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여름 내가 공연을 얼마나 갈 수 있을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올 여름 특히 8월 로펀과 함께 했던 네 번의
락페(전주, 인천, 부산, 구레)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한 여름 더위를 피해 모두 서늘한 에어컨이 가동되는
실내를 전전할 때 나는 땡볕을 전전했으니 그 뜨겁고 마음은 더 불타오르는 이 기이한 현상을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일례로 우리 엄마만 해도 뙤약볕에서 하루종일 기다려 로맨틱펀치를 보겠다고 신나서 아침 댓바람부터
길을 나서는 나를 볼 때면 한숨을 쉬시니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얘기하면 입 아픈 상황되시겠다.
2016년 9월 4일 운명적으로 만난 로맨틱펀치에 입덕해서 벌써 이년이 되어 간다. 입덕하고 작년까지는
여름 락페를 간다며 길을 나서는 나에 대한 주변인의 반응은 '미쳤다'였다. '미쳤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제대로 보셨어요. 저는 로펀에 미쳤어요'라고 답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미친게 확실하다. 뜨거운 땡볕에 타죽어도
물 한모금 못마시고 펜스에서 반나절을 기다린데도 악천후로 손가락만한 빗줄기가 쏟아진데도 그 어떠한 것도 로펀을
보려는 나를 막지 못할 것이다. 물론 현생은 매번 나를 붙잡지만..........쩝!
입덕 첫해의 미쳤다는 주변반응에 이어 입덕 이년차를 채워가는 나를 보는 주변인의 반응은 '그라게 좋냐?'라는
인정의 분위기로 돌아섰다. 광주MBC난장 녹화방송에 로펀이 출연했을 때 두 번 방청을 간 내 모습을 방송에서
보게 된 시어머니는 말씀을 한참을 못하시더니 '우리 아기가 참 많이 좋아하나보구나'라고 어렵게 한마디를 하셨다.
주말을 우리와 함께 보내시는 시어머니는 이제 내가 카메라 충전을 위해 콘센트에 전원을 꽂을 때면 '우리 아기
내일 밴드 보러가는구나'라고 말씀하신다. 올해 여덟살이 된 초등1학년 딸래미는 내가 주섬주섬 짐을 꾸리고
있으면 '엄마 핑크삼촌 만나러가?'라고 물어온다. 그렇게 로펀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회사, 일, 동료, 책과 더불어 밴드 로맨틱펀치는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하나의 축이다.
평소 일상의 축을 기준으로 나의 삶이 돌아간다면 로펀을 만나는 순간 축은 크게 궤도를 변경하게 된다. 일상을
벗어나는 낯설음의 경험, 그리고 매번 멋진 무대를 보여주는 로펀을 본다는 기대감과 설레임, 또 로펀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금이라도 담고 싶다는 욕심이 한데 모여 큰 물결을 이루고 난 그 물결을 타고 로펀에게로 간다.
나는 8월 25일도 로펀을 만날 생각에 신이 나서 공연장이 있는 구례 오토캠핑장으로 향했다. 구례는 초행길이었고
올해 2월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로 운전대만 잡으면 사람이 어벙벙해지는 관계로 나는 하이패스인줄 알고 톨게이트를
무단통과하는 우여곡절 끝에 공연장에 도착했다. 구례 자연드림 락 페스티벌은 작년에 티켓팅을 해놓고도 출연예정인
로펀이 보컬 배인혁님의 눈 수술로 인해 공연이 무산된 관계로 오질 못했었다. 공연장에 도착해서 무대를 보니 작년의
아픈 기억이 또 떠올랐다. 이미 공연장에 도착해 있던 로펀 팬(일명 로퍼니스트)분들도 만감이 교차하는지 서로
작년 이야기를 하며 그래도 올해 다시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서로를 다독였다.
올해로 벌써 네 번째를 맞는 구례 자연드림 락 페스티벌은 <자연드림>이 주관하는 행사로 이날 로펀은 저녁
7시 출연예정이었고, 로펀 뒤로 <자우림>과 <이승환>님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구례락페 공연 이틀 전에
상륙한 태풍 솔릭 때문에 공연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태풍은 무사히 지나갔고, 지리산 산자락 아래
자리잡은 공연장은 구름이 많아서 비가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그래도 해가 창창하게 빛나는 것보다는 덥고
습하지만 꽤 괜찮은 날씨와 환경이었다.
내가 사용하는 카메라는 600mm까지 망원이 지원되는 기종이지만 주인이 워낙 사진을 못 찍는데다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무대를 활약하는 보컬님 덕에 먼 거리에서 줌으로 당겨 찍으면 화소가 제대로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화소 정보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근거리 촬영에 자꾸만 욕심을 내게 되는데 그나마 이날 앞 순서에서 1열을 지키던
팬분들 일부가 자리를 양보해줘서 운좋게 돌출 왼쪽 사이드 구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사진을
잘 찍은 건 아니지만 잘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확률이 높아진 것만으로도 난 오지게 좋았다.
이날 로펀의 출연시간은 40분이었고 셋리 첫곡은 역시 <미로틱>이었다.
<미로틱>
<미로틱>
<미로틱>
<미로틱:레이지>
두 번째 곡은: <몽유병>
세 번째 곡은: <파이트클럽>
네 번째 곡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다섯 번째 곡은: <창백한 푸른점>
<창백한 푸른점>
여섯 번째 곡은: <야미볼>
일곱 번째 곡은: <토요일 밤이 좋아> 였다.
구례락페는 가족단위 관람객이 많았다. 나는 8월 12일 부산락페때 운집한 인파의 규모에 깜짝 놀랐지만 구례락페의
관객수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오락가락 하던 비가 그치고 해가 저물어갈 무렵 로맨틱펀치가 무대에 올랐다.
나는 <미로틱>만 나오면 홀린 듯이 찍게 되는 관계로 <미로틱>전주가 흐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무대 위에
올라올 보컬 배인혁님을 기다렸다. 아마도 가족단위 관람객이 대부분이어서 로맨틱펀치를 처음 보는 관객들이
대다수인 걸로 보였는데, 첫곡의 전주가 흐르자마자 관객들 표정이 달라졌다. 뭔가 엄청난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음을 모두들 직감한 것이다.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로펀이다. <미로틱>을 첫곡으로 들으면서 관객들은 로펀에 흠뻑 빠져들었고
공연에 취했고 환호했다. 떼창 포인트를 몰라서 처음 한 번은 팬들이 하는 걸 듣다가 두 번째 떼창 포인트에서
우렁찬 떼창이 메아리가 되어 지리산 자락을 맴돌만큼 큰 목소리로 함께 하는 주변 관객분들 보면서 아~~~
난 또 팬부심이 물결쳤다. 구례락페는 가족단위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해 슬램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나는 로펀 깃발을 이번 공연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내 마음에서 로펀깃발이 펄럭임을 느낄 수 있었다.
부산락페에서도 <창백한 푸른점>을 부를 때 관객들이 보컬님의 가창력에 깜짝 놀라는 것을 목격했던 나는
구례락페때는 그보다 더 깊이 몰입하고 더 강하게 감동하는 관객들 모습에서 로맨틱펀치가 얼마나 대단한 밴드인지를
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락페에는 로펀이 정답이고 진리이다.
아~~~락페의 멋지고 큰 무대에 선 로펀을 보는 건 팬으로서 자부심 넘치고 기쁜 일이지만, 공연시간이 너무 짧은게
안타까울 뿐이다. 락페때마다 40분씩 네 번을 들어도 겨우 160분인데, 매번 2시간이 넘는 공연을 보여주는 로맨틱파티
1회 분량에 비교하면 40분 공연시간이 얼마나 짧은지를 실감하게 된다. 두시간 넘게 온전히 로펀을 감상할 수 있는
로맨틱파티가 절실하다. 엄청 굶주린 사람에게 당장 앞에 놓인 한그릇의 밥이 허기를 채울 수 없듯이 팬들에게는 로파가
필요하다. 그것도 많이 엄청나게........
구례락페는 가족단위 관람객들을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공연장 잔디밭을 뛰어노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공연을 즐기는 분위기여서 우리 보컬님은 평소에 하던 퍼포먼스를 많이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가령 <미로틱>을 부를때 손이 상체에 국한되어 이동한다는 점과 <토요일 밤이 좋아> 물뿜쇼 때 물병을
아주 조심스럽게 무대 아래로 떨어뜨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자제하고 조심하는 보컬님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도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구례락페의 무대는 전주 못지 않게 아름다웠다. 온통 별빛이 수놓인 듯한 무대 위를 활약하는 보컬님은 빛나는
LED조명과 하나가 되어 별나라에서 방금 소환돼 온듯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하지만 보컬님 위주로 조명이
진행되어 나머지 멤버들을 사진 뿐만 아니라 눈으로 담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로펀에 입덕하고 일년 정도를 풀영상을 찍던 버릇 탓인지, 멤버들을 골고루 담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사정상
찍어놓은 사진들의 품질이 좋지 않아 올리지 못하는 멤버들의 사진을 볼 때면 참 속상하다. 그럴때면 내가 능력이
좋아서 사진을 애초에 잘 찍거나 그도 아니면 후보정 기술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둘 다 안되니 마냥 속이 상할 수밖에..
그렇게 순식간에 공연이 끝나고 현생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나는 귀가길에 올랐다. 공연은 끝이 났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이 집에 가는 내내 내 눈앞에 은하수처럼 펼쳐졌다. 혼자 아~~ 어쩜 이렇게 잘할까. 어쩜 이렇게 멋있을까.
그리고 어쩜 매번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등등을 중얼대며 엑셀을 밟았다. 가끔씩 나는 블랙박스를 주기적으로
잘 지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안에 내가 주행중에 불렀던 로펀 노래들, 공연을 보러 오며 가며 혼자 중얼거렸던
말들이 다 담겨있으니 그걸 누군가 듣는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다.
로펀공연을 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때면 아쉽기도 하지만 다행이란 생각도 하게 된다. 이렇게 멋진 밴드를
또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 큰 힘이 된다. 항상 같은 일상을 수십년간 산다는 건 어찌보면 그건 단 하루도 살지
않은 것과 같지 않을까? '나'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 앞으로
해야할 일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또 다른 것들을 꿈꿀 수 있어서 다행이다.
로펀 노래는 아니지만 보컬 배인혁님의 노래 <사적인 세계>에는 '꿈꾸는 우리는 지루하지 않아~고단한 길 위에
지쳐 잠들긴 해도'라는 노래 가사가 나온다. 노래가사처럼 로펀과 함께 라면 현생이 나를 옥죄어 올지라도 나는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로펀으로 인해 새로운 무언가를 꿈꾸게 되는 신나는 신세계를 다른 사람들도 많이 맛보았으면
좋겠다.
기절하지 마요 감춰왔던 꿈들이 지금 이뤄질지 몰라. 잠들면 안 돼요. 달아나지 마요. 다시 한 번 손 잡고
여기 나와 춤을 춰요~♪ <파이트클럽 가사 中> 로펀 노래가사처럼 삶에 질식당해 기절할 것 같다면 로맨틱펀치의
손을 잡고 로맨틱파티에 오시길 강추한다. 아마도 다시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로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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