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커트 보니것>

<세상이 잠든 동안> 커트 보니것 만세!!! 우리 편 만세!!! 휴머니즘 만세!!!

묭롶 2018. 7. 13. 17:05

  모든 시작에는 그 출발점이 있다.  알베르 카뮈는 자신의

첫 작품 『이방인』을 통해 삶의 부조리함을 드러냄으로써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부조리'에 대한 성찰이 '반항'으로

발전되었고 그 이후 '사랑'으로 분류되는 작품들로 나아갔다.


  로맹가리의 경우엔 2차 세계대전 참전 중 써내려 간

『유럽의 교육』을 시작으로 그 마지막 작품 『연』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것으로도 침해받지 말아야 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었다.


  커트 보니것의 경우엔 어떠할까?  그의 초기 단편모음집인

『세상이 잠든 동안』을 읽는 동안 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길을 가다 어린아이를 보면 자동으로 웃게 되는

것처럼, 그의 문장이 지닌 따스함에 굳어버린 내 표정이

저절로 눈 녹듯이 풀려버린 것이다.


  어린시절 읽었던 <바람과 해님> 동화를 떠올려 보자.  해님과

바람은 지나가던 나그네의 외투 벗기기 내기를 했다.  바람이 나그네를 날려버릴 것처럼 세찬 바람으로 외투를 벗겨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나그네는 외투깃을 더 단단히 움켜쥘 뿐이었다.  하지만 해님이 열기를 발산하기 무섭게 나그네는 외투를 금새 벗어

버렸다는 우화를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커트 보니것이 이 미발표 단편을 써내려가던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힘겨루기가 시작된 시기였다.  이미 2차 세계대전 중 드레스덴 폭격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나약하고 소수의

인간들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문명이 얼마만큼 망가질 수 있는지 몸소 겪은 커트 보니것의 눈에 보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참으로 아이러니 하게도 그는 눈에 보이는 전쟁의 무서움과 참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정말 나약하고 한편으로

무능력하게 보이는 인간에 주목했다.  아무리 참혹한 현실일지라도 인간이 끝내 지녀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신혼에 남편을 잃은 루스는 아이까지 가진 몸으로 시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시어머니를 만나면 서로 위로를 주고 받으며 의지할 수 있을거란 그녀의 믿음과는 달리 그녀가 몇달 후 출산할 아이를

빼앗을 궁리만 하는 시어머니를 보며 루스는 도망치듯 그 집을 나섰다.  다시 먼 길을 떠나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던 중,

더러운 행색으로 죽어가는 노인을 모른 채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루스는 그 노인을 위해 자신의 외투를 머리맡에

받쳐 호흡을 유지시켜 주고 구급차를 불러 노인의 생명을 구했다.  노인을 구한 루스는 다시 기차를 타려다가 자신이

도망쳐 온 시어머니도 마음이 아픈 환자일 뿐이라는 생각에 그녀를 돌보기 위해그녀의 집으로 되돌아 간다.  > 

      단편집 중 「루스」의 줄거리


  그의 단편 「루스」를 통해 인간을 지키는 건 보험(「유행병」)도 아니고 돈(「돈이 말한다」)도 아니며 재능(「일 년에

1만 달러는 거뜬하지」)도 아니고 과학(「제니」)도 아닌 바로 너무나 나약한 인간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힘 없는

임산부지만 그녀가 휴머니즘(人間愛)를 실행하는 순간, 그녀는 그 누구보다 강한 힘을 지닌 존재라는 걸 커트 보니것은

그의 초기 단편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세상이 잠든 동안』읽고 그의 작품의 출발점이 인간에 대한 한결같은

믿음과 애정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단편을 읽는 내내 마음이 유쾌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그의 초기작에 담긴 유머 넘치는 문장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처럼 내게 시원함을 안겨줬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했어." 해클먼이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음, 이봐,"  그가 말했다.  "조금 있다가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멍청이가

우리 모두에게 줄 선물을 잔뜩 가지고 지붕 위로 종을 딸랑이며 날아올 거야."

"네, 그럴 겁니다."

"꼬마 사슴에게 채찍질을 하는 사람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테지."」 p180 <세상이 잠든 동안>


「사라진 석고상 세 개가 우리 앞에 있었다. 

요셉과 마리아가 짚으로 된 침대에서 잠든 아기 예수를 사방에서 불어드는

외풍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다.

조명이라고는 기름등 하나가 유일했고, 흔들리는 빛 속에서 성가족은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

경외와 찬양으로 살아 숨쉬고 있었다.  」p200 <세상이 잠든 동안>


 내가 읽은 문장 중 산타를 커트 보니것처럼 표현( '산타'='꼬마 사슴에게 채찍지를 하는 사람')한 사람은 지금까지는 없었다.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는 해클먼 편집장을 통해 보여주는 커트 보니것식의 표현은 직접적으로

여기에 파랑새가 있다고 외치지 않지만, 사람들이 저절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파랑새를 찾게 만든다. 


「 "내가 기대하는 건 크리스마스에 쓴 돈들의 청구서가 날아드는 1월이야. 

살인이 아주 흥하는 달이지." 」p200 <세상이 잠든 동안>


  현실에 대한 풍자를 신랄하게 표현하지만 그 안에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의 초기 단편이 주는 재미와 감동을 통해

나는 커트 보니것 같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어쩌면 인간이 바퀴벌레 보다는 비교우위를 갖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