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알베르 카뮈

<작가수첩 II>:카뮈와 말로

묭롶 2012. 9. 23. 21:36

 

   최근 개봉하는 영화들 중 감독들이 거장인 경우 제작노트를 미리 제작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된다.  <인셉션>,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뷰 영상은 영화 개봉전에 공개되어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사람들이 거장들의 제작노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영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단순히 재미의 있고 없음을 떠나 영화가 전하는 메세지의 수용을 넘어선 지적인 호기심의 충족을 원한다.  감독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한 이해와 감독의 메세지가 어떤 기법을 이용해 작품 속에 표현되어지는지에 대한 관람자의 지적호기심 충족을 위해 영화의 제작동영상이 영화와는 별도로 촬영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최근 관람자의 요구가 단순히 작품에 대한 관심을 넘어 감독의 세계관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로까지 확대된 영화장르와 비교해볼 때, 문학에 대한 작가연구는 지금까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작가의 작품에 대한 연대기적 연구와 작품을 쓰일 당시의 시대배경 연구, 그리고 작품의 기법 연구 등 한 작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각각의 개별 연구를 개개별로 읽고 이를 토대로 또 다시 총평을 해야하니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영화 감독들의 제작노트처럼 작가도 본인이 직접 자신의 작품세계를 말로 설명(하긴 작가들의 경우 말로써 할 수 없어서 글로 적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쉽고 좋은 일일까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각 개인들이 페스트에서 그 어떤 위대함을 발견하든간에 우리형제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건대 미친 사람이,범죄자 혹은비겁자가 아니고서야 페스트에 동조할 수는 없으니

페스트에 맞서서 한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행동지침은 반항이다.

~나는 페스트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고통스럽게 경험했던 숨막힘을,

우리가 겪었던 위협과 유적의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한다. 

~페스트는 그 전쟁 속에서 나름대로 반성과 침묵을 강요당했던 사람들의 이미지를

-그리고 정신적 고통의 이미지를제공하게 될 것이다.」P86, 89

 

  그런 의미에서 카뮈의 공책들은 카뮈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작가수첩II』를 통해 이제 막 삼십대에 접어든 카뮈가 이십대 출간된 작품의 일관된 주제였던 '부조리'의 표현을 넘어서 구체적인 행동의 단계를 구상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행동'에 앞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의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를 느꼈던 것으로 보여진다.  삼십대의 카뮈는 그 이전과는 다르게 체계적이고 선별적인 독서를 통해 자신의 이론의 정당성과 그 반대 논리의 허구를 밝히고자 한다.  

『페스트』는 바로 그러한 이론의 실제적 행동의 표출을 목적으로 쓰여졌다. 

 

 『작가수첩II』를 읽으며 내 눈을 사로잡은 단어는 '수정된 창조'였다.  '창조'라는 단어가 이미 기존의 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생성함을 의미함에도 굳이 '창조'라는 단어 앞에 '수정된'이라는 문구를 삽입한 것일까?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수정된 창조'라는 문구를 보며 난 카뮈가 이 문구를 공책에 적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수정된 창조'가 의미하는 바를, 나를 카뮈에게로 인도해 준 장 그르니에의 『섬』에 바치는 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새로운 땅으로 들어가고 있는 듯하였고, 우리 도시의 높은 언덕빼기에서

내가 수없이 끼고돌던 높은 담장들에 둘러싸인 채 그 너머로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인동꽃 향기만을 건네주던, 가난한 나의꿈이었던 저 은밀한 정원들 중  하나가 마침내 내게로 열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 무엇인가가, 그 누군가가 나의속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꿈틀거리면서 말을 하고 싶어하고 있었다.

새로운 탄생은 어떤 단순한 독서, 어떤 짤막한 대화한마디만으로도

한 젊은이에게서는 촉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 『섬 』p10~11

 

  이 서문에서 '새로운 땅', '은밀한 정원', '새로운 탄생'은 카뮈가 여러차례 언급한 '수정된 창조'가 무엇인지를 짐작케 한다.  그건 새로운 감수성, 즉 기존의 언어체계나 장르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기존의 시각으로 발견할 수 없었던 지점을  발견함을 의미한다.  기존 소설과 다른 독특함을 발하는 그의 소설들의 아우라가 '수정된 창조'라는 새로운 감수성으로의 시도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거울 앞에서 살고 죽을 것"이라고 보들레르는 말했다. 

 ~거울 앞에서 사는 것이야 모든 사람이 다 하는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의 주인이 된다는 것, 바로 이것이 어려운 점이다.」p20

 

  또한 '수정된 창조' 만큼이나『작가수첩II』에서 눈에 띠는 부분은 1942년부터 1951년까지 카뮈가 읽었던 책들에 대한 발췌와 카뮈 자신의 언급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카뮈가 시대별로 읽었던 책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아볼 필요성을 느꼈고 그 과정에서 카뮈가 '앙드레 말로'의 작품에 집중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십대에 만난 장 그르니에가 '부조리'를 표출하는 기폭제가 되었다면, 말로는 카뮈의 삽십대를 채운 화두인 '반항'의 이론적 논리와 신념의 근간을 제공했다.  말로는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하며, 그 과정을 글로 써 나갔다. 

 

「가증스러운 것은 자신이 한 번도 체험하지 않은 것을 말하고 이용하는 작가다. 

 ~창조에서 실제 행동까지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의 상상과 자신의 행동 중간 지점에 있다. 

그는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묘사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이 글로 쓰는것을 실제로 살 수도있다. 오직 행동만이 그를 제한하게될 것이며

그는 행동을 한 사람이 될  것이다.」p24

 

「<페스트>.  모두가 투쟁한다-각자 자기 방식으로. 

유일한 비겁함은 무릎을 꿇는 것이다」p133

 

 카뮈가 헤겔주의자나 마르크스, 레닌주의, 관념주의자들을 멀리했던 이유는 말로의 영향이 크다.  행동하지 않고 이념만으로 무장한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아래서 혹한에 굶주려야 하는 수천 수만의 인민들을 보며 카뮈는 분노했을 것이다.  그의 신념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존중받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인정받는 데 있었다.  그러한 신념을 위해서라면 그는 어떠한 이데올로기에도 동조할 수 있었고, 이러한 그의 행동은 이데올로기주의자들의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말로가 카뮈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했고, 그와의 인연도 깊다.  카뮈가 파스칼

 피아에게 건낸 『이방인』원고를 피아가 롤랑 말로를 거쳐 그의 형 앙드레 말로에게 건냈고, 이후 『시지프 신화』도 말로에게 전달됐으며 그해 12월 8일 갈리마르 출판사와

『이방인』의 계약서를 작성하며 이 출판사와도 인연을 맺게 된다. 

 

 카뮈와 말로의 관계에 집중하던 중 나는 샤르트르와 카뮈의 결별의 원인이 헤겔주의에 대한 인식차뿐이 아니라 말로도 원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섬』을 통해 카뮈를 알게  되었던 나는 『작가수첩II』를 읽으며 다시 『섬』에서 출발해서 '말로'라는 또 한 명의

인물을 알게 되었다.  카뮈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그에게 다가갈수록 길은 여러

갈래로 세분화되고 나는 그 각각의 길을 모두 걸어가봐야겠다는 의욕과 즐거운 흥분에 사로잡혔다.  나의 감정은 카뮈를 처음 접했던 때의 감동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의 작품을 읽기 시작하고 다시 그를 처음 만났던 글을 읽으며 그에게 조금 더 다가가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