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알베르 카뮈

<단두대에 대한 성찰, 독일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묭롶 2011. 12. 31. 14:50

 

내가 가진 신념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나의 의견이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나만의 신념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난 '나를 믿는게' 나의 신념이라고 말하겠다.   누구나 처음부터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신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자신을 밀어붙이지는 못한다.  

 

「~반대로 나는 이 지상의 삶에 충실하기 위하여 정의를 택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 다른 것보다 우월한 의미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무엇인가에는 의미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이야말로 의미를 갖겠다고 요구하고 나서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적어도 인간의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이란 운명 자체와 맞서 싸워 인간에게 존재 이유를 제시해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인간 이외의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온 마음으로 당신에게 외쳐 대답합니다.  그것은 인간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며 인간만이 품을 수 있는 정의로움에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P 122

 

  알베르 카뮈는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 생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술활동을 계속했다.   그의 평생에 걸친 저작물은 그가 가진 신념을 드러내는 도구이자, 자신의 신념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논문의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는데 있어, 그 작품 출간 전에 카뮈가 어떤 작품을 써 왔는지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두대에 대한 성찰, 독일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이전에  출간된 작품 중 카뮈 작품의 핵심을 이루는 '부조리'와 '반항'에 해당하는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가 각각 소설과 에세이에  해당된다면 이 작품은 픽션이 아닌 기고문의 성격을 갖는다.  이 작품은 소설이나 희곡의 형식으로 쓰인 카뮈의 작품들과는 달리 카뮈의 신념을 직설화법으로 들려준다.

 

  사형제도와 전쟁 반대는 '부조리'와 '반항'에 관해 쓰인 그의 전작들과의 연장선상에서 보더라도 당연한 귀결이다.   독립운동을 하셨던 선구자들이 처음에는 비분강개한 조국의 현실을 참지 못하고 행동에 나선 결과 독립운동가가 된 경우처럼 카뮈의 신념은 저술활동의 결과로 건져올려진 결정체들이다.   카뮈의 작품들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 추출된 염전의 하얀 소금을 연상시킨다.   바람이 불면 찰랑이던 염전에 채워진 바닷물이 뜨거운 태양열과 수천번의 써래질을 통해 소금 결정으로 탈바꿈되는 것처럼,  카뮈의 생각 속에 깃들어 있던 형태없던 생각이 저술의 과정으로 문자화되는 과정을 거쳐 구체성을 지닌 신념으로 표출되어졌다고 보여진다. 

 

  그의 신념은 소설, 희곡, 에세이, 논문 등 다양한 형태를 빌어 표출되어지는데, 그의 작품 속에서 장르를 구별하지 않고 반복되어지는 텍스트(아버지의 사형장면 목격담, 잡보기사 관련 글 등)들은 카뮈에게 저술 활동이 갖는 의미를 짐작하게 한다.

 

<이방인>:소설「~아버지는 어느 살인범의 사형집행을 보러 갔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갔고, 돌아오자 아침에 먹었던 조반의 일부분을 토했다는

것이었다. 」 p145

 

<단두대에 대한 성찰>:기고문 「~아버지는 한밤중에 일어나 시내 반대편 끝에 있는

처형장으로 갔다.  ~ 아버지는 그날 새벽에 당신이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심하게 충격받은 얼굴로 바람처럼 돌아와 묻는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잠시 동안 자리에 누웠다가는 갑자기 속에 든 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고 어머니가 전할 뿐이다.」  p9~10

 

<이방인>:소설  「~예컨데 또 어떤 때는 법률의 초안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형법 체제를 개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형선고를 받은 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요점임을 나는 알아차렸다.  천 번에 단 한 번, 그것이면 수많은 일을 해결하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그것을 먹으면 수형자가(나는 수형자라는 말을 생각했었다)

열 번에 아홉 번만 죽는 그런 화학약품의 배합을 고안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두대의 칼날을 사용할 경우 결함은 그것이 아무런 기회도, 절대로

아무런 기회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수형자의 죽음은 결정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 p146

 

<단두대에 대한 성찰>:기고문  「~그러고 보면 그리스인들은 좀더 인간적이어서,

사형에 독이 든 당근즙을 사용했다.  그들은 사형수에게 상대적 자유를, 즉 사형수

자신이 죽을 시간을 좀 늦추든지 앞당길 가능성을 남겨주었다.  그들은 자살과 사형

집행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 p43

 

  소설 『이방인』과 기고문 「단두대에 대한 성찰」에 반복되어지는 텍스트는 카뮈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양한 문학적 장르를 통해 표출(간접화법과 직설화법)하고 있다.  이 텍스트는 이후 카뮈의 작품들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자신의 신념을 글로써 반증하고 그 글을 통해 신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그의 행보는 이후 작품인 『전락』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방인>: 소설 「 ~나는 참여도 시키지 않고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나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은 채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때때로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피고입니까? 」 p131~132

 

<전락>:소설  「~재판관 겸 참회자라는 직업을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심판을 회피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우리들 자신이 누구보다도

먼저 자신을 단죄하고 있다는 점 아니겠어요?  그러므로 우선 단죄의 대상을 모든

사람들에게로 무차별하게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야 그 단죄라는 것이 벌써 좀 막연해질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야!  엉큼한 졸때기들, 희극배우, 위선자놈들!  그렇지만 동정도 가지요! 

네, 그래요,  정말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다 그렇습니다.」p133,136

 

 

부조리한 삶과 그 부조리에 항거하는 인간의 반항을 문자(소설, 희곡 등)를 통해 구체화시키고, 그렇게 반항하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참회자이자 재판관(보통 인간의 한계, 죽음이라는 공동의 운명을 지닌 운명 공동체로서의 인간)인 인간을 발견하고 그 인간의 자유와 그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 자신이 밝혀야할 문학적 진실이라 믿었던 카뮈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요나> 단편을 통해 카뮈가 말하려고 했던 '연대'와 '고독'의 의미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절대적 결백을 자신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사형선고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간 사이의 유일한 연대의식을 끊어놓는다.  

즉 죽음에 맞선 연대 의식 말이다.  그러므로 사형선고는 인간을 초월하는 

어떤 진리나 원칙이 의해서만 정당화돨 수 있다.」 p 67

 

 PS: 그가 만약 지금 이 시대를 살았다면 저술활동을 통해 어떤 신념들을 표출했을지가 궁금해진다.  요즘 여론을 형성하는 소셜테이너들 못지않게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독서노트 > 알베르 카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가수첩 II>:카뮈와 말로  (0) 2012.09.23
<작가수첩1>  (0) 2012.06.18
<적지와 왕국>  (0) 2011.02.21
<칼리굴라, 오해>  (0) 2011.01.04
<여행일기>  (0) 2010.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