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김영하

<검은 꽃>대한민국을 만들고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나라의 국민들이다.

묭롶 2018. 11. 24. 13:40

  김영하의 『검은 꽃』을 읽으며 2009년 9월 파리 드골공항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2009년 9월 나는 체코로 신혼여행을 갔다.  물론 여행사를

싫어했던 나는 자유여행으로 그 당시 직항이 없던 체코로 떠났다. 

  체코에서의 신혼여행은 큰 탈 없이 지나갔지만 문제는 귀국을 위해

경유 비행기 티켓팅을 해야 하는 파리 드골공항에서 발생했다. 


  체코에서 KLM을 타고 파리드골공항에서 아시아나로 갈아타는 여정을

위해 통관절차를 밟던 중 나는 어이없는 일을 겪게 되었다.

  경유 비행기의 티켓팅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입국

심사대에 선 내게 파리 드골 공항의 직원은 내게 물었다.  "국적이

어떻게 되십니까?"  난 순간 당황했다.  이미 대한민국 여권을 제출했

는데 이 무슨 황당한 질문인가 싶었다.  나는 심사관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내게 재차 물었다.  너 중국인이니?  아니오 나는 한국사람입니다.

너 그럼 일본인이니?  아니오 나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갑자기 신혼여행을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자유여행을 한 내 자신을

굉장히 자책하게 되었다.  나는 말했다.  나는 Korean이라고  그랬더니

그 심사관은 Korea를 모른다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조국은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라고 말했다.  알고도 되묻는

그의 태도에 나는 속이 있는대로 뒤집혔다.  그 순간 나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내 신랑은 다혈질이었고

그 순간 내가 난리를 치면 경유 비행기를 놓치는 상황이었다. 


  그순간 나는 이를 얼마나 앙다물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순간 절대로 프랑스라는 나라에 내가 다시 발을 딛는 일을

없을거라는 다짐을 했다. 


  나의 국적은 Republic Korea 쉽게 South Korea 이다.   내가 신혼여행에서 귀국을 위해 돌아오는 길 입국 심사관에게

내가 북한이 아니라 남한 국적의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르짖어야 했을 정도로 우리 나라는 그렇게 약한 나라였을까?

지금도 도장 하나를 찍어주는 걸 특권의식으로 느끼며 나를 원숭이 보듯 지켜보던 파리 입국심사관의 눈길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2009년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을 지닌 나의 처우가 이러했는데, 1905년 나라 같지 않은 나라의 국민이었던 멕시코

이민자들의 처우를 말해 무엇할까.   한편으로  이 나라를 지켜온 것은 나라의 이름(국적)이 아니라 바로 이 나라를 지켜온

국민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군으로 시작된 한민족의 역사는 통일신라 시절 동족상잔의 역사가 있었지만

그대로 고려, 통일신라, 조선으로 이어졌다.  나라의 명칭은 고구려, 고려, 통일신라, 조선으로 바뀌었지만 그 나라를

이루는 국민의 정체성은 언제나 하나였다. 


  1905년 저마다의 사정으로 멕시코 에네켄 농장으로 향하는 배에 승선한 1033명의 조선인들은 그저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인간의 대접을 받기를 바라는 그들을 기다린 현실은 가축과 같은

것이었다.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그들 나름의 살 길을 모색한다.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은 1905년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 파견된 1033명의 조선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1905년에 멕시코의 에네캔 농장에 이주한 조선인들과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삶이

크게 차이가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1905년 멕시코에 이주해서 갖은 고초를 겪은 한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고 감독할

나라가 없음에 가슴아파한다. 


  하지만 1997년의 IMF를 겪은 나는 나라가 있어도 크게 나라가 없음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 병자호란

당시 임금은 수도를 버리고 강화도로 도피를 했다.  그당시 임금이 없는 수도를 지키고 오랑캐에게 유린당한 것은

바로 민초였다.  임진왜란 당시 수도를 향한 왜군의 발목을 묶은 것도 바로 이 나라의 백성들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통해 이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나라의 민초들 덕분이었다.  어쩌면 이 나라는 국가나 국호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을 피로 지켜낸 우리의 선조가 있었기에 지켜낸 나라인지도 모른다.  그 피를 지닌

사람들은 국가의 유무를 떠나 시대를 떠나 그 어디에 있든지 대한민국인이다. 


  어쩌면 역으로 그런 이유로 대한민국은 자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니는 건지도 모른다.  왜??? 나라가 없을때조차도

이 나라를 지킨 민초들에게  그정도의 보호는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솔직히 이 나라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이 없다.

하지만 이 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은 있다.  그 민족의 자부심이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고, 또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만들 것이다.  그런 자부심이 국가라는 토양이 없이도 꽃을 피워낼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내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 이뤄질 수 없는 믿음을 그려낸 것이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