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밀란 쿤데라

<웃음과 망각의 책>밀란 쿤데라를 만나다.

묭롶 2012. 10. 11. 19:41

 

 

  예술가들은 제각각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이 세상을 재현해 보인다.  작가는 글로써, 화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음악으로 자신의 삶과 인간의 삶, 그리고 시대상을 그 안에 담아낸다.  그 창작의 방식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이를 크게 구분짓는다면 직접적 방식과 간접적 방식으로 나눌 수 있겠다.  예를 들어 회화의 경우 세밀화나 풍경화, 인물화 등은 직접적 묘사에 해당되지만, 피카소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회화기법은 간접적 묘사에 해당될 것이다.  문학의 경우에도 기사와 수필, 기행문 등은 직접인 방식을 소설이나 시, 희곡의 경우는 간접적 방식을 택한다.  『웃음과 망각의 책』은 그 중간에 위치한다.

 

  작중 작가였으나 체제에 반하는 행동을 한 이유로  저작활동을 금지당한 채 건설직 잡부가 된 미레크가 몰래 쓰는 점성술에 관한 기고문은 이 책이 취하는 포즈의 직접적인 상징이다.  금지된 것을 표현하는 우화에서 비롯되는 서글픈 웃음(자조적인)이 이 책을 가득 채운 정서이다.  그는 작중에서 이 자조적인 웃음이 자아내는 정서를 '리토스트'라고 명명하며 이 단어를 체코인만이 갖는 고유의 정서라고 말한다.  이는 쓰는 것을 금지당했던 쿤데라의 직접 경험을 여러 인물과 여러 개의 이야기로 풀어쓴 형태로  사실 이 책은 '리토스트'에 관한 변주곡이다.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나는 밀란 쿤데라라는 세계의 초입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이 작품 이전에 내가 읽었던  그의 책들은 단순히 쿤데라라는 거대한 섬을 관람용 선박에서 멀리 관람한 것에 불과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들이 나를 원무에서 축출한 뒤로나는계속해서 떨어졌고 지금까지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더 멀리, 더 깊이 떨어지도록 나를 다시 한 번

밀었던 것이다. 내 나라에서 점점 더 멀어져 천사들의 끔찍한 웃음소리가 나의 모든

말을 뒤덮어 버리는 세상의 황량한 공간 속으로 떨어지도록 말이다. 세상 어딘가에

사라가, 유대인 처녀 사라가, 나의 누이 사라가 있다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어디서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p147

 

 

  쿤데라의 작품 세계는 원래 자리에서 강제로 뿌리 뽑힌 채 다른 곳에 옮겨 심어진 나무(프랑스로 망명한 이후, 작품활동을 프랑스어로 하며 자신에 대한 일체의 주해나 해설을 거부하는)를 연상시킨다.   작가의 삶은 작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쿤데라의 경우는 그 창작의  진원지가 체코의 역사가 그의 삶에 미친 영향에 있다는 점에서 나는 얼마전부터 그의 책을 읽기 전에 그의 삶을 먼저 알아야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년전쯤 관람했던 영화 <더 콘서트>가 떠올랐다.

  체제의 제도에 순응하지 못하고 지휘봉을 빼앗긴 채 날벼락처럼 청소부로 내몰린 한 남자가 있다. 지휘봉은 꺾이고 현재는 청소용 밀걸레대를 잡고 있지만 연주를 마치지 못하고 끌려내려왔던 그날의 공연은 단 한 순간도 그의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  체제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로 오케스트라의 단원에서 내몰려 제각각 원래의 자리와는 동떨어진 위치에 놓인 현재의 그들이 뭉쳐 프랑스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펼친다는 내용이 영화 <더 콘서트>이다.

「1927년, 체코의 팝가수 카렐 클로스가 외국으로 떠날 때 후사크는 겁이 났다. 

그는 곧 프랑크푸르트로 그에게 사적인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카렐, 우리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제발 부탁드리니 돌아오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할 것입니다. 

우리도 당신을 도울 것이니 당신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p339

 

  후사크가 망명하려는 팝가수 카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을때 글쓰기를 금지당한 쿤데라는 얼마나 억울하고 어이가 없었을까.  다른 어떤 예술 장르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던 냉혈한이 팝가수에게 매달리다니, 아마 쿤데라는 위 사진처럼 후사크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지 않았을까?

 

  글을 쓰는 작가에게 쓰는 것을 금지하고, 지휘자에게 지휘를 금지한다면 그들은 현실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자리매김해야할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아무도 없는 갈대숲에 가서 외쳐야 할까?  영화 <더 콘서트>에 나오는 지휘자처럼 단원들과 함께 프랑스로 밀입국을 해서라도 연주를 하고 싶고, 작중인물 미레크처럼 점성술란에 가명으로라도 기고를 해야만 하지 않을까?

「미레크는 공산당이 그러듯, 모든 당이 그러듯, 모든 민족이, 인간이 그러듯 역사를

다시 썼다. 사람들은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다고 외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미래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무심한 공허에 불과할 뿐이지만 과거는 삶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얼굴이 우리를 약 올리고 화나게 하고 상처입혀, 우리는 그것을

파괴하거나 다시 그리고 싶어 한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바꾸기 위해 미래의 주인이

되려는 것이다.」p49

 

 2009년도에 체코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는 체코에 대해 복속(강제로 강대국의 속국이 된)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며 민족적 저항정신을 찾아보기 어려운 나라라고 말했다. 오백년 가량을 함부르크 왕조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체코는 2차세계대전 이후 패권을 잡은 舊소련에 의해 공산화되었다. 체제가 공산화 되면서 정권을 쥔 공산당은 체코의 역사학자를 쫓아내고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원래 자리에서 내몰리거나 숙청했다. 체코의 역사, 문화와 언어는 공산당에 의해 사라지고 왜곡되었으며 훼손되었다. 이를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쿤데라는 '리토스트'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어떠한 실체를 놓고도 그 실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못하고 에둘러 표현하는 사람들의 모습의 이미지가 빚어내는 '웃음'과 지워버렸지만 잊혀지지 않고 그림자로 남은 과거가 나아내는 씁쓸함이 『웃음과 망각의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존재하면서도 동일한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심리를 펼치는 쿤데라의 작중 인물들의 심리와 자신을 제명한 파벨 제마닉을 응징하고자 하는 『농담』의 루드빅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쿤데라의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현실에 발 딛지 않는 의식의 흐름과 모종의 사건보다는 작중인물이 느끼는 정서를 축으로 흘러가는 서사의 특징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변주에서 베토벤은 탐험할 다른 공간을 발견했던 것이다.  변주는 새로운 여행에의

 초대였다.  ~외부 세계의 무한이 우리를 벗어났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러운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다른 무한을 놓쳤을 경우에는 죽도록 자책한다. 

~우리가 사랑한 존재를 놓치는 것보다더 견디기 힘든 일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던 베토벤이 원숙기에 이르러 가장 좋아한 형식이   변주였다는 것,

그 16박자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내면 세계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p308~308

 

  베토벤이 완숙기에 변주의 가능성에 집중했던 것처럼, 『웃음과 망각의 책』은 쿤데라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보여진다.  변주는 기존의 질료를 보편과는 다른 관점에서 다루어 새로운 형태로 변화 확장시키고 그 발견을 받아들이는 방법론이다.  쿤데라는 변주라는 형식을 빌어 작중 파르세의 장례식에서 터져나온 웃음처럼, 사고의 확장과 전복을 통해 현실에서 자신의 자리를 자기 스스로 인정받고자 한다.  이 책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독자에게 주는 비밀의 정원의 열쇠와도 같다.  이제 그의 정원의 입구에 들어선 나는 그의 다른 작품을 다른 시야에서 접근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