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김영하

<오직 두 사람>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속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묭롶 2018. 12. 1. 22:55

  2004년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  이후 출간된 2010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 이어 무려 7년 만에 『오직 두 사람』이 출간되었

으니 작가 김영하는 다작을 하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다.


  그의 이번 단편집에 수록된 2014년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옥수수와

나>의 작중인물은 십일 동안 무려 천 페이지가 넘는 작품을 신들림과

유사한 상태에서 써내려갔는데 작품 하나 하나가 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 보면 김영하는 작품 하나를 쓰는데 맨정신? 아니

온정신을 매진하는 것 같다.


  그가 오랜시간 고민하고 써내려간 그의 소설을 쉽게 읽는 나는

글이 쉽게 읽힌다고 해서 그 글이 쉽게 쓰인 글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수능 만점을 맞은 학생을 찾아 인터뷰를 한 기사의 제목이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해서 정말로 공부가 가장 쉬웠던 건 아닌 것처럼

쉽게 읽히지만 그 문장이 지닌 무게에 가슴이 아파오는건 나만의

일일까?


  오랜 시간을 지나 다시 만난 김영하는 기존의 작품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사람의 의지로 제어할 수 없는 바다의 세계를

오래 경험한 뱃사람이 지닌 침묵처럼 그의 문장에는 현실의 무게감이 얹혀 있었다.  기존 김영하의 문장이 지닌 재기 어린

아이러니와 현실의 이면을 꿰뚫는 통렬함은 이제 현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보통 사람들의 동병상련에

맞닿아 있다. 


「인생이라는 법정에선 모두가 유죄야.  」  <최은지와 박인수>  p230


  부모와 학교가 시키는 대로 학창시절 내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사회에 나와 그야말로 처절한 과정 끝에 직장을 잡고

운좋게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까지 한 다음 투자가치가 있다는 집을 80% 대출을 받아 구매했는데 아파트 시세는 하락하고

담보대출 금리는 올라서 내가 아파트랑 결혼을 한건지 빚이랑 결혼한건지 알 수가 없는 답답한 심정을 문장으로 풀어낸

것이 이번 김영하의 소설이라고 표현한다면 적확한 표현일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큰 차이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  지금은 날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말야.

물론 그 마음이 진심이란 것 알아.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그게 꼭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어."  」  <인생의 원점>  P92


  그전까지 김영하의 소설이 삶의 아이러니에 주목했다면 2014년 발표한 단편 <아이를 찾습니다> 이후의 작품은 이율

배반적인 삶에 주목한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 아닌 도대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듯한

그의 작품을 읽으며 나는 소설문학이 지닌 특징인 추체험에 안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그 모든 상황들 중 그 어느 하나가 내게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그저 현재의 삶이 언제 쫓아와 채무를 독촉할지 모르는 채권자를 겁내고 있는 빚쟁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이 지금 당장 와장창 깨진다고 해도 이상할게 하나도 없는 것이 바로 지금 나의 삶이라는

깨달음이 주는 씁쓸함이 어쩌면 보편적 삶의 정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삶은 비극이 지닌 비정상적인 에너지처럼 초월의 의지를 지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삶이

충족되고 원하는 무언가가 대부분 이뤄지는 것이라면 지금과 같이 처절한 노력과 안타까움 그리고 탄식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의 단편 <신의 장난>처럼 신은 인간의 삶을 지옥처럼 설계해놓고 뭔가 그것을 돌파해나갈 수 있는 힌트가

있는 것처럼 암시를 남김으로써 그 2%의 희망을 이유로 그 지옥을 돌파해나가려는 인간의 무모한 노력을 지켜보지도

않고 그냥 잊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아이를 찾습니다>에서 11년전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가 잃어버린 아이를 되찾으면 다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거라

믿는 것처럼 인간은 부질없다는 희망 앞에 자신의 온몸을 부나방처럼 내던진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한 부질없는

부나방의 몸짓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인간의 삶.............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 이제 그거 아시잖아요?"

~"글쎄,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옥수수와 나>  P113~114


  상황이 이쯤되면 현실을 맨정신으로 견디는 것이 힘들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옥수수와 나>에서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가 겪는 불안정과 현실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청년들이 겪는 <신의 장난> 속 방탈출 과제 등은

현재를 사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불안의 정서를 가장 극적으로 표출해내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헬조선에서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거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말 대신 무언가를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직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바로 그 지점에 2014년 이후의 김영하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