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알베르 카뮈

<작가수첩III> 작가가 아닌 인간 카뮈의 고민을 엿보다.

묭롶 2014. 7. 6. 19:46

 

  작가는 크게 특정 작품 이후로 작품활동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작가와 생의 마지막까지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로 나뉜다.  『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가 전자라면 알베르 카뮈나 로맹가리, 박완서 작가는 후자로 볼 수 있겠다.  다작의 여부를 떠나 작가가 일평생 글을 쓴다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직업으로서의 반복적 글쓰기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창작의 고통을 동반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감'이

필요하다.  글에 대한 영감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나와 차마 글로

다 옮기지 못할 지경이었다는 공지영이 어느순간 단 한줄도 글을 쓸 수

없었다고 고백했던 시기의 고통과 참담함은 글을 쓰는 작가라면 누구나

동병상련의 경우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겪는 창작의 고통은 대부분 글감의 고갈에서 기인한다. 

맨 처음엔 자신의 삶에서 글을 길어올리던 작가들은 어느 순간 글이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지점을 만나게 되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낯선 삶에 자신을

내어놓기도 하고 다른 이의 글을 읽기도 하고 타인의 삶을 관찰하며

단 한줄의 문장이라도 내어놓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쓴다.  그러다 어떤 이는 포기하고 어떤 이는 새로운 영감을 받아

다시 글을 쓰기도 한다.

 

  일반적인 작가군과 비교해봤을 때 알베르 카뮈는 교집합이 없는 여집합에 해당된다.  그의 작품활동은 여타의

작가들과는 출발부터 큰 차이점을 지닌다.  대부분 작가들의  창작의 교집합이 '영감'과 '글감'이라면 카뮈를

창작으로 이끄는 동력은 그의 신념이다. 

 

  알베르 카뮈가 학창시절 이후로 고질병이 된 폐질환을 앓지 않았다면 그는 유명한 축구선수가 됐을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문학에 대한 꿈은 있었지만 폐질환이 아니었다며 그는 선생님과 같은 급여 생활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폐질환은 카뮈에게 일찍부터 죽음이라는 숙명을 지닌 인간의 삶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카뮈는 죽음이라는

어쩔 수 없는 수동성의 세계에 반항하는 인간을 꿈꾸게 된다.  죽음(수동적 세계)에 대한 반항은 사회제도(수동적

세계)로 확대되고 사회제도를 대표하는 법에 의해 어처구니없게 단죄당하는 부조리를 고발하는 『이방인』을

발표하게 된다.  (『이방인』은 발표당시 이 작품을 소설의 범주로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단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알베르 카뮈의 작품 전체를 놓고 봤을때 이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실험극'(부조리극)의

 대본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알베르 카뮈 작품의 출발점인『이방인』은 당시 카뮈의 신념을 드러내는 방법론적 결과물이다.  이후 그의

작품들도 부조리에서 출발하여 진화된 신념의 사상적 결과물들이다.  부조리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론으로 '반항'을

모색한 카뮈가 『시지프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적인 인간을 모토로 『페스트』,『반항하는 인간』을 써낸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렇듯 카뮈의 창작활동을 이끄는 동력은 바로 그의 신념이다.  카뮈는 자신의 신념을  청사진 삼아 작품이라는

건축물을 짓고는 그 구조적 결함과 설계상의 문제를 그 자신이 직접 검수함으로써 신념의 정당성을 스스로 검증했다. 

사람이 공기를 마셔 숨을 쉬는 경우처럼 카뮈는 자신의 믿음을 작품으로 구현했고 그 결과물인 작품을 다시

사유함으로써 사상의 발걸음을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딜 수 있었다.  그 자신을 작품으로써 완전히 표현했다고 말한 

로맹가리처럼 로맹가리가 프랑스 문단에서 유일하게 인정했던 단 한 사람인 카뮈는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은 길을

나아가는 방법으로 자신의 작품을 지지대 삼아 한 발짝 한 발짝을 내디뎠다. 

 

「나는 여러해 동안 만인의 도덕률에 따라 살고자 했다. 

~내가 남과 거리가 있음을 느낄 때조차도 화합을 위하여 필요한 말을 했다. 

그렇게 하고 난 끝은 재난일 뿐이다.  이제 나는 쓰레기 속을 헤매고 있다. 

내게는 법칙이 없다.  혼자서, 찢어진 상태로, 또 그 상태를 받아들이면서,

나의 개별성과 나의 부족함을 하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그리하여 나는 하나의 진실을 재건하지 않으면 안된다.」p359

 

 

 『반항하는 인간』에 대한 과거 동지였던(카뮈가 공산당원일 때)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 카뮈는 처음으로

그 자신의 신념의 정당성을 스스로 위협받게 되었다.  사상의 위기는 사상과 작품창작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놓게

되고 카뮈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은(자신의 사상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위기를

느끼게 된다.  글을 쓰지 못하는 고통은 카뮈의 고질적인 폐질환을 재발시킨다. 

 

「 나는 윤리적 관점을 포기했다.  윤리는 추상으로, 불의로 인도한다. 

윤리는 광신과 맹목의 어머니다.  도덕적인 사람은 남의 목들을 잘라야 한다. 

그러나 입으로는 윤리를 설파하면서도 도덕의 높이에서 살지 못하는

람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면 좋은가? 

목이 잘려 떨어지는데 그는 충실하지 못하게 법률을 제정한다. 

 ~윤리를 피해야 하고 심판받는 것을 용납해야 하고 더이상 심판하지 말아야 한다.」p363

 

오늘 저녁처럼 그 초상화가 다 만들어지면

나는 그것을 쳐들어 보이며 비탄이 가득한 목소리로

"자, 딱하게도 이게 바로 나라는 인간입니다!  하고 말하지요. 

 논고가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내가 나의 동시대인들에게 내밀어 보이는 초상화는 거울로 변해버립니다.」『전락』P141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사상)에 공격을 당하게 되면 몸을 사리거나 신념을 꺾기도 하고 공격자의 사상에

동조하는 성향을 보인다.  『작가수첩III』에는 샤르트르와의 결별 이후 사상적 위기와 건강의 위기를 맞닦뜨린

카뮈의 외로운 고투가 그대로 담겨있다.  이 책을 통해 카뮈는 스스로 자신의 나약함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표현하는 모습과 그런 와중에도 사상을 전개해나가기(문장을 쓰기 위해)위해 안간힘을 쓰는 카뮈의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이 책을 읽고서야 카뮈의 『전락』이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카뮈의 일기이자 작품

구상노트인 『작가수첩III』를 통해 나는 노벨상 수상작가인 카뮈가 아닌 인간 카뮈를 만나게 되었다.

 

11월 7일. 45세. 내가 원했던 대로 고독과 반성의 한나절. 

금 당장이라도 그런 초연한 태도를 갖기 시작하여

50세가 되었을 때는 그 완성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때에는 비로소 군림할 수 있으리라. 」p351

 

 모두가 재판관이자 참회자이라는 『전락』에서 클라망스의 말은 자신을 이념의 잣대에 놓고 공격하는 프랑스문단에

보내는 카뮈의 대답이다.  『전락』을 통해 카뮈는 자신의 사상적 위기를 극복했다고 보여진다.  『전락』은

『반항하는 인간』과 카뮈가 자신의 다음 단계로 놓은 사랑(인간)에 해당하는 『최초의 인간』을 연결하는 가교의

위치에 놓인다. 

그는 『전락』을 통해 재판관이자 참회자인 인간에서 니체의 초인을 대신할 인류의 보편성을 『최초의 인간』에서

찾고자 했다.  자신의 나이 오십에 『최초의 인간』의 완성을 목표로 했던 그는 마흔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60년 1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카뮈의 머릿 속을 온통 채우고 있었을 『최초의 인간』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이젠 어느 누구도 그 실체에 다가갈 수 없다.  하지만 『작가수첩III』에 수록된 그의 글을 통해

가 그려내고자 했던 '최초의 인간'이 끝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인간이며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인간임을 짐작할 수 있다. 

 

「거짓은 환상처럼 사람을 잠재우거나 꿈꾸게 한다. 

진실은 유일한, 경쾌하고 무궁무진한 힘이다. 

우리가 오로지 진실로만, 진실을 위해서만 살 수 있다면:

우리들 속에 있는 불멸의 젊은 에너지.

진실의 인간은 늙지 않는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는 죽지 않을 것이다.」p315

 

  예기치 않은 죽음을 예감했던 것일까?  『작가수첩III』에 실린 그의 글 속에서 카뮈의 사유가 멈추지 않고 그의

창작물이 우리에게 전하는 사유 속에서 더 크게 확장되어 나가는 동안 카뮈는 '우리들 속에 있는 불멸의 젊은

에너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