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김영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더위를 식혀주는 김영하의 유쾌한 상상력

묭롶 2010. 8. 8. 10:30

 

 살아가면서 예견할 수 있는 일보다 예기치 않은 일들이 훨씬 많다는 걸 얼마만큼 살다보면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 깨달음은 기억력이 나쁜 탓인지, 그 예기치 않음을 당할 때마다 매번 느닷없이 길가다가 따귀를 얻어맞는 듯한 어리벙벙함과 억울함, 분노를 느끼게 한다. 

  김영하의 이 소설집은 2004년『오빠가 돌아왔다』이후 6년만에 출간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을 읽으며 그 느닷없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김영하 특유의 상상력이 이 소설집 속에서 어떻게 살아 춤추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박민규작가가 서평에 쓴 글에서 '그의 이름만으로 소름 돋았을 그의 팬들'이라 적었던 문구처럼 작품 속 문장들은 더운 여름 땀을 식혀주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과 같이 한증막 같은 삶의 더위를 식혀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과연 삶을 살아가며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인지를 반문하게 한다.  그의 자유로운 문장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인물들을 보며 나는 왠지 고정불변으로만 보이는 내 삶에 숨어있는 변수를 상상해보게 된다. 

 

「악어였다.

~악어는 노래에 빠진 사람들 사이를 유연하게 통과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온전히 그 안으로 사라지기 직전에 악어는, 뭔가 잊은 것이 있다는 듯, 쓰윽 뒤를 돌아보았다. 

 나를 찾는 걸까?  그의 온몸에 드르륵, 돌기들이 솟았다.」P72

 

 돌연히 찾아온 낯선 행운이 익숙해질 즈음, 다시 사라져버린 행운을 찾아 헤매는 <악어>속 가수처럼, 나를 스쳐지나가는 모든 시간의 흔적들이 새긴 문양이 무엇인지를 나는 언젠가 발견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느끼는 나의 감정도 나에 대한 인식도 또 타인에 대한 인식도 새로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어느날 제자와의 레슬링 연습 경기에서 머리를 부딛히고 난 이후부터 자신의 주변사람들에게 친밀감을 잃어버리는 병에 걸려 지금 주변 사람들은 전부 가짜라고 믿는 <밀회> 속 남편처럼, 내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믿음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나는 등뒤에서 내 벨벳 재킷이 뭔가에 걸려 부욱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제야 나를 붙잡은 것이 마고토가 아니라 벽에 붙어 있던 그 무언가(가방걸이나 옷걸이? 

과연 그것은 무었이었을까?)  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막 예열을 마치고 끓어오르기 시작한 입맞춤을 멈추지는 않았다. 

 ~나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뜨겁고 축축한 필생의 키스를 그에게 퍼부었다.」P137

 

  왜냐하면, <마고토>에서 주인공 나가 마고토에 대해 느끼는 감정처럼 사람은 믿고자 욕구하는 것을 진짜라고 믿고 살기 때문이다.  내가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은 모두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정립된 것이기에 타자와 사회가 나에게 거짓을 학습시켰다면 실제적으로 나의 인식체계는 거짓이 된다.

 이 또한 김영하 식 화법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가 불러일으키는 의구심인지도 모른다. 

 

PS:  프랑스에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김영하가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몽상들이 『개미』,『타나타노느』,『나무』,『파피용』,『신』등을 낳았다면 김영하식 상상력이 일으키는 가치의 전복은 소설 문학의 새로운 서사를 가능하게 한다.  그 새로운 서사는 박민규의 상상력과 문장이 일으키는 신선함과는 차이를 갖는 것이다.  그만의 서사의 특징은 기존 가치의 전복에 있다.  이미 그의 데뷔작인 『거울에 대한 명상』에서 보인 서사적 특징이『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통해 자유롭게 실험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그 실험이 그의 다음 작품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