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알베르 카뮈

<작가수첩1>

묭롶 2012. 6. 18. 23:18

 

   그의 기록은 향후 작품을 위한 잠재태임과 동시에 그의 성찰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작품으로 형상화되는지를 확인하는 지도의 역할을 한다.  그가 기록을 하면서 했을 생각을 짐작해 보는 것은 큰 기쁨이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작가 누구도 자신의 작품노트를 공개한 사람은 없었으므로, 카뮈는 오래전에 고인이 되었지만, 글을 적을 당시의 젊은 그를 만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그간의 독서를 통해 카뮈의 작품이 그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경험하는 모든 삶의 모습들은 그의 명징하고 고요한 사고 속에서 성찰을 낳았고, 그 성찰을 모태로 쓰여진 저작물들이 그의 작품이 되었다.  『작가수첩1』은 단순히 일상을 기록하는 일지의 성격보다는 그가 의도하는 저술과 그 궤를 같이하는 성찰의 결과물들이 기록된 설계도의 성격을 띤다. 

 

「1936년 3월

M.-그는 저녁마다 그 무기를 탁자 위에 놓아둔다.  일이 끝나면 서류들을 치운 다음, 권총 쪽으로 다가가 그 위에 이마를 갖다대고 양쪽 관자놀이를 굴리면서 자기 뺨의

열기를 그 싸늘한 쇠붙이에 식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졸음에서 깨어나자 그는 벌써 씁쓸해진 침이 가득 고인 입으로 권총의 총대를 핥고 총구멍 속으로 혓바닥을 집어넣으면서 끝없는 행복감으로 숨을 헐떡였고,

황홀한 듯 몇번씩이나 중얼거렸다:  "견줄 데 없는 이 희열."」p40~41

 

<행복한 죽음>

「이윽고 자그뢰스는 탁자 위에 권총을 꺼내놓고 몸을 가까이 가져가서 거기에 이마를 대보기도 하고, 관자놀이를 비벼보기도 하고, 또 차가운 총신에 뺨의 열기를 식혀보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도 위엄과 침묵 속에서 생명을 불태워보고 싶은 욕망을 안은 채 선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러다가 벌써 쓰디쓴 침이 입 안 가득한 채 다시 깨어나면 그는 총신을 핥아보고, 총구 속에 혀를 들이밀어보다가 끝내는 불가능한

행복을 안타까워하는 것이었다. 」 p84~85

 

  실제로 공책1권에는 『행복한 죽음』을 위한 기초적인 목록이 기록되어 있고, 그 목록에 구체적으로 사용될 문구의 일부도 수록되어있다.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가 제시하는 부조리를 위한 추론의 방법론으로서의 작품이 어떠한 형태로 구성될 것인지도 이 책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1938년 8월 21일

예술가와 예술 작품.  진정한 예술 작품은 가장 말이 적은 작품이다.  한 예술가의

총체적 경험, 그의 생각+삶(어느 의미에서 그의 체계)-그 낱말이 내포하게 되는 체계적인 면은 빼고)과 그 경험을 반영하는 작품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다. 

예술 작품이 그 경험을 문학적 장식으로 감싸서 모조리 다 보여준다면 그 관계는 좋지 못한 것이다.  예술 작품이 경험 속에서 다듬어낸 어떤 몫, 내적인 광체가 제한되지

않은 채 요약되는 다이아몬드의 면 같은 것일 때 그 관계는 좋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글 쓰는 기술을 초월하는, 그 사는 지혜(아니 아미 산 지혜)를 획득하는 일이다.  결국 위대한 예술가는 크게 사는 사람이다(여기서 산다고 하는 것은 삶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 또한 의미한다. -나아가 그것은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하여 갖는 의식

사이의 그 미묘한 관계다.」p147~148

 

<시지프신화>

「부조리라고 하는 이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우리는 아마도 지성, 삶의 예술,

아니 바로 예술 그 자체라는 서로 다른, 그러나 친근한 세계들 속에서 포착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가장 먼저 존재하는 것은 부조리의 풍토다.  끝에는 부조리의 세계와 정신적 태도가 있다.  그 정신적 태도가 특유의 빛으로 세계를 비추고, 그것

스스로 간파해내는 이 세계의 특권적이고도 거역할 길 없는 얼굴이 그 빛을 받아

광채를 발하게 만드는 것이다.」p27

 

 『작가수첩1』은 1935년부터 1942년 사이에 카뮈가 적어놓은 공책 3권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동 시기에 저술한 작품으로는『행복한 죽음』, 『안과 겉』, 『결혼·여름』, 『이방인』, 『시지프 신화』, 희곡 <칼리굴라> 가 있다.  이 작품들은 카뮈 작품을 테마 중 부조리와 반항에 해당하는 작품들로서 향후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룰 주제를 수록된 글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1938년 2월.

혁명 정신은 인간 조건에 대한 인간의 항의 속에 송두리째 다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나마 예술과 종교의 영원하고 유일한 테마다. 

하나의 혁명은 언제나 제신들에 대한 항거로서- 우선 프로메테우스의 혁명이 그렇다- 성취된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에 항거하는 인간의 한 요구다.  폭군과 부르주아적인 인형극 조정자들은 그 항거의 구실에 불과하다.」p123

 

 학창시절부터 발병한 폐질환은 그가 구상했던 삶의 계획들을 엉크러놓아서 축구도 대학교수도 군입대를 자원할 수도 없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빈곤과 자꾸만 자신을 거꾸러뜨리는 질병 앞에서 카뮈는 자신의 모습히 흡사 신에게 반항한 댓가로 쇠사슬에 묶여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와 같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특히 죽음에 대한 그의 이른 성찰은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부조리함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방인』은 인간을 억누르는 태양에 굴복하지 않는 자아(프로메테우스적)와 그 반대펀에 위치한 재판관련자들의 대비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로서의 '부조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시지프 신화>

「삶에 대한 이런 모욕, 삶을 수렁에 빠뜨리는 이런 부정(否定)은 과연 삶의 무의미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과연 부조리는 죽음을 명하는 것인가.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죽음을 통하여 자신의 감정의 흐름을 끝까지 따라간다.  그러므로

자살에 대한 성찰은 나의 유일한 관심사인 하나의 문제를 제기할 기회를 제공해준다.  과연 죽음에 이를 정도의 존리란 존재하는 것일까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p23

 

  카뮈는 '부조리'를 작품을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인간의 부조리한 삶, 이면에 존재하는 삶의 구체성과 그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이는 그가 <시지프 신화>에 수록된 '부조리와 자살'에서 증명해보이고자 했던 추론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방법론이 일반적 문학의 형식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며 자신의 '부조리'가 문학을 통해 형성하는 감수성이 진실과 객관성의 배경 위에 빛나는 '다이아몬드의 면'처럼 창백하고 순수한 것이길 원한다.  소설과 이야기의 중간 형식을 띤다고 평론가들이 평하는 『이방인』의 독특한 문체는 바로 이러한 카뮈의 의도된 방법론의 결과물임을 확인하게 된다.

 

「1937년 9월

나는 나의 모든 힘을 다하여 아니다라고 말한다.  무덤돌들은 내게 그래봐야 소용없다고, 인생은 "해와 함께 떠올라 해와 함께 져가는 것 col sol levante, col sol cadente"이라고 나에게 일러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무용함으로 인해서 도대체 내 반항의 그 무엇이 의미 없어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삶이 무용하기 때문에 반항은 더욱 의미가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p84  - <이방인>의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