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알베르 카뮈

<결혼,여름>

묭롶 2010. 6. 21. 21:38

 

초등학교때 방학이 되면 네명의 아이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엄마는 나와 동생을 외가집에 보내곤 했다.  술과 노름에 한평생을 바쳤던 외할아버지 와 본인 명의 땅 한뙈기 없이 남의 집 품팔이로 전전했던 외할머니가 계신 외가집은 너무 가난했다.  항상 과자도 없고 반찬도 간장이나 깨소금하나 놓고 먹는 외가에서 보내는 방학은 너무도 무료하고 그저 하릴없이 땀만 흘리는 일상이었다.  외할머니는 복숭아 과수원에 품팔이를 나가고 동생은 뒷산에서 뭘하는지 모를 여름날 정오, 해는 지붕 꼭대기에서 비치는지 구름한점 없는 하늘아래 바람도 없이 너무나 적막한 그곳에서 나는

막연히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내 숨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했는지 전혀 인지할 수 없는 시간들이 흐르고 온통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현재의 시간만이 멈춘 채  존재하는 것 같은 공간 속에 내가 있었다.  한낮의 정적에 취해 잠이 들었던 것일까?  갑자기 눈 앞에 온통 주황빛과 붉은 빛으로 얽룩진 환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내가 꾸는 꿈을 태양이 들여다보는 듯한 묘한 기분, 그 한여름의 태양을 떠올리면  지금도 왠지 졸린듯 나른하고 몽롱해지곤 한다. 

 

  그 한여름에 내가 겪었던 태양에 대한 감수성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나만의 (내것인) 감수성은 어린왕자의 소행성에 있는 특별한 장미처럼 나의 우주속에서 형성된다.  파울로 코엘료는 『승자는 혼자다』에서 한 사람의 세계는 하나의 소우주와 같다고 말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해가 지기전까지 출발점에서 원을 그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구간만큼을 자기 땅으로 만들어주는 경기처럼,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자신만의 세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누구나 태생적으로 타고난 환경요인과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틀을 형성하게 되는데, 그가 보는 모든 것들은 자신만의 우주 속에서 해석되고 기억속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결혼,여름』은 우리를 카뮈의 소우주에 데려다 놓는다. 그 소우주에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카뮈의 마음 속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었던 그만의 노스텔지어를 만나게 된다.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神)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마을 주변의 언덕들에 뿌리를 내린 슈누아의 서커먼 덩치  <티파사에서의 결혼>p13」

 

「한낮에 하늘이 낭랑하고 드넓은 공간 속에다가 저의 빛의 샘을 열어놓을 때,

해안의 모든 곳은 출범 직전의 선단(船團)같다.  바위와 빛의 그 육중한 보물선들이

태양의 섬들을 향해 떠날 준비라도하듯이 용골 위에서 떨고 있다. 

오, 오랑 지방의 아침들!  언덕 꼭대기로부터 제비떼는 대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대한 물통 속으로 잠겨든다.  해안 전체가 출발 준비를 갖추고 모험의 전율이

훑고 간다.  아마 내일 우리는 함께 출발한 것이다. 

 <미노타우로스 또는 오랑에서 잠시> p106」

 

  누구나 마음의 고향을 떠올리면 가슴 속 깊이 스미는 따스한 위안과 포근함을 느끼게 되지만, 카뮈에게 오랑과 알제는 대도시의 획일적이고 고정된 감수성에 물든 어둠을 깨우는 빛과도 같았다.  그는 자신이 간직한 자신만의 감수성을 확인할때마다 삶에 새로운 열정과 반항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카뮈는 유럽문명이 개인에게 주입시키는 보편적 감수성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사막을 걸어서 그 끝에 떠 있는 첫번째 별(나만의 감수성)을 만나게 되기를 희망한다.

 

「정의가 말라빠져가지고, 오직 씁쓸하고 메마른 살밖에 남지 않은 아름다운 오렌지색 열매로 변하는 것을 막으려면 어떤 신선함을, 어떤 기쁨의 샘을 자신의 속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야 하며, 불의를 모면할 수 있는 대낮을 사랑해야 하고, 그리하여 그렇게 전취한 빛을 가지고 싸움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티파사에서 다시

발견하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절망하는 것을 막아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마침내 내 속에 억누를 길 없는 여름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티파사에 돌아오다>  p165」

그 이상한 사막은 자신의 목마름을 기만하지 않은 채 사막 속에서 살아갈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아는 사막이다.  그때서야, 오직 그때서야 비로소 사막에서는 서늘한

행복의 물이 여기저기 솟아나게 될 것이다.  <사막> p69」

 

  그는 명작과 명화 그리고 그러한 유적이 있는 도시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감수성이 아닌 그가 직접적으로 체험한 현재가 녹아든 그만의 감수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기존(과거)의 가치에 놓고 판단하는 것을 거부했다.

 

 「어느 누구도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더러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게 된다.  ~나는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남들은 나보고 결정적인 이름들을, 아니 단 하나의 이름을 대라고 오금을

박는다.  그러면 나는 불끈하여 대든다.  이름붙여진 것은 이미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내가 말해볼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이런 것이다.  <수수께끼> p146」

 

  보편적 감수성만을 제시하는 유럽문명 속에서 사람들은 보편성의 시야만을 견지한 채 자꾸만 좁아지는 자신만의 우주를 인식하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삶에 끌려다니다가 죽음을 맞는다.  카뮈에게 자신의 삶 속에서 창조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삶은 물결의 흐름에 따라 흘러내리는 죽는 물고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끝끝내 살아 '시지푸스의 바위(프로메테우스적 인간)'가 되려는 인간(자그뢰스, 메르소)을 그리려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무덤돌과 봉납물들 위에 새겨진 글들을 읽어보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없었다. 

돌에 새겨놓은 글을 보면 거의 모두가~죽음도 체념한 채 받아들이고 말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막> p60」

「나는 그 연약한 눈(雪)빛의 꽃이 모든 비와 바닷바람에 저항하는 것을 보고 황홀함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도 해마다 그 꽃은 열매를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만큼만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었다.  <편도나무들> p111」

 

  전염병이라는 극한의 부정 속에서도 희망을 보여주는 『페스트』의 긍정은 바로 그 삶의 고통을 죽음마저도 회피하지 않고 맞선 반항 속에서만 비롯되었다.

 

「더 이상 나아가지 말고 걸음을 멈추어야 할 곳은 다름 아닌 바로 이 균형의 위이다.  정신성이 도덕성을 거부하고, 행복이 희망의 부재에서 태어나며, 정신이 육체에서

근거를 얻는 이 절묘한 순간, 진실은 어느 것이나 그 속에 쓴맛을 내포학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부정은 어느 것이나 '긍정'의 꽃필 날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막>  p68」

 

  카뮈는 자신만의 우주와 삶의 맞대면을 통해 습득된 통찰력을 글로 남겼다.  그가 문학 속에서 건져올리고자 했던 '부조리의 문학', '절망의 문학'은 결국 자신만의 우주를 프리즘 삼아 비춰진 여러개의 가능성 속에 담긴 긍정의 힘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 실체없이 잡히지 않는 '빛'을 찾아 객관적 작가의 길을 걸어나갔다.  이제 다섯권째 그의 책을 읽으며 난 이제서야 그가 찾으려 했던 '빛', '자유', '반항'의 실체를 조금씩 더듬어가게 된다.

 

~잠시 후 내 몸 속에 그 향기가 스며들게 하기 위하여 내가 압생트 위에 몸을 던지게 되면 나는 모든 선입견을 물리치고 하나의 진실을 성취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리라.  그 진실은 태양의 진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나의 죽음의 진실이다.     

~나는 오직 내 몸 전체로 살고 내 마음 전체로 증언하면 된다.  티파사를 살고 그것을 증언할 일이다.  예술 작품은 그 뒤에 올 것이다.  거기에 바로 자유가 있는 것이다.

<티파사에서의 결혼>p13,18,20」

 

「우리의 등 뒤에 하나의 빛이 있으니, 그 빛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위하여 우리의 인연들을 뿌리치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온갖 말을 통해서 그 빛에 이름을 붙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임을 배웠다.  ~위대한 예술가라면 작품 하나하나가 그를 진리에 가까이 접근시켜줄 것이다.  <수수께끼> p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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