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알베르 카뮈

<시지프신화>

묭롶 2010. 6. 7. 22:30

 

 오, 나의 영혼아,

불멸의 삶을 애써 바라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

-판다로스<아폴론축제 경기의 축가3>  -『시지프 신화』서문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유명한 작가들은 그 이름만큼이나 자신의 대표작으로 불리기도 한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라는 말처럼 한 편의 위대한 소설은 작가의 전생애가 녹아든 정신적 사유의 집약체이다.  그리하여 한편의 작품이 탄생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읽고 그것에 대해 해석을 하고 그에 대해 평을 한다.   이말은 작품은 작가가 쓰지만, 그 뒤는 독자의 몫이 된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런면에서 알베르 카뮈는 역사상 이름을 남긴 대부분의 작가들과 대별점을 갖는다.  그는 자신의 사유를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와 '비평'을 통해서도 표현했다.  자신들의 작품에 코멘트를 달지 않는 작가들과 다르게 그의 소설은 그가 쓴 에세이와 비평의 부분집합들이다.  그 부분집합들의 합집합은 '알베르 카뮈'로 통하는 그 무수한 줄기들의 첫 발자취에 『시지프 신화』가 놓인다.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이후 작품 전체에 등장하게 될 '부조리'의 개념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떠한 결론으로 카뮈의 다른 작품들에 표현되어질지를 짐작하게 된다. 

 

「부조리는 나와 세계, 나와 타자, 나와 나 자신 사이의 절연이며 단절이다. 

부조리는 인간과 그의 삶 사이의 이혼이며 거기서 오는 낯설음이다. 

부조리는 시간에 대한 인식이며 죽음에 대한 명철한 의식, 혹은 '의식적인 죽음'이다.」p249~250

「인간과 그의 삶, 배우와 무대장치 사이의 절연(絶緣), 이것이 다름 아닌 부조리의 감정이다. 」p19

 

카뮈의 사유의 출발점이 되었던 죽음에 대한 인식은 사유의 과정을 통해 '부조리'라는 개념을 도출시켰다.  그 결과 그는 삶을 바라보는 부조리의 사유를 견지하게 되었고, 그후 그는 죽음, 삶, 희망, 종교, 고통 등 인간 본연의 근원적 질문들을 '부조리'의 대칭항에 놓고 이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유를 통해 느낀 자신의 감수성(부조리의 감수성)을 글로 남기게 되었다.  이러한 부조리의 감수성은 때로는 소설로 때로는 에세이를 통해 표현되어졌지만, 결국 이는 부조리한 삶을 자각하며 그 고통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실천적 삶으로 통합되는 것이었다.  "부조리한 작품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p149라는 물음은 카뮈가 평생을 걸쳐 자신의 작품으로 표현하려했던 화두가 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돈 후안'과 '배우', '정복자' 등을 부조리한 인물로 분류한다.  이들이 부조리한 인물인 까닭은 그들이 습관적인 삶을 사는 일상인이나 운명에 무릎꿇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자유의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돈 후안이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질을 지행하는 성자의 그것과는 반대로 양(量)의 윤리학이다. 

사물들의 심오한 의미 같은 것을 믿지 않는 점이야말로 부조리의 인간의 특성이다.」p111

「부조리의 인간은 희망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정신이 남의 연기를 감상하기를 멈추고

그 속으로 직접 들어가려고 하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모든 삶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삶의 다양함을 골고루 경험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 삶들을 연기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라는 사실에서 최선의 결론을 끌어낸 것은 바로 배우다.

~그에게 있어서,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곧 연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연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가 생명을 부여하여 새로이 살아나게 하고자 했던 

그 모든 존재들과 더불어 무수히 죽는다는 것이다.」p120~121

 

  또한 그는 주어진 삶 속에서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항'하는 것이 부조리한 인간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는 신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죄로 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나 신의 의지를 거역하여 다시 굴러떨어질 바위를 영원히 밀어야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는 부조리한 인물의 전형으로 보았다.

 

「최초의 현대적 정복자인 프로메테우스의 혁명을 위시하여 혁명이란 무릇 신들에게

항거함으로써 성취되는 것이다.  그것은 주어진 운명에 맞선 인간의 권리 주장이다. 

~나는 인간을 짓누르는 것과 맞서서 인간을 앙양시키기에 나의 자유와 반항과 정열은

그 긴장과 그 명철성과 그 엄청난 반복 속에서 한 덩어리가 된다. 

그렇다, 인간이야말로 인간 자신의 목적이다.  하나밖에 없는 목적이다. 

그가 무엇인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삶 속에서이리라.」p133~134

「중요한 것은 부조리와 더불어 살아 숨쉬는 것이고 그것이 주는 교훈을 알아차리고

그 피와 살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부조리한 즐거움의 전형은 다름 아닌 창조이다.  "예술, 오로지 예술.  진리로 인하여 죽지 않는 방법으로 우리들은 예술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라고 니체는 말했다.」p146

 

  이 책은 부조리와 자살, 부조리의 추론, 부조리의 창조를 거쳐 시지프신화로 마무리된다.  카뮈는 '부조리한 삶=비극'이라는 일반적인 도식에서 벗어나 '시지프'의 '반항'과 '자유의지'에서 현재를 살아갈 방법론을 도출한다.  '시지프스(불어식 발음 '시지프') 신화' 속의 부조리한 인물(일반적인 관점에서 비극적 인물) '시지프'에게서 카뮈는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본 것이다.  온 몸으로 바위의 무게를 견디며 언덕 정상에 올려 놓으면 떨어지는 바위를 향해 다시 걸어가는 시지프의 모습에서 카뮈는 절망이 아닌 그러한 삶을 온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며 다시 꿋꿋이 바위를 향해 걸어내려가는 그의 모습 속에서 땀을 식혀주는 바람과 그를 비추는 따사로운 햇살을 깨어있는 눈으로 인식하는 명철한 사고를 추체험하게 된다.  이제 흉물스럽고 회피하고 싶었던 우리 저마다의 바위는 내가 바위를 부정하지 않고 직시하는 순간 나의 삶이 되고 바로 내(주체적)가 된다.  그러한 깨달음의 시작이 『시지프 신화』이다.   

 

「어떤 경험, 어떤 운명을 산다는 것은 그것을 남김없이 다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곧 부조리를 살려놓는 것이다.  부조리를 살린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부조리를 주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일하게 일관성 있는 철학적 태도는 곧 반항이다.  」p83

「부조리의 인간은 오직 남김없이 다 소진하고 자기 자신의 전부를 마지막까지 소진할 뿐이다.  부조리는 인간의 최극단의 긴장, 고독한 노력으로써 끊임없이 지탱하는 긴장이다.」p85

「부조리에 대한 성찰은 비인간적인 것을 고통스럽게 의식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 여정의

종점에 이르면 인간적 반항이라는 열정에 찬 불꽃 속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낸다. 

그것은 바로 나의 반항, 나의 자유, 그리고 나의 열정이다.」p96

 

남는 것은 운명이다.  오직 운명의 결말만이 숙명적이다.  죽음이라는 유일한 숙명성을 제외하고는 기쁨이건 행복이건 결국 모든 것이 자유이다.  인간만이 유일한 주인인 세계가 남는다.  」p179

「시지프의 말 없는 기쁨은 송두리째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이 자신의 고통을 응시할 때 모든 우상들은 침묵한다. 」p188

 

『이방인』에서 사형을 앞둔 뫼르소가 극도의 해방감 속에 행복을 느끼게 되는 장면과, 『페스트』에서 의사 리유가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자기극복의 과정을 위의 글에서 확인하게 된다.  하나의 작품을 통해 다른 작품을 읽는 해석의 열쇠를 하나씩 찾아내는 것 또한 카뮈의 책을 읽는 즐거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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