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얼음꽃

묭롶 2011. 1. 18. 17:47

 

 

  지난주부터 연일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거리 곳곳에는 그동안 내린 눈이 한구석에서 녹을줄 모르고 단단한 얼음이 되어갔다.  주택에 사시는 엄마는 통화를 할때마다 추우니까 보일러 아끼지 말고 떼라고 했는데, 엄마랑 사는 여동생에게 물어보니 숫제 보일러는 장식품된지 오래라고 했다.  뉴스에서 무의탁독거노인들이 겨울한철을 전기장판 하나로 난다는 기사를 보며 어떻게 살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내 엄마가 그리 사신다니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그 뒤로 보일러 좀 때라고 성화를 해댔지만, 엄마는 내 성화보다는 기름값이 무서우셨던지 요지부동이셨다.  그러던 중 올 겨울들어 가장 춥다고 예고된 16일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씻으려고 보일러를 틀었는데 보일러가 작동을 안한다는 말이었다.  마침 엄마가 외삼촌 아들 결혼식 때문에 집을 비우고 서울에 가신 참이었다.  일요일이라 당장 씻어야 월요일에 출근을 할 텐데, 물을 데워서 씻고 싶어도 물도 안나온댄다.  급한대로 동생을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다.  동생은 오자마자 아파트가 너무 따뜻하다며 좋아했다.  엄마가 내려오기시기전에 보일러를 어떻게든 고쳐봐야겠다는 생각에 엄마한테 전화를 했는데, 엄마는 막상 태평이셨다.  내려와서 본인이 사람을 부르겠다 하셔서 별 수 없이 우리집에서 씻고 머리를 말리고 있던 동생에게 자고 가라고 했더니 이놈의 지지배가 그 냉골도 집이라고 내일 출근할 때도 불편하고 평소에 밤에 잘때는 보일러 안 틀고 그냥 자는게 익숙해서 괜찮다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월요일 오후 4시경에 집에 돌아오셨다.  집에 들어서자 마자 선풍기형의 온풍기를 틀고 전기장판에 불을 넣고, 드라이기로 부엌 씽크대를 녹인다음, 큰 들통에 물을 받아서 가스렌지에 물을 끓이셨단다.  그리하고는 퇴근한 여동생이 씻으라고 들통에서 뜨거운 물을 덜어서 욕실로 옮겨주고 욕실 앞에 전열온풍기까지 틀어주고는 머리감는 동생을 지켜보셨다고 한다.  도대체 보일러도 안들어오는 집에서 어떻게 주무실려고 하냐고 성질을 무지하게 내며 당장 엄마 모시고 우리집으로 오라고 전화를 했더니, 동생은 어매가 따신물 받아주고 온풍기 틀어주니까 무쟈게 좋다고 어매가 최고라고 그저 웃는다.  하긴 엄마를 4일만에 보니, 서른을 훌쩍 넘기고도 어매가 그리 고팠나보다.  하긴 나도 엄마가 광주에 안계신 4일이 너무 길었다.  괜히 맘도 허전하고 따뜻한 아파트에 있으면서도 어딘지 한구석이 시린 것만 같았다.  ㅎㅎㅎㅎ 보일러는 A/S직원이 와서 보고는 완전히 꽁꽁 얼었다고 이 상태로는 못 고친다고 그냥 자연스럽게 녹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새로 교체를 해야한다고 했단다.  그 말을 전해 듣고 또 화부터 내는 나에게 "글믄..으째야.. 지가 녹겄지야."하고 엄마는 웃기만 하셨다.  그렇게 항상 엄마는 웃으셨다.  매년 겨울이면 새벽 칼바람에 쓸려 얼굴에 동상이 걸려 온통 빨갛고 푸르게 얼망덜망 덩어리가 진 얼굴을 하고서도 "그럼 어쩐다냐"그러면서 웃으셨다.  "뭐가 맨날 그게 어쩐다냐?"냐고 화를 내고 성질을 내도 "그럼 웃어야지 으째야"그러고 마셨다. 

 

  겨울이면 온통 얼음이 든 엄마의 얼굴이 그나마 올해는 동상을 피해가게 되었다.  작년 11월 초 오랜 우유배달로 탈이 난 엄마의 무릎 연골이 찢어져서 수술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우유배달을 그만두게 되었다.  당신이 그만두면 우유먹던 사람들은 어떡하냐며 계속 하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다행히 때맞춰 찾아온 우리 아가 덕에 엄마를 설득할 수 있었다.  엄마는 배달을 그만둔 후로도 최근까지 새벽에 잠을 잘 못이루신다.  30년 가까이 초저녁에 주무셔서 새벽1시 경에 일어나 우유배달을 했던 터라 바뀐 생활에 몸이 적응을 못한 탓이었다.  올해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려서 눈이 내릴때마다 속으로 엄마가 일을 그만두신게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감에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던지, 만나기만 하면 춥기 전에 일 그만두시길 얼마나 다행이냐는 얘길 하곤 했다.  (매년 겨울, 저녁무렵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엄마 걱정에 밤부터 아침이 되는 시간까지 얼마나 자주 잠에서 깨고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

 

사진출처: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6&articleId=36967

 

 

  며칠전 아침 출근길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분리수거함 쪽으로 갔는데, 작년 여름에 내가 계란 노른자를 몇 번 준적이 있던 새끼 고양이가 추위에 얼굴이 퉁퉁 부어서는 어른 고양이가 되어 쓰레기 봉투 위에 옹삭스럽게 발을 올린 채 움추리고 있었다.  바닥은 온통 얼음이고 얼마나 발이 시려우면 저렇게 쓰레기 봉투위에 올라가서 꼼짝을 못하고 있나 싶어 마음이 짠해졌다.  그 추운 날씨에도 용케 죽지않고 살아서 얼굴을 비춰주니 반갑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맘이 심란해졌다.  저 고양이 발에도 우리 엄마 얼굴을 겨울마다 찾아왔던 얼음이 들었을까 싶어서 바람에 시려서 눈까지 제대로 뜨지 못하는 고양이가 마음에 맺혔다. 

그런 마음을 따뜻한 곳에서만 생활하는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날이 추워지면 엄마가 생각나고, 엄마가 생각나면 그 새벽에 엄마와 같이 일어나서 칼바람에 쓸리며 사는 목숨들이 떠오르고, 괜히 따뜻한 곳에 있는 내가 미안해지던 그 마음...... 날씨는 풀릴줄 모르고 계속 춥지만 엄마의 얼굴과 고양이의 발에 찾아와 내 가슴에 박혀버린 그 얼음이 있어 나는 나보다 추운 곳에 살아 있는 생명들에 대한 마음을 잊지 못하고 매번 가슴이 아픈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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