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알베르 카뮈

<칼리굴라, 오해>

묭롶 2011. 1. 4. 22:12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자신의 자율의지에 의해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 살아가며 행했던 우리의 행동들의 이면을 살펴본다면 그 자율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선택권없이 주어지는 인종, 민족, 부모, 가정환경과 사회제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 주변에 무형의 시스템으로 자리잡는다.  본인의 자유의지로 자신의 장래를 결정했다고 말하는 그 순간조차도 자신을 둘러싼 시스템이 부여하는 통제와 간섭에서 인간은 벗어날 수 없다.  

 

「칼리굴라:~고독.  고독?  어떤 고독 말야?  아! 사람은 혼자이면서도 절대로 혼자가 아니란 것을 너는 몰라!  어디를 가나 미래와 과거의 무거운 짐이 쫓아다닌다는 것을 말야! 」p84

 

  카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벗어날 수 없는 시스템의 그물 속에서 과연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지를 끊임없이 의심해왔다.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그 시스템이 부여한 죽음 대신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부조리한 세상에 자신의 자유의지를 증거했다면, 『칼리굴라』에서는 진정한 자유를 시스템하에서는 선택할 수 없는 것들(밤 하늘의 달, 살인 등)을 택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칼리굴라:~그리고 너는 알고 있어.  (울면서 거울을 항하여 손을 뻗는다.)

다만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된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

나는 그것을 이 세계의 끝에서, 나 자신의 한계점에서 찾아 해맸던 거야. 

~그러나 내가 만나게 되는 것은 너,  항상 나를 마주보는 너.

~나는 가야 할 길로 가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어.  

나의 자유는 제대로 된 자유라 아니야.」 P150

 

『칼리굴라』는 특히 세상의 부조리함을 어느날 갑자기 인식해버린 한 인간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거울속 자신을 의식하는 칼리굴라)를 연극이라는 장치를 통해 끝까지 밀어부친 작품으로 『시지프 신화』에서 전개된 바 있는 '반항이론'(프로메테우스의 반항)의 실험물로 보여진다.  이 작품을 계기로 카뮈의 부조리인식은 '반항하는 인간'이라는 방법론으로 나아가게 된다.   

 

칼리굴라: ~이 자유가 없었다면, 나는 만족해버린 인간이 되었을거야.  

이 자유의 덕택으로 나는 고독한 인간의 기막힌 통찰력을 얻게 되었어.

~이게 바로 행복이란거야.  이 견딜 수 없는 해방감, 이 전반적인 멸시,

나를 둘러싸고 있는 피와 증오, 자신의 삷 전체를 직시하는 인간의

이 비길 데 없는 고립」p147-148

 

  카뮈는 연극의 무대를 통해 자신이 작품을 통해 전개했던 논리가 실체를 가지고 실연되어지는 과정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숙명(죽음)과 자유에 대한 방법론을 검증한 것으로 보여진다.  아마도 그런 상관관계로 인해 카뮈는 단순히 작가의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그 자신이 직접 대본을 쓰고, 각색하고 연출과 출연까지 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카뮈의 이론을 방법론으로 실체화시킨 그의 대본은 단순히 이론의 방법론적 검증뿐만 아니라, 이후 작품을 통해 전개될 새로운 방법론을 배태하고 있다.  

『오해』에서 서로 다른 행복을 추구(바닷가에서 온 얀은 어머니와 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하나 방법을 찾지 못하고, 여동생인 마르타는 바닷가의 삶을 동경하지만 그녀 역시 방법을 찾지 못했다)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해로 인해 서로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각자 갖고 있으면서도 엇갈린 선택(자유의지?)을 하고야마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나약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희망이 어디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되묻는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이 1947년에 출간된 『페스트』가 되었으니 카뮈의 작품활동에서 연극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ps: 카뮈의 <칼리굴라. 오해>를 읽으며 거울 속의 자신을 의식하는 칼리굴라의 모습에서 李箱의 시에 자주 나오는 상반된 이미지의 대칭(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 금홍과 연이와 나의 대비, 현해탄을 사이에 둔 대척점으로서의 동경 등)관계가 연상되었다.  이러한 대립관계는 『오해』에서는 얀과 누이동생의 서로 상반된 행복추구와 『전락』에서는 상승과 하강의 물의 이미지로 표현되어지고 있으니 그 유사성이 참으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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