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알베르 카뮈

<반항하는 인간>

묭롶 2010. 12. 9. 22:12

 

 카뮈의 책을 한권씩 읽어나가며 그가 말하는 반항과 부조리의 의미에 조금씩 다가감을 느끼게 된다.  『반항하는 인간』은 부조리를 구체화한『이방인』과 반항의 긍정적 면을 그려낸 『페스트』그리고 이 책을 위한 서문격인 『시지프 신화』, 이 세권의 책의 근간을 이룬 기초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은 카뮈가 평생 동안 문학을 통해 구체화하려했던 무언가를 짐작하게 한다.

 

「예술은 형식화라는 불가능의 요구이다.  가장 비통한 절규가 가장 확실한 언어를 찾아낼 때 반항은 스스로의 진정한 요구를 만족시키게 되며 스스로에 대한 이 충실성으로부터 창조의 힘을 이끌어내게 된다.  」p443~444

 

   카뮈는 인류사의 형이상학적. 역사적. 예술적 반항의 실례를 들어 진정으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반항정신의 뿌리가 어디에 있으며, 그 세 가지 반항들이 보여줬던 오류를 지적하며 반항이 가야할 바를 고찰한다. 

 

「“반항하는 인간의 논리는 인간 조건의 불의에 또 다른 불의를 보태지 않도록

정의에 봉사“하는 데 있다.  」p464

 

  그는 스파르타쿠스의 혁명이나 프랑스 혁명의 실패의 원인이 지배와 피지배의 자리 바꾸기에 있었다고 본다.  인류역사와 함께 지속되어온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는 그 지배층이 바뀐다고 해도 그 실체적 구조가 바뀌지 않는 것이며, 피지배자가 혁명에 성공하더라도 결국은 과거의 사회구조를 답습(실패한 혁명의 끝은 허무주의로의 자살과 테러로 귀착하게 된다)하게 된다고 본 것이다.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이다.  공산주의는 무산계급의 완전한 평등세상을 내세우지만 그러한 이상향을 만드는 과정에 ‘당’과 ‘정치경찰’의 필요성을 내세움으로써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한다.  카뮈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순간 그 이데올로기는 혁명으로서의 진정성을 잃는다고 보았다. 

 

「인류는 오직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수수께끼만을 내놓는 것이라고 마르크스가 단언할 때 그는 동시에 혁명적 문제의 해결이 자본주의 자체 속에 이미 배태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는 그러므로 부르주아 사회보다 덜 산업화된 사회로 돌아가기보다는 오히려 부르주아 국가가 주는 고통을 감내하기를, 심지어 부르주아 국가 건설을 돕기를 권장한다.  프롤레타리아들은 “노동자 혁명의 한 조건으로서 부르주아 혁명을 받아들일 수 있고 또 받아들여야 한다.”」p336~337

「반항하는 인간은 전반적인 독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인정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이 한계야말로 바로 그 인간 존재의 반항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자기 모순에 빠지지 않는 한 그는 존재와 타인의 자유를 파괴할 권리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반항이 도달한 구결은 살인의 정당성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반항은 그 원리에 있어

 죽음에 대한 항의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자신이 결국 살인을 하게 된다면 그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자신의 기원에 충실한 반항하는 인간은 그의 진정한 자유가 살인에 대한 자유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자유라는 것을 희생 속에서

증명한다.」p463~466

 

칼리아예프의 죽음처럼 이데올로기 자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는 진정성이 그가 주장하는 반항의 요체(진정으로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카뮈는 공산주의에 회의를 느낀 것으로 보여 진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말하여 새로운 초인사상을 내세웠지만, 사람들은 사라진 신을 대신하여 새로운 신(잔인한 억압과 희생을 강요하는 신)을 세우고 그 앞에 죄인임을 자복하는 모습을 보며 카뮈는 인간이라는 개체가 지배구조를 벗어나려는 존재이면서도 지배구조에 복속하기를 자청하는 이중적 존재임을 자각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의 『반항하는 인간』은 인류역사를 통해 보여 지는 인간의 부조리함을 혁명과 테러리즘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인간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삶은 무엇이며 진정한 반항이 무엇인지를 되묻고 있다. 

 

  카뮈는 인류사가 이룩한 정치, 제도, 이데올로기를 인류에 포함되어 있는 누군가가 판단하는 것 자체가 부조리하다고 말한다.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인류문명과 독립된 체계를 갖출 수 없으며 언제나 그 문명 속의 합집합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이념으로 다른 이념을 반박하거나 재단하는 행위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카뮈에게 있어 반항은 어떤 역사적, 이데올로기적, 정치, 사회적 변혁을 일으키는 혁명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의 반항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이라는 끝을 향해 나아가야하는 인간의 운명을 거부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왜 계속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그의 물음은 끝이 정해져있는 한시적인 인간의 시간 앞에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자각하게 하는 화두이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론의 결과물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카뮈에 이르러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살아간다’가 되는 것이다.      

'독서노트 > 알베르 카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리굴라, 오해>  (0) 2011.01.04
<여행일기>  (0) 2010.12.25
<젊은 시절의 글>  (0) 2010.07.28
<전락>  (0) 2010.06.28
<결혼,여름>  (0) 2010.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