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펀치에 빠지다>

로맨틱펀치 와의 쉰한 번째 만남: 18.11.02: 잠실 석촌호수: 단풍&낙엽축제

묭롶 2018. 11. 4. 13:25

  로맨틱펀치와의 만남이 벌써 내 나이보다 훌쩍 많아졌다.  매년 반복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찾아올 때마다

다른 모습인 것처럼 로펀과 만남의 시간은 쌓여가지만 그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새롭다.  그들 노래가사처럼

'새로운 기쁨'을 만날 때마다 느끼게 되니 언제나 다음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그토록 갖고 싶었고 죽을만큼 사랑했던 사랑보다 더 길게 로펀에 사랑을 느끼고 있으니 지금은 대머리 독수리가 된

내사랑 남편에게 참 미안하기도 하다.  얼마전 인스타로 로펀 사진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본 남편이

내게 말했다.  "넌, 로펀 볼때만 그렇게 웃는구나."  그순간 아차 싶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집이라 가발을 벗은 내 사랑이 보였다.  그러고보니 시간 될때마다 뭘 해먹이기는 많이 해먹였지만

정작 그 눈동자를 제대로 들여다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벌써 햇수로 십년을 부부로 살고 있으니 남편보다는

가족에 가까운 남편을 보면서 로펀도 십년을 지켜보면 지금의 설레임과 흥분과는 다른 가족과 같은 情을 느끼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복잡하게 뒤얽힌 감정과 힘든 일상의 현실 속에서 나는 로펀과 또 한 번의 만남을 위해 11월 2일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이날의 미션은 종합검진을 마친 후, 초등 1학년인 딸아이 학예회에 참석했다가 곧바로 버스를 타고

로펀공연을 가는 것이었다.  검진을 최대한 빨리 마치기 위해 새벽 여섯시부터 서둘러서 검진을 하러 갔는데, 세상에

그 시간에 내 대기표는 25번째였으니 세상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들 참 많음을 느꼈다. 

  검진을 최대한 빨리 마치기 위해 수면내시경을 위한 수면유도제(프로포폴)에서 미처 깨지도 않았는데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서 다음 순서....켁! 가 아니고 다음 검진을 받게 해달라고 외치는 진상이 나였다.  내모습을 본

남자간호사의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저냥반, 포폴 덜 깨서 헛소리하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는)  두 번이나 내 의사를 표시하고 나서야 나는 아직도

포폴에 취해있는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 폐CT를 찍으러 갈 수 있었다. 


  아~~~~원래도 포폴이 잘 안받아서 다른 사람보다 일찍 깨기도 하지만 빨리 모든 걸 끝내야 한다는 강박에 억지로

몸을 일으켰더니 몽롱해서 서울을 올라갈때도 서울에서 내력올때도 잠이 들어버렸다는..... 그래서 배인혁님의 인라도

못봤다는  ㅜ.ㅡ   그 와중에도 지속된 음주에도 불구하고 지방간이 없다는데 의기양양했다는...... 그래봤자 피검사

수치가 엉망이겠지만.

  서울이 워낙 춥데서 털옷을 입은 나는 이날 하루종일 땀을 줄줄 흘려야했다.  짐이 있어서 겉옷을 벗어 손에

들수도 없는 상황이라 대책없이 혼자 얼굴은 빨갛게 상기된채 땀을 흘렸으니, 검진이 끝나자마자 미친듯이 택시를

타고 겨우 딸아이의 발표 순서에 늦지 않게 도착한 나의 몰골은 이미 공연 끝난 후의 모습과 같았다.  엄마를 찾고

있던 딸아이의 눈에 눈도장을 찍고 아이의 시낭송과 댄스를 카메라에 담고, 순서가 끝나자마자 버스를 타기 위해

또 서둘러야 했다.  SRT를 탔으면 이렇게 시간에 쫓기지 않았을텐데 바쁜 업무에 예약을 놓쳤더니 고생을 사서

하는 꼴이 되었다.

  그래.... 항상 후회는 늦는 법이다. 


  마음은 공연장에 빨리 닿고 싶었지만 길이 어찌나 막히던지 예정시간보다 한시간 늦게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게 되었다.

길치인 내자신을 자책하며 한참을 헤맨후 공연장에 도착해서 로퍼니스트들을 만나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날 공연은 잠실문화특구 지정 6주년을 기념하여 송파구청 주재로 진행된 단풍&낙엽 축제였다.  원래 로펀은 이날

여섯곡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공연이 지연되어 마지막 순서였던 로펀은 두곡이 잘린 네 곡(몽유병, 파이트클럽,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토요일 밤이 좋아)을 공연했다.   공연중 보컬님은 다음주에 지금 공연장인 석촌호수 인근인

악스홀에서 단독공연을 한다며 많이 보러 와달라고 멘트를 했다. 

<파이트클럽>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토요일 밤이 좋아>

(옷이.....잘못했어.  보컬님이 생수병 던지는데 덜 벗겨진 자켓이 끝끝내

방해를 하고 말았으니,  그옷 제발 제게 패대기 치소서!)


   네 곡을 들으러 열시간 가까이 왕복했다고 하면 보통의 경우, 내가 입덕전이라면 나라도 정신나간 짓이라고 말했을

테지만 로펀공연이라면 네 곡이 아니라 단 한 곡을 공연한다고 한들 못갈 곳이 어딜까 싶다.  로펀 등장과 동시에

일어서도 된다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대 앞으로 몰려가는 관객들이었다.  스타님들과의 거리가 어찌나

가까운지 카메라에 전체 모습이 담기지 않을 바로 코앞 거리였다.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내 심장은 이미 안녕을

고하고 말았다는...... 하지만 보컬님이 내가 있는 오른쪽보다는 왼쪽을 많이 보았던 관계로 나는 보컬님의 등을

주로 보게 되었지만 뒷모습도 훌륭한 그분 앞에서라면 그 모든게 기쁨이지 않겠는가.

  무대와의 거리가 어찌나 가까웠던지 무대 조명이 바로 내 무릎앞에 있었으니 그 조명이 평소에도 시린 내무릎을

뜨시게 데워주었다.  하지만 뛰려고 할 때마다 무릎이 부딪히는 바람에 평소 열광의 십분의 일밖에 하질 못했다는.

이날 공연 끝나고 팬 사인회를 했는데 사람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어서 뒤늦게 싸인을 받으려고 맘먹은 나는 줄에서

잘렸지만 로퍼니스트 수영언니의 도움으로 내가 읽고 있는 책에 멤버들 전부의 싸인을 받을 수 있었다.   생일을

앞둔 나에게 이보다 큰 선물이 있을까 싶다. 


  싸인회가 끝나고 배인혁님 퇴근길에 주차장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있는 팬들을 보며 지나가던 젊은 행인 셋이

저분이 누구시길래 사람들이 모여있냐고 물어와서 나는 "저분이 바로 불후의 명곡에 출연한 로맨틱펀치 보컬 배인혁님

이라고" 답하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나는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역시 공중파의 힘은 강하다.  

  내년에는 로펀이 TV에 더 자주 나오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어야겠다.  내년에는 아레나급 공연장을 매진시킬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