곯리기까지 배보컬은 귀여운 악동같았죠.
공연날 분만실에 들어간 부인에게 가야할 트리키를 위해 할로윈 분장을 접었다고 하더니 말과 행동으로 할로윈 이벤트는
다했지요. 제 귀가 막귀지만 이번 로파에서 키스를 할 때 유재인님의 베이스와 트리키의 드럼이 정말 멋졌어요.
물론 다른 분들은 두말하면 입 아프구요. 트리키님 순산 소식이 빨리 들려왔으면 좋겠네요. 여섯시부터 진행된
공연이 8시 15분이 넘어 끝났지만 기분 같아서는 날을 새고 싶더군요.
공연 다음날이 말일 마감인 상황만 아니었다면 KTX 막차 시간에 쫓겨 공연장을 나서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공연의
여운이 강했지요.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악수를 청하는 로펀 멤버들 한 분 한 분에게 공연을 해줘서 제가 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을 지경이었죠. 다행이도 11월 4일, 5일 공연을 생일선물 대신 허락받았으니 곧 다시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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