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밀란 쿤데라

<정체성>

묭롶 2012. 8. 11. 00:37

 

  나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대상을 투영하는 물체를 필요로 한다.  나를 인식한다는 행위를 위해서 나는 인식의 도구로서의 타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내가 '나'라는 개별체로 존재하기 위해 타자를 필요로 한다는 건 아이러니다.  과연 나를 나로서 인식하기 위한 타자가 없는 난 어떤 존재라는 말인가? 

 

「"당신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내가 착각을 했다는 생각."」p99

 

   작중 인물 샹탈은 대외적으로 성공한 이미지의 인물이다.  그녀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고통을 겪은 이후 자기 자신을 성찰한 인물로, 대외적으로 비춰지는 자신의 이미지와 자신의 본래적인 모습을 구별하여 이원화할 줄 아는 인물이다. 

 

  밀란 쿤데라의 전작의 인물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과 대외생활을 구분짓지 못했던 것과 비교해봤을 때, 샹탈은 지극히 이성적이다.  샹탈은 자아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타인의 존재를 언제나 의식하는 인물로써, 전작의 인물군이 자신의 본성과 행동에 이끌려 어떠한 결과를 이끌어냈던 것과는 상반되게 자신의 감정의 향방을 이성적으로 결정지으려 노력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의 방황하는 인물군이 『불멸』에서 운명이라는 문자반 위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말 역할에 족했다면  『정체성』에서는 끊임없이 타자를 의식하며 행동하는 현대인의 군상을 샹탈이라는 인물을 빌어 그려내고 있다. 

 

  작가인 밀란 쿤데라가 이 작품을 빌어 말하는 바와 같이 현대인은 타자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정체성을 지닌 인물군이다.  그러한 인물군 속에서 개인의 욕망은 하나의 기호로 존재할 뿐, 보편성의 세계로 표출되지 않는다.

 

 

  그러한 개인의 기호화된 욕망을 표출하기 위해 작가가 표현한 소설적 방식은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차별성을 갖는다.  이미 쿤데라는 『불멸』을 통해 운명이라는 기호반 위에 하나의 말로 존재하는 인간이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개별자로서 자아를 드러내고자 했던 인간의 한계성을 하나의 몸짓으로 구현한 바 있다.

 

「그녀는 수영복 차림으로 풀 가장자리를 따라 수영 강사를 지나쳐 사오 미터쯤 갔을 때 문득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했다.  ~그 몸짓 덕택에, 시간에 구애되지 않는 그녀 매력의 정수가, 그 촌각의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때 나의 뇌리에 아녜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p11 『불멸』

 

「갑자기 그녀가 우리 테이블 쪽으로 머리를 돌리더니, 팔 하나를 허공으로 날렸다.  그 동작이 너무도 경쾌하고 너무도 매력적이고 너무도 잽싸서 마치 금빛 풍선 하나가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날아올라 문 위에 걸려 머무는 것처럼 보였다.」p515 『불멸』

 

  그 몸짓을 목격하는 누군가에게는 그 자신에게 향하는 개별적인 독특한 의미의 몸짓으로 식별되지만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 무한한 시간동안 반복되어진 몸짓임이 확인되는 그 순간 우리는 인간만이 갖고 있다고 믿는 인식과 감수성의 실제를 의심하게 된다.

 

  어찌보면 다른 누구보다 많이 알고 오래 산다는 의미는 절대성의 의미에 대한 의심에서 확인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은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일반 소설들이 사건의 진술과 묘사를 서사의 축으로 삼는 것과는 별개로 이 작품은 작중 인물의 사고와 그 변화 과정을 작품 서사의 축으로 삼는 대별성을 갖는다. 

 

  제임스 조이스와 윌리엄 포크너 등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처럼 작중 인물들의 사고를 축으로 서사가 전개되는 것이다.

각각의 인물들의 사고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서사는 그 인물들의 사고의 괴리와 허상을 충돌과 상실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내가 나에 대해 갖는 그리고 내가 타자에 대해 갖는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첫 번째 편지를 우편함에 넣을 때만 해도 다른 편지를 보낼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반응이 어떠할지 미리 상상해 보려고 들지도 않았다. 

굳이 상상을 했다면, 만약 그녀가 그에게 편지를 보여 주며

"이봐!  남자들이 나를 아직은 잊지 않았어!"라고 말하면 시치미 떼며

낯선 이의 찬사에 자기 찬사까지 덧붙이리라는 상상 정도였다.  」p107

 

  밀란 쿤데라의 작중 말처럼 어쩌면 현대인들은 '두 얼굴을 지닌 부역자'인지도 모른다. 

 

「두 얼굴을 갖는 것, 그것이 정말 승리일까?  ~그러나 그녀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굳이 정치적 용어를 빌리자면 부역자다.  혐오하는 권력에 자신을

동화하지는 않으면서 권력을 이용하고 권력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위해 일하고 어느 날 재판관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자기에겐

두 얼굴이 있다고 핑계를 댈 부역자.」p126

 

만약 누군가 나에게 나의 진짜 얼굴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 또한 이건 사회적인 인물이고 이게 내 진짜 얼굴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런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