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묭롶 2013. 1. 15. 16:15

 

사진출처: http://cafe.daum.net/BUSLIFE

 

   살다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게 닭짓을 하는 날이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다시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되는 경우를 저지르고 또 복습하고 자학하기도 한다.

그 닭짓의 대부분은 이 죽일 놈의 급한 성격 탓이다. 

 

  어제 또 닭짓을 했다.  사건의 발단은 집에 몇 분이라도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출산 전에는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하나도 안 중요했는데, 집에 기다리는 자식이 생기고 보니 도착시간에 매번 목을 매게 된다.  버스를 두 번 환승해서 퇴근을 하는데, 환승을 하려해도 시간대가 안 맞아서 못 타던 버스가 평소보다 빠른 시간에 내 앞에 도착했다.  순간 갈등했다.  그냥 평소대로 갈 것인가, 아님 이 차를 타고 가서 집으로 가는 버스가 세대 오는 정류장으로 가서 환승을 할 것인가.

 

  고민도 잠시, 난 어느새 버스에 올라타 있었다.  평소보다 집에 십분은 일찍 가겠다는 기쁨에 째지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정거장에서 출입문이 열리고

    어....긍께...뭐시냐..그 거......(할아버지)

   (부부인 듯한 할머니)거..있잖여...그.....천...뭐시기..

이렇게 2분 동안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노부부께서 노력하신 결과 목적지에 경유함을 확인후 버스에 탑승을 하셨고, ㅜ.ㅡ 2분이면 그렇잖아도 내려서 횡단보도를 두 개나 건너야 환승버스를 탈 수 있는 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역시나 몸에 있는 살들을 죄다 공기저항 속에 출렁이며  멍멍이처럼 헉헉대며 정류장에 도착하자...이미...내가 환승할 버스 세대는 직전에 떠난 참이었다.

 

  지쟈스~~~~!!!

난 잠시동안 또 고민을 했다.  이대로 기다릴 것인가, 여기에서 다시 빨리오는 버스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 다른 버스로 환승을 할 것인가.

 

  역시 급한 성격탓에 짧은 고민과 동시에 난 두 정류장을 거슬러갈 버스에 탑승해있었다.  환승을 위해 버스에서 내려 건너편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헉!!! 이건 또 왠일.... 내가 타려던 버스번호가 정류장에 붙어있는 노선표에 없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타려고 했던 버스는 내가 어리둥절 하는 동안 쌩~ 하고 지나가고,

내가 착각을 했나 싶어 나는 다시 사거리를 거슬러 올라가봤지만, 역시 그곳도 아니었고 이쪽저쪽 여러번 횡단보도를 건너는 동안 시간은 흘러 원래 기다렸으면 탔을 버스도 놓치고  ㅜ.ㅡ  그런데 알고보니 정류장에 붙은 노선표에만 표시가 안되어 있었고 세워져있는 노선표에는 타려던 버스번호가 떡 하니 붙어 있는 것이었다. 

 

  좌절...또...좌절....길바닥에 내버려진 내 아까운 시간... 그리고 오지 않는 버스...아..버스.....ㅜ.ㅡ

내가 한 닭짓을 누굴 원망하랴 싶으면서도, 정말 화가 났다.  막 씩씩거리다가 별 수없이 택시를 탔다.  (평소 택시 탈 돈이면 쏘주를 사먹겠다는 주의인데ㅜ.ㅡ 어쩔 수 없었다.  쇄꽹이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ㅎㅎㅎ 끝까지 나의 퇴근길은 험난했다.  기사님이 탑승 후 얼마되지 않은 시점부터 가스를 뿜기 시작하셨다.  나름 티를 안내려고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셨지만, 이미 뒷좌석의 나는 호흡곤란 수준이었다.  평소보다 늦어버린 퇴근에 택시에서 20개월 된 딸래미를 봐주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드려보니 생태탕을 끓여놓으셨댄다.  

 

  음.. 생태탕!  엔.. 쏘준데... 오늘 스트레스가 많았으니 딱 한 병만 먹자....

소주 한 병을 손에 달랑달랑 들고 들어가며 이미 기분은 스트레스고 뭐고 뭐 그런거 없이 마냥 좋았다.  물론, 소줏병을 본 엄마의 표정은 뭐,,, 한숨을 쉬시며 어쩔 수 없다였지만....

딸래미를 신나게 목욕시키고(안 씻으려고 반항, 반항) 피부가 안 좋은 딸래미 온 몸에 로션을 세겹으로 치덕치덕 바르고(안 바르려고 ㅜ.ㅡ)  옷 입히고(안 입으려고 반항×100) 아가 옷 빨고, 가습기 씻고 젖병물까지 다 처리하고나니 이미 8시가 되어있었다.  그제서야 생태탕을 데워 15분만에 소주 한 병과 함께 맛나게 먹었다.

맛있냐?  아조 냄비까지 삼키겄다.(엄마..혀를 차며)

(먹는게 거의 게걸수준. 접신의 경지인 나는) 응 ... 맛나.. 죽음이야.

  먹은걸 치우고 나서 베란다에 앉아 일요일에 청소한 후 못 빤 걸레들을 빠는데

그런 내 모습을 딸아이는 거실 유리창 너머로 장난스레 쳐다보았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숨바꼭질하듯 나 잡아봐란 식으로 이쪽저쪽에서 출몰하는 딸의 모습과 그런 손녀를 지켜보는 친정엄마를 보며 불현듯 어린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응.. 얼마 못살아.."

아빠가 대박 부도를 내고 이 세상을 버리고 모진 시어머니와 네명의 자식과 빚을 몽땅 물려받은 엄마는 내가 아프기 시작하자 병원 대신 이상한 점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아프면 걱정해주고 병원으로 데려가주길 바랐는데, 점쟁이가 하는 얼마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듣는 엄마의 표정이 왠지 안도하는 듯 보여서 마음이 이상했다.

동물의 세계에서 나머지 자식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약한 자식을 둥지밖으로 떨어뜨리는 어미 독수리를 보는 것처럼, 그 마음이 과연 독수리의 마음과 같은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커가는 내내 내 가슴을 짓눌렀다.

 

  동생들은 차라리 엄마에게 그런 내 맘을 털어넣고 속시원하게 털어버리라고 말하지만 엄마에게 그 대답을 듣는게 무서워 그 기억이 떠오를때마다 그냥 가슴에 묻어버렸다.  그런데 걸레를 빨며 유리창 너머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딸아이와 그런 내 딸을 뒤에서 지켜보는 친정엄마를 보자니, 왠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자식 낳아 키워보면 그 마음을 알꺼라는 그 말에 내가 공감하는 날이 오다니....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부모의 삶을 이해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읽지 않고 꽂아두었던 부모님의 삶이란 책을 어느 날인가 펼쳐서 읽는것만 같다.  ㅎㅎㅎ. 언젠가 내 딸이 내 삶을 읽게 된다면 장르의 다양함에 깜짝 놀라지 않을까.  장르는 스텍터클 서스펜스 호러 액션 에로 판타스틱 스릴러를 총 망라한다.  여기에 뭐가 더해질지 조금은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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